음주-산재에 대한 이목희 의원측 반론을 재비판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은 ‘어느 수준’ 에 도달했는가
이목희 의원의 ‘산재예방 음주규제론’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이를 비판한 김종민 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의 기고에 대해 이목희 의원실 이태흥 보좌관이 반론에 나선 데 이어, 다시 노동건강연대 회원인 김명희 교수가 재반론을 이었다.
이목희 의원의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조속히 그들의 위험천만한 관행을 멈추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상담하고 진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하루하루 술을 위안삼아 술독에 빠져 지내는 그들을 도와주고 치료해내야 된다.”
직관과 과학 사이
이 의원이 낸 자료집에 인용된 외국 자료에 의하면 전체 산업재해의 25%가 음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국내 현황은 간접적인 자료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요한 근거가 된 사실은, 첫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제조·건설업종이 산재의 총 66.7%, 산재사망의 50.9%를 차지한다, 이 업종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월등히 높고, 음주량과 음주빈도가 높다. 둘째, 연간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위험을 “증가시켰다”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통계를 보면, 2002년에 전체 산재의 71.2%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발생했으며, 사업장 규모에 따른 재해발생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 중에서도 건설업이나 운수창고 통신업보다는 제조업에서의 재해율이 두드러졌다.
이를 소규모 사업장의, 특히 제조업 사업장의 해이한 음주문화 때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대규모 사업장, 혹은 소규모 사업장 중에서도 제조업 이외 다른 업종의 사업장들이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보다 적극적인 음주규제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낳았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생태학적 오류’ 명백
자료집에 의하면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는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망자 수가 아닌 사망률을 적용하면, 주류 출하량이 급격히 증가한 1998~2001년에는 사망률이 감소하고, 2001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음주와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고에 의한 사망률은 크게 감소하며,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기간 중 뇌심혈관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 전자의 경우 과로, 스트레스, 노동강도의 증가가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자는 작업 요인(반복성, 신체부담 자세, 힘, 진동 등)과 장시간 근무, 노동강도의 증가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음주가 작업장에서의 사고 위험을 높일 것 같다는 직관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산업재해의 양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 음주라는 것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 자료집이 채택한 분석 방법의 치명적인 결함은 생태학적 오류라 할 수 있다. “생태학적 오류”는 집합적 수준의 관계로부터 개인 수준의 관계를 추론할 때 나타나는 오류를 말한다 (신영전 등 『사회역학』2003). 예를 들면, 산재 사망자 수가 증가한 시기 동안 출산률은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출산률 감소가 산재 사망과 관련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안전조치는 다 이뤄졌나?
이 의원은 “선진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하드웨어적인 안전조치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산재로부터 작업자를 지켜주는 것은 안전모나 낙하방지물이 아니라 결국 그들 자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관리가 과연 그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까?
97년의 기업규제완화법 개정으로 2년, 1년 주기로 시행되던 프레스·리프트에 대한 정기검사가 면제됐고, 30~49인 사업장의 유해위험업종에 대해 안전관리자를 선임토록 한 규정도 철폐됐다. 광범위한 구조조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왔다. 퀄리안(Qulian) 등(2000)은 선진국에서 발표된 90여 편 이상의 논문을 검토한 후, 불완전 고용형태는 안전보건의 퇴조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외주, 구조조정, 기구 축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렸다.
이 의원에게 묻고 싶다. 이제 가능한 안전 조치들이 다 이루어졌고, 노동자 자신의 생활습관만 바꾸면 될 차례인가? 노동 강도와 직무스트레스가 증가하는 구조에서, 음주 습관을 바꾸는 대증요법이 효과가 있을까? 프레스 정기검사도, 안전관리자도 없애는 마당에 EAP 도입이 효과가 있을까?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회원·을지의대 예방의학 교수 laborhealth@yahoo.co.kr
2004-11-23 오전 8:08:03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