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문화’ 탓하기 전에 ‘술먹게 만드는’ 노동조건부터

이목희 우리당 의원의 ‘산재예방 음주규제론’을 비판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의원은 ‘음주와 산재사망’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정부와 기업이 산재사망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음주 문제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산재 발생의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행태에 돌림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 전형적인 ‘희생자에게 책임 전가하기(Victim blame)’의 예이다. 또 이 의원이 주장하는 노동자 음주 관리 프로그램은 조심스럽게 접근되지 않는다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통계학적 오류투성이”

이 의원이 노동자의 음주 문화가 산재 발생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근거로 든 통계지표들은 이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제한이 많은 자료이다. 최근 몇 년간의 술 출하량과 산재사망자수와 연관성을 근거로 ‘산재의 원인이 음주’라고 주장하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생태학적 오류(Ecological fallacy)’를 범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지표는 두 요소간의 상관관계가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몇몇 건설회사의 음주 관리 프로그램 유무와 산재사망수와의 관계 역시 원인과 결과 관계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는 통계학적으로 보았을 때 ‘교란 효과(confounding)’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몇 개의 사례로 무리한 일반화를 시도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의원이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통계지표는 통계학적으로 오류투성이이며 당연히 정책의 근거로 이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노동자에게 책임 전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펴는 것과는 별개로, 이 의원의 주장은 산재 해결 방식을 강구하는 데 있어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 주장이다.

산재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접근해 시스템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어 노동자 개인의 행태를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여태까지 정부와 사업주가 많이 써오던 방식인데, 이는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효과를 지닌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재의 원인은 사업장 시스템의 오류이며, 이는 시스템 운용에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업주의 경영 방식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들을 통하여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산재의 원인을 노동자의 부주의하거나 무책임한 행태 때문이라고 호도하여, 노동자 개인의 행태를 교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만 집중한다면 산재 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산재가 예방된다.

신종 노동자 통제전략?

최근 미국 등에서는 노동자의 음주 문화를 비판하며 노동자의 행태를 교정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신종 노동자 통제 전략으로서 사업주에 의해 도입이 고려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2003년 2월 ILO가 낸 보고서에서는 알콜과 약물 농도 측정 프로그램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사업주에게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는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거나 전보 발령 내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 노동조합의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의원이 노동자의 음주 문화를 ‘정말로’ 염려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려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노동자의 음주 문화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노동자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만드는 작업장 스트레스를 구조적으로 줄일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올바르다. 노동자 음주의 주요한 원인은 직무 스트레스 및 불합리한 노사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의원의 주장은 근거도 부족하고, 나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지며, 인권 침해의 소지가 높은 해결책을 주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노동자를 위한 주장이 아니다. 이 의원은 센세이셔널한 주장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연연하지 말고,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진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 정책 제안을 해나가길 바란다.

김종민 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 laborhealth@yahoo.co.kr

2004-11-09 오전 9:04:09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