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용석 이사장, 부끄러운 줄 아시오!
[기고] “근로복지공단, 집단 민원인을 범죄자 취급이라니”
2005-05-16 오전 10:13:47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이란 제하의 지침을 일선 지사에 내렸다는 의 보도(근로복지공단, “집단민원, 무조건 사진찍어 둬라”지시. 4월12일자 기사)를 보고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전수경씨가 한 편의 글을 보내왔다.
전씨는 기고문에서 노동자들이 왜 집단민원을 할 수밖에 없는지, 왜 과격한 행동을 하게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고소고발을 위해 사진촬영 등을 지시한 근로복지공단을 비판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건강권 보호를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편집자 주
노동자들이 왜 집단 민원을 하는지 이유는 아는가
근로복지공단이 이라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펜을 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스스로 사회보험기관이 아닌 공안기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란 의심마저 든다.
사회보험제도에서 민원업무는 일상적 업무이자 중요한 업무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진입장벽이 높고, 업무상재해와 질병의 입증책임이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있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산재보험에서 탈락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민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재보상을 신청하기까지 개별노동자들이 직장이나, 보험제도에서 겪는 어려움은 매우 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업무상재해와 질병의 개연성이 매우 높은 노동자들이 막바지에 몰려서 산재보상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개별 노동자든, 노동조합이든 산재신청을 하고, 이것이 거부되었을 때 항의의 의사표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지난 10일 사측의 노조 감시로 집단 정신질환 발병 진단을 받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집단 산재신청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공단측 관계자가 사진촬영을 시도해 노조와 충돌을 빚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레시안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민원인들을 폭력적 ‘범죄자’로 보면서 폭력의 유형을 세밀히 분류한 후, 고소장 작성하는 법을 공부하고, 형법을 들먹이고 있다. ‘철저한 증거확보’를 위해 민원인의 얼굴은 반드시 사진촬영 하며, CCTV 작동상태를 수시로 확인하는 치밀함도 돋보인다. 인화물질을 숨겨서 반입한다고도 하니, 정부의 대테러지침이 부럽지 않다.
민원인을 대상으로 이 정도 수준의 대응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원한을 사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노동자건강권 외면한 근로복지공단, 국민들이 외면할 것
최근 산재보험에 대한 개혁요구가 거세다. 제도의 주무부처인 노동부도 40년간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운영되어온 산재보험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노동자들의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불신 역시 제도의 시행 이래, 더구나 지난 10여 년간 강도를 더해가며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자 비율이 전체노동자의 50%를 넘어서고, 노동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불이익을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100만 명을 넘어서도 근로복지공단은 변화하는 노동의 현실에 눈감아 왔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비정규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30%대 이하를 맴돌고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비정규노동자들의 산재보험사각지대를 인정하고, 대책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이라도 하면,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을 베껴가며, 산재승인을 거부해온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오늘날 모습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개혁과제를 제시해왔다. 이 중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고,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대노동자 서비스강화, 재활서비스의 실질화도 핵심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산재보험의 개혁과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건강권의 안전망 노릇을 포기한다면, 아무도 근로복지공단의 ‘밥그릇’을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 민원인을 ‘범죄자’ 취급하고, 민원인에 대해 고소장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공기업을 누가 지켜주려 하겠는가.
방용석 이사장, 부끄러운 줄 알아야
이런 내외의 기대와는 별개로 근로복지공단의 수장으로서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방용석 이사장이 보여준 최근 행보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방용석 이사장은 최근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산재보험보상액을 발표하며, 외국공관원들을 만나,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상은 민간외교의 하나”라며 자랑스레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외국인은 “창피한 줄 모르고 …” 라는 말로 응답했다.
또 11명의 태국 여성노동자들의 노말헥산중독 사건이 났을 때 신속하게 산재보상을 해 주었다고 자랑한 것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그 처지에까지 이른 것을 부끄러이 생각할 줄 모르는 천박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외국인노동자의 산재보상결과를 보면, 직업병으로 인해 산재보상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직업병이 있어도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현행 산재보험제도에서 한국인노동자들도 어려운 직업병인정을 이주노동자들이 받을 길이 있겠는가.
또 하나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산재보험급여 부당수령자를 신고하면 1백만원을 준다는 1588-0075 번호를 개설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보험 부당수급건수는 59건이다. 올해 들어 3월까지 24건이었다고 하는데, 하루에 한번도 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신고전화를 개설하였다는 것은 전화자체에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노총이 350여개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제조업에서 4일이상 요양을 요하는 산재가 일어났을 때, 산재로 처리하지 않는 비율이 35%에 달한다. 노동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산재은폐적발건수는 1천 건에서 2천 건 사이를 넘나든다. 산재보험 부정수급건수의 최소 20배에 이르는 산재은폐가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일어나고 있다.
약자의 목소리에 귀 열어야
방용석 이사장은 산재보험제도 안에서 일어나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보상액을 자랑하고, 부정수급 신고를 받는 것은 공단의 본래 역할을 다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 민원인의 폭력을 걱정하며 관할경찰서와 유기적 관계를 맺는 것은, 산재보험의 높디 높은 진입장벽을 없앤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 영세, 이주노동자들의 안전판으로서 산재보험의 공공성 강화를 먼저 주장하는 근로복지공단을 보고 싶다. 해고될까 두려워 산재신청서를 쓰지 못하는 비정규노동자의 신청서를 대신 써주는 근로복지공단을 보고 싶다.
전수경/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