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성재해 희생자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를 다녀와서①
야만적인 부의 축적, 병들어 가는 아시아 노동자
지난 9월21일부터 25일까지 홍콩에서는 ANROAV(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ccident Victims, 작업성재해 희생자의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가 열렸다. ANROAV는 아시아 각 국의 산재추방 NGO들의 네트워크로 해마다 주제를 정해 보고대회를 갖는다. 올해는 석면과 진폐증, 건설노동자의 추락사, 화공약품으로 인한 중독 등을 주요하게 다뤘다. 한국에선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2회에 걸쳐 이를 소개한다.
“원래 없었는데 한국사람 공장에 가면 있어요.”
한 필리핀 참가자의 말이다.
그 나라에는 원래 감시카메라라는 것이 없지만 현지의 한국공장에 가면 카메라가 있다고 한다. 태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과 같은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는 자리였다.
“믿을 수 없다” 한국의 끔찍한 사례
지난 9월 하순 우리는 홍콩에서 열리는 ANROAV(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ccident Victims, 작업성재해 희생자의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에 참석했다.
▲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대책사업단장.
홍콩에서의 둘째 날(9월22일) 오후 4시. 한국의 사례를 발표할 순서였다. ‘한국은 감시카메라와의 전쟁 중’이라는 제목으로 개괄 발표에 이어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청구성심병원의 유명한 똥물투척사건, 식칼테러사건을 비롯하여 KT특판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성진애드컴 사례 등을 줄줄이 이야기했다.
발표장의 참석자 40여명은 한국의 사례발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이 활동가들은 이야기가 똥물투척사건에 이르자 일제히 ‘믿을 수 없어’라는 탄식을 내뱉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한 얼마나 많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는지를 벽과 천장에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킬 때 마다 그들의 머리와 눈도 따라서 움직였다. 본적도 없는 감시카메라를 상상하려는 그들의 눈빛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발표가 끝난 후 티타임. 몇몇 참가자들이 우리주변으로 와서 말을 건다. “한국의 사례 무척 인상적이었다. 발표내용을 우리나라의 저널에 실었으면 하는데, 원고 좀 부탁하고 싶다.” 영국과 호주에서 온 활동가들이었다.
이어서 아시아 각 나라의 활동가들의 말도 이어졌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감시카메라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와서 운영하는 공장안에는 벽에 그런 게 달려있더라. 그게 감시용인지 몰랐다.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비인격적 감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그 나라 노동자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 ANROAV 참가자들.
한국식 노동통제와 직업병의 아시아진출
ANROAV는 아시아의 각국에서 산재추방운동을 하는 NGO단체 활동가들이 매년 모여서 최근의 이슈들에 대해 사례를 발표하고 연대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올해도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필리핀, 태국, 네팔, 인도, 베트남 등의 많은 아시아국가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영국, 호주, 미국의 활동가들도 참석하였다.
올해의 주제는 석면과 진폐증, 건설노동자의 추락사, 화공약품으로 인한 중독 등으로 모아졌다. 아직 생산중심의 노동에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재래형 사고와 직업병이 많다. 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불법적인 비정규직, 파견노동과 고용불안, 노동 강도 강화에 의한 스트레스가 심하여 정신질환이라는 직업병이 이슈가 되는 것이 다른 아시아국가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업장 안에서 24시간 돌아가는 감시카메라로 인한 노동자의 정신질환은 ‘한국적’ 노동통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사례는 이런 내용이 중점적으로 발표되었다. 한국의 기업이 아시아로 진출할수록 한국사업장의 문제는 다국적화 될 것이다. 이미 저임금, 고강도노동, 임금체불, 작업장내의 폭력 등은 많은 나라가 겪고 있다. 한국을 필두로 하여 아시아 각 나라의 실태보고가 이어졌다.
이제 몇 개의 나라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국 이야기 – 수시로 이동하는 공장과 남겨진 병든 노동자
중국 탄광의 광부가 일하는 모습이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우리는 탄광의 실태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작업복도 없이 석탄가루로 시커메진 옷을 입고 있는 광부. 맨손으로 캔 석탄을 광주리에 담아 좁아터진 탄광입구(중국의 탄광은 토굴 같다)를 빠져 나온다. 땅바닥에 쏟아놓고 잠시 담배를 피워 문다. 뒤로 비슷한 모습의 다른 광부들이 입구에서 기어 나오고 다시 들어간다.
저렇게 일하면 얼마 못 가 다들 진폐증 환자가 되어 숨쉬기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진폐증 상태일 것이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
광부뿐만이 아니다. 중국에는 보석가공으로 인한 규폐증(돌이나 모래의 미세한 가루가 폐에 쌓여 폐가 굳는 질병)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열을 가하고 그라인딩과 구멍 내기 등의 작업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보석시장으로 유명한 홍콩의 자본이 중국으로 넘어가 값싼 중국노동력을 이용해 원석을 가공한다.
그러나 몇 달 못가 노동자들에게 규폐증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재빨리 문을 닫고 중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 공장 이름도 바꾸고 법인도 바꿔버린다. 그러면 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사업주를 찾을 길이 없어지면서 보상은커녕 치료비 없이 죽어간다. 여기에 한국의 자본도 가세하고 있으나 홍콩자본이 거의 10배를 넘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노동자들과 홍콩의 NGO단체들이 연계하고 있다. 홍콩의 자본을 추적하는 일을 홍콩의 NGO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NGO와 연결되는 중국 노동자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도 보상에 관한 법이 있기는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로 책임을 돌리고 지방정부는 ‘모르겠다’고 외면하고 있는 상황. 노동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노동조합은 단지 또 하나의 행정기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석한 중국재해 당사자의 증언이었다. 지켜지지 않는 법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중국노동자나 한국노동자나 비슷한 듯 하다. 현재 재해노동자들은 정부가 제대로 법을 시행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인도 이야기 – 남편이 일하다 죽은 자리는 아내가 채운다
인도 역시 진폐증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는 인도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몰래 찍어온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공장안은 온통 흰 가루로 덮여있었고 공중에도 부옇게 날리는 상황이었다. 천정 가까이에 뚫린 창문은 모두 잠겨있었고 어떠한 환기시설도 없이 일하고 있었다.
인도의 가장 큰 문제는 인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작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떤 질병을 야기하는지 전혀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인도는 문맹률이 매우 높아서 교육책자를 만들어 배포해도 소용이 없다. 이런 현상은 시골지역일수록 심한데, 상당수의 영세공장들이 외진 시골에 자리 잡고 있다. 결국 한 마을의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죽어도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고 마을의 사람들이 그 공장에서 일하다 하나씩 죽어가는 상황이 비일비재 한 것이다.
* 10월28일자 두 번째 글로 이어집니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대책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