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5/27] 일터의 건강나침반

쇠고기 공장 노동자도 위험하다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 건강과 검역주권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이다. 이 논란 가운데 그 중요성에 견줘 상대적으로 덜 다뤄지는 주제도 있다. 미국 쇠고기 가공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정 생산물에는 이를 만들어내려 일한 이들의 ‘한’이 서려 있을 때가 있다. 제3세계 어린이들이 만드는 아디다스 축구공, 나이키 운동화, 제3세계 여성들이 밤잠을 설쳐 가며 만든 디즈니 장난감, 스포츠 의류 등이 대표적인 보기다.

미국산 쇠고기도 마찬가지다. 기업화한 쇠고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생산된다. 2006년 미국 통계청의 산업별 노동재해율을 보면 동물 도축업은 11위에 올라 있다. 그 해에만 노동자 100명당 12.5명이 다쳤다. 가장 높은 순위인 내화벽돌 제조업, 자동차 가내 제조업 등의 재해율이 100명당 15~16명선인 것과 견줘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의 대표적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04년 보고서에서 쇠고기 가공업이 위험한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업무 속도가 꼽힌다. 쇠고기 가공 기업의 한 라인에서 소가 도축돼 가공되는 속도는 1분마다 6~7마리꼴이다. 이를 열서너 명의 노동자가 처리한다고 하니, 노동자 한 명이 1시간에 28~30마리 소를 처분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윤 압박이 커지면서 1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소의 수는 늘고 한 라인의 노동자 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둘째 이유는 인체공학적 고려가 없는 작업 환경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신체에 맞지 않는 선반과 갈고리, 칼 등으로 일하다 보니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온다. 셋째로 무게 때문에 오는 고통이다. 자동화돼 있지만 노동자들이 쇠고기를 들고 옮겨야 할 때가 많아 무리가 된다.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도 한몫한다. 쇠고기를 도축해 가공하는 동안 피, 배설물, 찌꺼기, 내장 등이 노동자의 몸과 가공하는 쇠고기에 튄다. 노동자 건강도 해치고 쇠고기의 위생 상태도 나빠진다.

고질적인 문제인 초과노동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쇠고기 가공 기업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곤 한다. 이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 일하다 보면 그만큼 사고와 질병의 위험이 높아진다. 부족한 업무 교육과 보호 장비 지급도 문제다. 마스크나 보호복, 장갑과 같은 보호 장비를 자비로 구매하게 하거나 월급에서 깎곤 해 제대로 된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못한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출하는 데 희생되고 있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문제는 심각하다. ‘윤리적 소비’를 고민하는 시민은 또 다른 이유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칠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