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6/3] 일터의 건강나침반

‘자발적 잔업’ 도요타 과로 산재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

최근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의 품질관리 방식인 ‘카이젠’(개선) 활동(이하 카이젠)을 두고 논의가 뜨겁다. 도요타는 지난 5월 모든 카이젠에 대해 6월부터 100% 초과근무 수당을 주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카이젠이 노동자 건강에 해가 되지 않도록 시간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카이젠은 도요타의 오래된 품질관리 방식의 하나다. 도요타는 모든 노동자를 8명씩 한 조로 짜 동아리로 편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정규 시간 이후에 ‘무급으로’ 업무 향상을 위한 토의를 벌이게 했다. 그러던 2002년, 과도한 카이젠에 시달리던 30살 노동자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동아리의 반장이 된 뒤 카이젠에 한달에 무려 144시간을 쏟아부었다. 정규 시간 외에 매주 16시간을 더 일한 것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휴일도 없이 각종 회의, 연수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이 법원에 회부되자, 도요타는 카이젠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활동이므로 회사에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2007년 12월 일본 지방법원은 카이젠도 회사의 관할 아래 이뤄지는 업무로 최종 판정했다. 고인의 사망은 과로사로 인정돼 산재보험 지급 결정이 났다. 법원은 또 모든 카이젠에 대해 초과근무 수당을 주라고 권고했다. 그 이전까지 도요타는 1주일에 2시간만 업무로 인정해 수당을 주고 있었다.

도요타는 효율적인 생산방식으로 유명하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이를 배우려 하고, 한국도 그런 말들이 많다. 물론 도요타에 배울 것이 많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도요타 방식은 노동자들에게 과로와 스트레스를 일으켜 건강에 해가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정규 시간만 비교한 것인데도 1위다. 초과노동 시간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그 결과 2007년에만 515명의 노동자가 뇌혈관 또는 심장질환으로 숨졌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아 2006년에만 161명의 노동자가 과로나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환으로 산재보험을 받았고 24명이 숨졌다. 뇌·심혈관계 및 정신질환에 걸려도 산재보험을 못 받는 노동자가 적지 않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들은 거의 다 ‘일 중독자’다. 일 중독이 자랑일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많이 일한다고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연구들이 많다. 일본에서도 잔업은 과로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일 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당장 이를 바꾸려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 변화를 이끄는 한 축이 돼야 할 정부의 수장이 ‘일 중독’ 예찬론자로 의심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