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7/8] 일터의 건강나침반
직장 광우병’에 내몰린 비정규직
이상윤/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
이 상황에 있게 되면, 보통 사람들보다 3배나 숨질 위험이 높아진다. 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사고를 더 많이 겪고, 질병에 더 잘 걸리며,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처지에 있는 이들의 비극은 당대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자녀들은 다른 아이들에 견줘 건강하지 못하고, 커서도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커진다.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가 이런 처지에 있으면 자녀도 나중에 커서 같은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끔찍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차별과 그것의 대물림이 보통 일이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 1달러 미만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는 지금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지고 상황이다. ‘괴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괴담이 아니다. 최근 광우병 정국에서 이런 상황은 ‘일터의 광우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차별과 배제에 시달릴 뿐 아니라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이 죽고 더 자주 병에 걸린다. 차별과 배제가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끼칠 정도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이들이 적은 것도 아니다. 자그마치 850만명, 일하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 문제의 해결 우선순위는 문제의 규모, 심각성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이런 상황이면 비정규직의 건강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최우선 순위에 놓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다. 이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은 물론 해결하려 나서는 이들도 적다. 다만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라고만 말한다.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느낀다면 해답은 찾을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도 일부 사람들은 문제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재협상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것이다. 국민들은 ‘왜 문제 해결책이 없냐’고 반문한다. 국민들에게 재협상은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한 문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로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법을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1년 넘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이랜드, 코스콤, 고속철도(KTX) 및 새마을호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비정규직 문제는 일터의 광우병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숨져야 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