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7/16 ] 칼럼
열다섯 송면이와 ‘안전올림픽’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기획위원
지난 6월 29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국제노동기구(ILO) 가 주관하는 가 열렸다. ILO 사무총장과 각국 노동장차관들이 모였다고 한다. 대회 마지막날인 7월 2일은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의 20주기였다.
만 열네살이었던 송면이는 몸이 병들어가는 이유를 몰라 병원을 전전하다 몇 달만에 “어떤 일을 했느냐?”는 소아과의사의 질문을 받았다. 공장일을 하며 야간고등학교를 가려고 상경한 중3 소년은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쓰러졌고 몇 달만에 눈을 감았다. 오래전도 아니다. 올림픽 한다고 세상이 들썩거리던 88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정부는 ‘안전올림픽’을 연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올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사고와, 희생된 이들의 면면을 되짚어본다. 대통령을 사돈으로 둔 타이어회사에서는 15명의 노동자가 과로사로, 암으로 죽어갔다. 기한을 맞추라는 독촉 속에 냉동창고 공사에 투입됐던 설비기술자, 용접공, 청소부 40명이 화마로 죽어갔다. 불법취업을 했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됐던 외국인들 27명이 불길에 갇힌 채 죽거나 중한 화상을 입었다. 불이 난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외국인들의 도주로를 차단하는 데 급급해 더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고, 냉동창고 공사는 얼키고설킨 하도급제도 속에 안전조치는커녕 장갑도 없이 일을 시켰으며, 타이어회사에서는 5천명 직원을 두고도 간호사 1명에게 건강관리를 맡겼다.
지난 해 사무실이건, 공장이건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가 2천406명이다. 다치거나 직업병에 걸린 규모는 9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다친 노동자만을 놓고 봤을 때 실제 일하다 다친 노동자의 규모는 산재보험 통계의 1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6년 현재, 한국의 산업안전감독관 1인이 담당하는 노동자 수는 34,178명. 영국의 5.1배, 독일의 3.9배, 미국의 1.8배다.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를 감독하는 사업장 수는 전체 대상의 4.3%다. 23년이 지나야 전체 사업장을 다 감독할 수 있다. 그마저도 열악하고 취약한 작은 일터는 아예 법 적용대상도 안된다.
이명박대통령은 ‘비지니스 프렌들리’ 한다고 말했다. 이에 경총이 화답하여 97개의 규제가 기업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고, 이 가운데 23개의 안전과 보건규제가 귀찮으니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은 일찌기 노동자가 싫어 ‘근로자’가 되고, 노동재해가 싫어 ‘산업재해’가 되고, 직업안전보건이 싫어 ‘산업안전보건’이 된 나라다.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일하는 이, 노동하는 이가 사회를 지탱하지만 산업의 부품으로, 국가의 ‘국민’으로만 존재하는 사회다.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 주최측은 “제3세계의 안전보건에 관한 인지도를 높이고 선진국의 기술과 정보를 익히는 놓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선언서가 세계 안전보건의 이정표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전체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노동자이고,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노동자이고, 100만명이 넘는 이들이 ‘특수하게 고용된’ 노동자다. 이들은 낮은 임금으로 더 많이 일한다. 땅속에서 일을 해도, 하늘에서 일을 해도, 안전수칙을 알려주는 이가 없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으려면 직장에 사표를 내야 한다.
좋은 기술과 정보를 써먹기 위해서는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관료와 전문가의 지식욕을 채우기 위한 ‘안전’이 무슨 쓸모인가.
7월 2일 모란공원에서는 문송면 20주기 추모비를 세웠다. 열다섯 소년은 그 자리에 누워있는데,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고, 쉰을 바라보는 나는, 우리는 부끄럽다. 미안하다.
1987년
열 넷 가난한 농꾼의 아들로
서울 공장에 팔려와
당신 몸에 심어진 것은
소년노동 철폐와 산재추방의 꿈이었다
열 다섯, 당신은 죽지 않았다.
당신은 수은보다 더 오래
이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오늘도 평등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순박한 거처가 되고 있다
우리의 출발이며
우리의 끝일 당신과 함께
우리는 오늘도 바라나니
해맑고 강인한 꿈들이여!부활하라 (송경동 시인, 2008.7. 2 문송면20주기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