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외국인 노동자의 무너진 ‘코리안 드림’

[KBS TV 2006-05-09 09:21]

<앵커 멘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금 벼랑 끝에 몰리고 있습니다.

한푼이라도 벌겠다며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한국을 찾아왔지만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 채 목숨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눈에 한국이라는 땅은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요?

정지주 기자.. 우리나라의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얼마나 되나요?

<리포트>

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40만 명인데요, 이 가운데 절반인 20만 명 정도는 불법 체류자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처음에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지만, 브로커에게 진 빚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체류자로 남고, 목숨을 걸고 단속을 피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무너진 코리안 드림을 취재했습니다.

지난 3일 새벽, 한 공장 근처의 가건물 숙소에서 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베트남 출신 노동자였던 그녀는 손이 묶인 채 불에 타 숨져있었는데요, 공장 관계자들은 취재진이 접근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인터뷰>공장 관계자: “나가세요. 우리도 좀 삽시다. 우리의 억울함을 당신들이 어떻게 풀어줄 건가요? 그냥 가세요.”

숨진 여성은 지난해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기한이 끝난 후에도 불법체류자로 공장에서 일해 왔습니다.110만원 월급으로, 베트남에 있는 남편과 딸의 생활비를 부쳐왔는데요. 그녀의 친구가 화상전화를 통해 사망 소식을 알리자,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숨진 베트남 여성의 남편: “직접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아내의 죽음)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지금 딸은 고등학교 진학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엄마의 소식을 듣고 매일 울고 있어요. 베트남에 아내의 묘지도 준비해 놓았고요. 어서 한국에 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왜 숨진 것일까요? 취재진은 그녀와 절친했다는 한 동료를 만났는데요, 그 여성은 숨지기 하루 전날 월급을 받고 좋아했다며, 누군가 돈을 노리고 그 같은 일을 저지른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직장 동료 (베트남 외국인 노동자): “전에 같이 일했던 베트남 사람 두 명이 월급 받는 것을 봤어요. (그 사람들은) 작년에 도둑질하고 오토바이로 도망가다 부산에서 경찰한테 잡힌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불법체류자이다 보니, 수사도 쉽지 않은데다, 가족들이 한국에 오는 것조차 어려움이 있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조재호 : “베트남에서 유가족이 와서 시신을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급한 것이죠. 그것을 빨리 해줘야지. 이 분들은 베트남에서도 (유가족의) 여권을 빨리 만들어 준다니까… 한국에서도 시신을 계속 병원에 둘 수 없잖아요.”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숨지거나 다치는 일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이 전자회사에는 갑자기 불법 체류자 단속반이 들이 닥쳤는데요, 당황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러다 창문에 달린 에어컨 선을 잡고 도망치던 한 중국인 노동자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인터뷰> 목격자: “일을 하고 있는데 애들이 (1층에서) 우르르 올라왔어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단속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도망)갈 데가 없어서 창문을 내다보더라고요. (내가) 1층 공장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니까 사람들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모두) 숨거나 잡혀갔다고 생각했죠. “

사고를 당한 이는 올해 갓 스무 살의 중국 청년. 고향에선 귀한 외아들이었지만, 이 곳에선 불법 체류자였는데요, 그는 유학 비자로 이곳에 와서 학비와 가족 생계비를 위해 취업을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직장 동료(중국 외국인 노동자): “공부하고 싶은 마음,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돈 때문에 이렇게 이 회사(공장)에 와서 일했어요.”

중국에 돌아가면, 번 돈으로 좋은 집 한 채 마련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는 중국 청년. 하지만 그는 지금 일주일째 의식 불명 상태입니다.

<인터뷰>황순구 (창원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지금 뇌압이 굉장히 높은 상태여서 굉장히 위중한 상태입니다. 대개 이렇게 심한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생존한다고 해도 후유증이 많이 남습니다. ”

당장 병원비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당시 동료들은 사고가 난 것을 보고서도, 자신들 역시 불법 체류자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인터뷰>김형진 (경남외국인 노동자상담소 상담실장): “유학생으로 들어오면서 자기들이 지불한 비용이 중국 돈으로 6만원. 우리나라 돈으로 800만 원 정도인데, 이 사람들이 친구가 떨어져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는 이유는 그 800만원 (브로커 비용)을 갚아야 하니까 도주를 하게 된 것이죠. ”

단속을 당할까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 그들은 왜 그런 고통을 감수하며 이곳에 있는 걸까요? 몽골의 대학교수였다는 이 남성은 교수월급 30만원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합니다.

<인터뷰>몽골 외국인노동자: “우리나라 (몽골)에서는 90년대부터 회사들이 다 망해서 일자리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다 외국으로 나갔어요. 몽골 사람들이… 돈, 월급도 너무 적어서 (외국으로)나갔어요. 저는 한국으로 왔고요.”

교수였던 그는 이곳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딸 학비를 대기, 위해 불법 체류자로 사는 고통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여느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는데요,

<인터뷰>몽골 외국인노동자: “며칠 전에 사람들이 잡으러 왔어요. 무서워서 3일 동안 pc방 찜질방에서 잠자고, 낮에 일하고… 그렇게 힘들었어요. ”

불법 체류자라는 것 때문에 심지어는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하는 데요. 2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슈릭 부부는, 돈을 벌러 왔다가 오히려 돈도, 건강도 잃었다고 합니다.

<인터뷰>슈릭(우즈베키스탄 외국인노동자):“불법(체류자)도 사람이에요. 잔업도 했고 하루에 12시간, 13시간씩 일해서 돈 벌었어요. 우리도 힘들게 벌었어요. (돈을) 그냥 번 것 아니에요.”

슈릭씨는 지난해, 작업 중에 금속이 튀어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탭니다.남은 눈마저 점점 시력이 떨어져 수술이 시급하지만 수술비가 없다는데요,

<인터뷰>슈릭 (우즈베키스탄 외국인노동자): “우리 남편 아직 36살. 하나도 눈이 안보여요. 어떻게 마음이 안 아파요. 마음이 많이 아파요.”

게다가, 하루 일당 2만 3천원을 1년 넘게 모아 마련한 전세 보증금 천만 원까지 날리게 됐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집을 넘겨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는데요.

<인터뷰>슈릭(우즈베키스탄 외국인노동자):“우체국 직원이 와서 (매각기일통지서를) 갖다 줬어요. 우린 무슨 편지인가 했고, 또 다시 할머니(집주인)가 왔어요. ‘너한테 필요 없어. 우리 문제야.’ (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가져갔어요. 우린 신고도 못해요. 불법 (체류)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에 두고 온 아이들이 너무나 그립다는 슈릭 부부, 하루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그동안 고생한 것이 아까워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슈릭씨의 부인(우즈베키스탄 외국인노동자):“12살, 13살 된 우리 아기들이 마음이 많이 아파요. 우리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엄마 아빠 언제와요?’라고 물어봐요. 우리는 ‘기다려, 기다려.’(라고 말해요.) 1년 전부터 기다려, 기다려… 우리 내일, 내일 모레 간다고 얘기해요.“

현재 우리나라의 불법 체류 노동자는 약 20만 명. 법을 어기고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지만, 그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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