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회사 VS 시민사회단체, ‘약값 전쟁’

[프로메테우스 2006-06-16 11:35]

△ KRPIA가 주최한 기자간담회. 포지티브리스트 도입이 환자의 신약접근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송기향

환자접근권 두고 포지티브리스트 찬반 충돌

[프로메테우스 송기향 기자]
다국적제약회사들의 대표들이 모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약제비적정화 방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15일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이 환자의 신약접근성을 침해하고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환경을 저해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며 강한 반발을 표시했다. KRPIA는 지난 달 4일에도 이 방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국적 제약회사, “포지티브 리스트는 환자접근권 제한할 것”

KRPIA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이 건강보험의 약제비 증가요인이 아니며 KRPIA는 한국과 세계의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발표했다.

이날 참석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표들은 포지티브 리스트 도입이 한국 환자들의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박제화 한국얀센 대표이사는 “신약이 필요한 환자의 입장 및 환자의 신약사용제한 여부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톰 메이슨 한국BMS 제약 대표이사는 “복지부의 방안은 업계와의 조율없이 발표된 것”이라며 “견제와 규제가 가능한 조건이 이미 갖춰져 있는데 포지티브 리스트를 더 추가하여 환자의 접근권을 제한할까 걱정이다”라며 포지티브 리스트 도입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제즈 몰딩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대표이사는 환자들에게 혁신적 신약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연설하면서 “복지부의 방안은 투자환경을 저해해 신약개발의 의지를 감소시킨다”고 강조했다.

△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가진 기자회견. ‘이윤보다 생명이다’를 외치며 다국적제약회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 프로메테우스 송기향

과거 한국에서 문제가 됐던 글리벡을 보유한 한국노바티스, 한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혁신적 신약을 다수 보유한 쉐링-푸라우코리아, 에이즈에 대한 신약을 보유한 한국로슈의 대표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환자 접근권 제한하는 것은 포지티브 리스트 아닌 고가약

한편 KRPIA의 기자간담회에 앞서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이 다국적 제약회사의 입장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국적 제약회사가 환자의 목숨보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를 규탄했다.

권미란 공공의약센터 대표는 “초국적제약자본이 말하는 혁신성이 한국민중을 위한 것인가. 빨리 한국에 들어와서 비싼 값으로 약을 팔고 독점권을 오래 유지하겠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실장은 “스위스 같은 신약개발국가도 포지티브리스트를 도입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신약에 대해 접근권을 제한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비싼 약가 때문에 제3세계 국가들이 접근권을 제한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회견문에서 ‘선별등재목록의 선택은 신약에 대한 차별로 신약개발에 관련된 투자 욕구를 감소시켜 소비자들의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줄인다’는 KRPIA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미 오스트리아, 호주,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등 많은 OECD국가들이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약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된 적은 없다며 KRPIA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 기자간담회장에 들어가려는 시민단체 관계자를 조선호텔측에서 막아섰다. ⓒ 프로메테우스 송기향

이들은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의약품이 고가이기 때문”이며 “자신들이 생산하는 약품을 고가로 유지하고 이에 대한 값싼 복제약품의 생산을 특허보호라는 주장으로 막고 있어 의약품이 있음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환자들이 한해에 천만 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약센터, 기독청년의료인회다함께, 의료사고시민연합, 정보공유연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한국백혈병환우회, HIV환자모임나누리+ 등의 단체가 참여했다.

시민단체와 환자의 목소리 들어달라!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들은 KRPIA의 기자간담회를 방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호텔측과 KRPIA측이 이를 막으려고 해 실랑이가 벌어졌다. 뒤늦게 간담회장에 들어온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다국적 제약회사 대표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따로 답변하겠다”는 사회자의 대답만 돌아왔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항의는 간담회가 끝난 후 복도에서 계속됐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정부 예산의 2.5%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수입으로 넘어간다”며 “접근성을 높이겠다며 고가를 요구하고 약값을 깎는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문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대표 역시 “다국적 제약회사는 연구개발을 늘린다면서 공장은 해외로 이전시키고 있다”며 한국에서 신약을 연구개발해 기여하겠다는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신약은 희망이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마치고 간담회장에 들어온 한 에이즈 환자는 “저는 새로운 에이즈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한국로슈가 새로운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약가를 높게 요구해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람들은 에이즈 때문이 아니라 약을 먹지 못해 죽는다”고 쓴 티셔츠를 들고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항의했다.

이날 KRPIA가 준비한 순서 중에 신약으로 유방암을 이겨낸 한 여성의 영상물이 상영이 있었다. 그 여성은 “신약은 한 줄기의 빛”이라고 말했다. KRPIA의 상영의도와 상관없이 환자들에게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이토록 절실한 환자들의 희망이 다국적제약회사들의 눈에도 희망으로 비쳤을지는 의문이다.

송기향 기자(ssong@promethe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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