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한미FTA] 오스트레일리아 ① 의약품도 협상 대상

[한겨레 2006-06-26 19:36]

[한겨레]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오스트레일리아 ① 의약품도 협상 대상으로

안전하고 값싼 의약품제도 ‘쥐락펴락’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는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이 상대국의 약값제도를 겨냥해 협정문에 독립된 조항을 집어 넣은 첫 나라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다. 한국이 그 다음 대상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는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보통 미국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약을 싼 값에 복용하고 있다. 시드니에 있는 공익옹호센터(PIAC)의 패트리샤 라날드 정책국장은 “미국에 견줘 3분의 1 내지 10분의 1 정도로 약값이 싸다. 이는 의약품급여제도(PBS) 덕분이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이 제도를 통해 처방의약품의 90%가 공급된다.

이 나라에서는 약이 시판허가를 받아도 먼저 독립된 전문가들로 꾸려진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PBAC)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위원회는 약이 안전한지, 비용대비 효과가 뚜렷한지 등을 따져 급여의약품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뚜렷이 나아진 게 없으면 약을 등재시키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과하고나면 의약품가격결정기구(PBPA)가 약값을 매긴다. 이 기구는 제조비용, 해외의 가격 등을 따져 약값을 결정하고 이를 정부에 권고한다. 의약품급여제도의 이런 ‘깐깐한’ 방식은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게는 안전하고 값싼 약을 공급해주는 매우 유익한 제도이다. 반면에 오리지널 약을 고가에 팔려는 다국적 제약회사에게는 ‘공포의 장애물’이다.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의악품 분야를 협상 테이블로 올려 집중공략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미 제약협회의 로비가 작용했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 제약협회는 지난 2003년 의약품급여제도가 지적재산권을 파괴하고 신약개발에 대한 투자를 저해한다며 미무역법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를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5월8일 두 나라가 조인한 협정문에서 의약품 관련 조항은 대략 50여개다. 의약품 별도 부속서 2항, 통상대표 간의 편지 형태의 이면약정, 지적재산권 조항, 분쟁해결 과정 등 4개 분야에 걸쳐 있다. 미국은 이들 조항에서 투명성과 특허권 보호의 명분을 앞세워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이 ‘혁신적 신약’을 급여의약품으로 지정할지를 판단할 때는 처리기준, 방법, 절차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또 약과 관련한 법률을 제·개정할 때 미국 정부와 제약사 등의 의견제출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특허기간 중에는 복제약의 품목허가를 금지하고 특허보호기간도 사실상 늘렸다.

오스트레일리아소비자연합은 “미국은 이런 조항들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의약품 등재와 가격 결정에 미국계 제약사의 영향력을 강화했다”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의약품급여제도의 약화와 장기적으로 약값상승과 환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비판을 일축한다. 시드니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무역대표부의 팀 하코트는“약값상승이나 급여제도의 변화는 없다”며 “중요한 점은 에프티에이를 맺기 전에는 중소기업의 19%만이 대미 수출을 했는데, 지금은 36%가 수출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사협회(AMA)의 존 오데아 홍보담당도 “공익단체들의 우려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드니 시내에 있는 ‘시드니 메디컬 센터’ 앞 한 약국의 약사는 ‘에프티에이 타결 이후 약값이 올랐는가’란 물음에 “아직은 크게 오른 게 없다”고 말했다.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은 협정 내용을 모르거나 역시 약가상승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ANU)의 토머스 폰스 교수는 “약가상승 여부를 말하기에는 아직은 때가 너무 이르다”면서 “장기적으로 가면 결국 미국과 다국적 제약사들의 뜻대로 약값이 오를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의약품급여제도의 약화”라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그 징후로 먼저 의약품 급여제도에 등재되지 못한 약의 처방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을 든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기네 회사가 만든 약을 처방하도록 하려는 로비도 더 강력해지고 있다.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가 급여의약품으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어떤 약을 등재하지 않을 경우 제약사 쪽에서 ‘재고요청’을 하고 나서는 것도 또다른 징후로 거론된다. 지난 5월 8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미국계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의약품급여자문위원회가 자사의 골다공증 약(Forteo)의 등재를 거부한 데 대해 재고를 요청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런 재고 요??은 미-오스트레일리아 에프티에이 체결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위원회는 이 회사의 약이 비용대비 효과면에서 불확실해 등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익옹호센터의 패트리샤 라날드 정책국장은 “미국과의 에프티에이는 이처럼 서서히 약값 결정시스템을 위협해 근본적으로 그 뿌리를 흔들 게 분명하다”며 “역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적어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만은 무역협상 대상이 아니었는데, 미국과의 에프티에이에서 이 원칙이 깨졌다”고 말했다.

시드니·캔버라/글·사진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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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토머스 폰스 교수
“한국은 뼈아픈 실수 따라하지 말길”

“통합적인 협상문 작성보다 개별항목 하나하나 따져야”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ANU)의 토머스 폰스 교수(법학)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자유무역협정 비판론자다. 의학박사이기도 한 그는 인터뷰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에프티에이 협상의 좋은 모델이 아니다”면서 “한국이 의약품 문제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철을 밟는다면 한국 건강보험의 근간을 뒤흔드는 뼈아픈 실수가 될 것”라고 충고했다.

협정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그는 “기업 식민지화”라는 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는 협상 과정의 문제점으로 우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준비부족을 들었다. “미국이 안을 주면 이에 대응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 기간에 지자체 선거가 있었던 것도 협상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한국도 이런 점을 유의하라고 권고했다.

그는 협상의 핵심적인 이슈가 의약품과 설탕이었는데, 모두 오스트레일리아에 불리하게 결론났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수출품인 설탕은 미국에 유리하게 협상대상에서 아예 빠졌고, 의약품 분야는 결국 미국 제약사의 이익이 관철된 결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엔지오 등 민간의 에프티에이 반대 운동과 관련해서는 “강한 저항이 있었지만 협상 자체를 막을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에프티에이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미국은 투명성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앞세워 미국계 제약사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요구를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한국 협상 대표는 통합적이고 추상적인 협정문을 작성하기 보다, 개별적인 항목을 하나하나 쟁점화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는 특히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 정당에 자금지원을 하도록 해서는 안되며, 정치인이나 고급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제약사에 들어가 일하는 경우가 결코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캔버라/이창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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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청문회 보고서
“협상대상 인정한 것 자체가 불행”

지난 2004년 2월 열한달간의 협상 끝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매듭지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은 이후 청문회를 열어 협상과정과 내용을 따진 뒤 보고서를 냈다.

상원은 이 보고서에서 먼저 의약품 별도 부속서의 ‘기본원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기본원칙이란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고 특허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원칙의 실현을 위해 약가 등재 및 결정과정에서 발생한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하고, 당국의 어떠한 검토 결과에 대해서도 이의신청 절차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협정에 담았다. 상원은 이에 대해 “정부쪽 주장대로 단순한 선언적 규정이라면 왜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이 문안을 그토록 고집해 넣으려 했겠느냐”고 꼬집었다. 앞으로 어느 특정 분쟁에서 이 기본원칙이 큰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상원의 평가였다.

상원은 이른바 ‘투명성’ 조항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투명성 조항이란 한쪽 당국이 법률·규칙 등을 도입하기 전에 상대편 국가와 제약사에 그 내용을 공개하고 의견제출 기회를 보장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또 정보제공을 요구하면 당국이 이에 응할 의무도 갖는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상원은 투명성은 당국은 물론 제약사에 대해서도 함께 부과돼야 하는 것인데, 관련 문구가 형평성을 상실한 채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상원은 또 의약품 워킹그룹(실무자회의)을 설치하기로 한 대목에 대해서도 “이 기구가 순수한 협의기구나 미국의 압력창구가 아니라는 (정부의) 시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상원의 기본 시각은 의약품급여제도같은 사회보장제도는 결코 무역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에프티에이로 비롯된 의약품급여제도의 변화는 국민의 후생이 아닌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불행하며, 이 제도를 무역협상 대상으로 인정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게 상원의 진단이다.

이창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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