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이해할 배우자 만날수 있을지…” 흉터보다 깊은 내상

[한겨레 2006-07-28 11:33]

[한겨레] 한강성심병원은 국내 최고의 화상전문센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병원은 1986년부터 화상 재건, 재활 및 후유증 치료에 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내과 등이 협진하는 화상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병원을 다녀간 환자들은 연평균 1157명(입원), 1만2807명(외래)에 달한다. 화상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지난 26일 이 병원 외과 병동을 살짝 들여다 봤다.

화상센터 3층에 위치한 외과병동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드레싱 치료 때의 ‘비명소리’는 없었다. 간혹 휠체어를 탔거나, 절룩거리며 복도를 걷고 있는 환자, 의료진이 눈에 띌 뿐이었다. 간호사실은 업무 인수인계를 앞두고 환자의 상태 등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환자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화상이 ‘완치’가 되지 않고 평생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치료비 마련할 생각과 생계에 대한 고민도 커보였다. 환자들은 기자의 취재에 묵묵부답이었다. “우리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과 “화상환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다가 느닷없이 취재를 나온 이유가 뭐냐”는 불신감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건진 목숨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걱정”

퇴원수속 의뢰를 위해 간호사실을 찾은 한 젊은 남성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첫마디는 “내가 왜 화상사고의 주인공이 돼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억울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걱정스러울 뿐입니다”였다.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3층 외과병동에서 만난 엄현식(33)씨는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5월26일 평소처럼 페인트공장에서 용제를 다루던 그의 몸에 갑작스런 불이 붙었고, 2달 남짓 치료를 받았다. 몸 32%에 3도 화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팔과 다리에는 붉은 화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3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번주 퇴원을 하지만, 다음주부터 피부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산재 적용을 받는 그는 이곳에 있는 환자들 가운데 형편이 나은 쪽에 속한다. 5500만원의 치료비가 나왔지만 보험혜택을 받으면 이 금액의 절반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화상치료의 경우 자기부담 비율이 높다. 일부만 부담하면 된다지만, 그가 느끼는 경제적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피부재활 치료의 경우 의료보험이나 산재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비 전액을 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피부재활 치료만 6개월~1년 받아야 한다고 해요.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내 피부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팔과 무릎을 움직일 때 당김 등의 기능장애도 있지만, 이 치료는 엄두도 내지 않고 있어요.”

1년 후 회사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미혼인 그는 결혼에 대한 고민도 깊다. “화상의 흉터를 이해해 줄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얼굴도 다치지 않았고, 다른 환자에 비하면 상태가 양호한 편이어서 다행이라고 위로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8개월 치료받는데 1억원이 훌쩍 넘는 병원비와 생계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요.”

이 병동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돼 외과병동으로 옮긴 경우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최소 한번 이상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보이지 않았다. 엄씨처럼 환자와 그 가족에게 떨어진 병원비 부담과 사회 복귀에 대한 고민이 많은 탓이다.

“화상환자는 치료비 때문에 두번 죽습니다.”

페인트공장에서 꿈을 키우던 김아무개(25)씨도 지난 4월 갑작스런 화재로 병원에 입원한 경우다. 당시 3명의 직원이 화상을 입었는데, 1명은 숨졌다. 김씨는 얼굴과 귀, 목, 양손과 팔·다리 30%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여전히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고 있고, 입도 제대로 벌려지지 않는 기능 장애 고통을 겪고 있다.

“얼굴에 화상을 입어 제 경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겼어요. 자살충동도 자주 느끼고요.” 병원 내에서 ‘가가멜’이라 불릴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지만, 말못할 고민이 많다. 지금까지 3700만원의 병원비가 나왔는데, 1200만원은 본인 부담이다. 눈과 입의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성형수술은 물론 피부재활 치료도 받고 싶지만, 보험 적용이 전혀 안돼 고민 중이다. 수천만원의 수술비가 들 것인데, 현재로서는 1천만원을 훌쩍 넘긴 치료비를 조달하는 것조차 빠듯한 상태다.

피부재활 치료란 이식한 피부의 색과 감촉을 사람의 피부처럼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을 경우 흔히 ‘떡살(비후성 반흔:피부가 부풀어 오름)’로 인해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때문에 피부이식을 받은 화상환자들에게는 피부재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치료 항목으로 꼽힌다. 피부이식은 미용목적이 아니라 체온 조절과 수분 유지, 박테리아 같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 기능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많은 환자들이 경제적 압박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작년부터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고 하지만, 이것 또한 화상환자의 현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를 개선하기 위해 하는 피부이식수술의 경우 자가피부이식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지만 인공피부나 사체피부, 배양피부 이식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화상을 입은 환자의 몸에서 이식할 만한 건강한 피부를 찾기란 쉽지 않고, 살을 뗀 자리에 또 다른 흉이 생기기 때문에 인공피부 이식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자가피부이식에 앞서 인공·사체 피부이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인공피부는 손바닥만한 크기 한 장이 100만~300만원에 달한다.

“눈이 감기지 않아 6개월쯤 뒤 성형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고민”이라는 김씨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평생 화상의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환자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화상연고나 피부이식 수술과 피부재활 등은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보험급여 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상환자는 돈이 있어야 한다?”

환자들의 공통된 불만은 ‘막대한 치료비 부담’이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환자 대부분이 산재나 갑작스런 사고로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저소득층에 속한다. 강아무개(46)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6월19일 소형 부탄가스통이 폭발, 온몸에 불이 붙은 아내를 구하다 양쪽 발에 화상을 입은 그는 이날 사고로 집을 몽땅 날렸다. 몸의 52%에 3도 화상을 입은 부인은 지금까지 내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19일 사망했다.

부인의 죽음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상태였지만, 그를 짓누르는 것은 “막대한 치료비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6000여만원의 진료비가 나왔지만, 그가 가진 것이라곤 달랑 ‘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타일 붙이는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온 강씨는 퇴원 후 마땅히 돌아갈 거처조차 없다. 그는 “화상환자와 그 가족에게만 치료비를 전적으로 떠맡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화상 환자에게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치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의료보험 혜택을 통해 부담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는 응급 화상환자 진료시스템의 부재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이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아내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생각할수록 억울할 뿐이에요. 화재가 난 뒤 원주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어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으면서 담당교수 결정을 봐야 한다며 하루를 꼬박 방치하더라고요. 치료가 힘들면 바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응급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아내를 잃은 것 같아 분합니다.”

강씨뿐 아니라 엄씨나 김씨도 화상환자 이송시스템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경기도 발안에서 오전 11시 화상을 입은 엄씨는 수원에 있는 종합병원을 거쳐 여섯시간이 흐른 뒤인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이 곳에 올 수 있었다. 김씨는 논산에서 화상을 입은 뒤 대전의 한 대학병원-서울의 한 병원을 거치면서 열두시간을 허비한 경우다.

여천공단에서 화상을 입은 정아무개씨는 여수의 한 대학병원을 거쳐 두시간 만에 이곳에 왔다. 그런데도 응급차 이용료나 병원 응급실비 등은 꼬박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이는 애초부터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지만, 화상전문병원이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어 지방환자들은 이송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화상 전문가들은 “화상을 입은 후 신속하게 치료가 되면 화상으로 인한 피부 괴사나 감염 등의 손상이 더이상 진행되지 않으므로 초기 화상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화상 면적이 신체의 20% 이상이 되는 경우 쇼크를 일으켜 생명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어 화상 전문병원으로의 이송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화상전문병원 및 응급의료시스템 구축 서둘러야”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의료보험 적용 확대다. 하지만 현재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쪽은 화상환자의 어려움은 알지만, 건강보험의 예산과 의료보험 대상 환자들과의 형평성을 들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화상전문병원 쪽도 건강보험 확대에 부정적이다.

강씨는 “치료뿐 아니라 정신적 치료 및 재활, 사회 적응 훈련까지 가능한 화상전문병원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아무개(29)씨는 “입 부위가 흉터로 망가져 앞으로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장애등급도 받지 못하고,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화상환자들의 고통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정부나 사회가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고 바램을 전했다.

화상환자들의 이런 불만은 의료진을 통해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 병동 김종순 수간호사는 “화상은 갑작스런 사고를 통해 발생하고, 막대한 치료비 등으로 가족의 붕괴가 쉽게 일어난다”며 “가족과 사회의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한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사고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만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오원희 사회복지사는 “화상환자의 경우 환자나 가족의 지원과 경제적 능력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진료비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너무 큰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응급치료 때만 400만~500만원, 전신 30% 화상이 넘을 경우 1000만원을 넘는다는 것이 오씨의 설명이다. 그는 “2003년부터 병원 안에 화상환자후원회를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화상환자들의 진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며 개인과 사회의 후원과 관심을 당부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