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실업·재취업…건강관리 꿈도 못꿔

[한겨레 2006-01-19 20:09]

[한겨레] 비정규직 548만명 지배적 고용형태 굳혀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상징’이다.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으로 그 숫자가 급증하면서 2005년 말 현재 548만명(노동부 통계)에 이른다.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신분이 불안정한 노동자까지 더하면 그 수는 85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특히 1998년 경제위기 이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이후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의 거의 지배적인 고용형태가 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임시직과 일용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세대간 재생산 양상도 띠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용안정이나 복지, 노동과정 속에서의 안전 및 건강상태에 대한 배려나 대책은 제대로 없는 상황이다.

#1. 비정규직 철도노동자 이정규(35)씨

겨울 바람이 황소울음을 내며 귓전을 때린다. 오전 6시40분, 이른 시간이지만 철도노동자 이정규(가명·35)씨는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오전 8시까진 일터에 닿아야 한다. 작업이 시작되는 9시 전에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따라 몸은 천근만근이다. 만성 근육통과 수면 부족에다 어제도 꽤 술을 들이켰다. 술은 일주일에 네댓차례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1갑 이상 피운다. 게다가 따로 운동이라곤 하는 법이 없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누가 나같이 늙은 양부모 모시는 돈없는 이에게 시집 오겠냐?”며 헛헛이 웃는 노총각 이씨는 아직 30대 중반인데도 40대 후반처럼 겉늙어 보였다.

이씨가 하는 일은 기찻길을 고치는 작업이다. 보통 나무침목은 80㎏, 콘크리트 침목은 230㎏이나 나간다. 땅에 박힌 침목을 뽑아 새로 갈아박는 일인데, 위험하기까지 하다. 국철의 경우 하루에도 1000대 이상이 선로를 오가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다치는 일도 흔하다. 허벅지 타박상과 손가락 골절상은 예삿일이다. 큰 부상이 아니면 집에 와 적당히 찜질하고 참는다. 병원 갈 시간도 없거니와 병원비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1년짜리 계약직이다 보니 아파서 쉰다고 하면 회사에서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버틴다. 이씨는 만성피로감에 시달리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늘 머리가 무겁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1년간 결근 한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몸이 무너질 듯 아파도 끌고서라도 일하러 나가죠. 힘겨운 막일이지만 이마저 없으면 부모를 어떻게 모시겠어요.” 이렇게 꼬박 한 달을 일해 그가 받는 급여는 기껏 110만원이다. 입사한 지 5년이 되지만 급여는 기본급 83만2천원, 위험수당 30만원으로 매달 똑같다.

이씨는 평소에도 사는 게 힘겹다고 느끼지만, 겨울이면 정신적 스트레스 지수가 임계점으로 치닫는다고 한다. 지난 4년간 겨울만 되면 철도공사(옛 철도청)는 “좀 쉬어라”는 말 한마디로 계약을 해지했다. 두 달 정도 쉬고 있으면 다시 연락이 와 재계약을 한다. 지금 가장 큰 바람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겨울만 되면 “좀 쉬라” 말 한마디로 계약 해지
“건설노조원 1천명중 운동하는 사람 50명 미만”
“허벅지 타박상 손가락 골절은 예삿일”
“아파도 파스 붙이고 또 일 나가야 해”

#2. 여수지역 건설현장 용접 최동식(40)씨

여수지역 건설현장에서 18년째 기름밥을 먹는 최동식(40·가명)씨는 용접공이다. 그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지난달 받은 임금은 고작 53만원. 한 달에 열흘도 일을 못한 탓이다. 최씨는 이제 숙련공 대접을 받아 한달 꼬박 일하면 많을 때는 300만원을 거머쥐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철’이다. 일이 늘 고정적으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용역업체 소속의 건설노동자인 최씨는 짧으면 사흘씩, 길어봐야 서너달짜리 계약직으로 일한다.

전세 아파트에 4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터라 한달 일을 못하면 몇달 동안 고생을 한다. 사십줄을 넘어서면서 최씨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지만, 방치하고 있다. 최씨는 허리며 다리를 어지간히 삐끗해도 아픈 티를 내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몸이 아프면 다음 일자리를 얻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쪽은 성한 일꾼도 많은데 굳이 아픈 사람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현장이 바뀔 때마다 회사 쪽에 건강검진 결과를 의무적으로 내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피 뽑고 방사선 촬영 한번 하면 끝”이라는 게 최씨의 얘기다. 정식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아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최씨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술을 마시고, 한번 마시면 소주 1병은 까야 한다. 작업 현장의 분진 때문에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마지못해 담배는 끊었다. 그는 운동을 하느냐는 물음에 “일도 고되고 힘들어 죽겠는데 쉬는 시간에 또 땀흘리며 뛰고 싶은 생각이 들겠냐”며 “비정규직 건설 노조원 1천여명 가운데 운동하는 사람은 50명 미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장에는 늘 쇳가루와 분진이 휘날린다. 지난 11월 초에도 한 업체의 대규모 공사에 참여했는데 회사 쪽에서 이미 한번 사용했던 일회용 분진 마스크를 씻어서 지급해 “일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회사는 분진마스크가 아니라 일반 마스크를 새 걸로 가져다 줬다. 최씨처럼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다쳐도 산재인정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현장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보니,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거쳐왔던 모든 현장에서 근무확인을 받아야 한다. 현장을 찾아가도 대부분 회사들이 “일할 때는 아픈 데 없다고 하더니 뒤늦게 웬 말이냐”며 펄쩍 뛴다.

최씨는 “몸이 욱신거리면 약국에서 파스 사다 붙이고 또 일을 나간다. 파스 붙이고 땀흘리다 보면 어느새 아픈 지 안 아픈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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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산재요양 ‘사각지대’서 고통

이정규(35)씨 같은 선로반 철도 노동자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고, 중량물, 반복작업, 불편한 작업자세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에 걸릴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씨는 정규직과 함께 같은 작업을 하면서도 그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데다 겨울이 되면 ‘쫓겨나야 하는 신세’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최동식(40)씨 같은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의 건강장해는 중층 하도급구조에서 시작된다. 원청건설사는 저가낙찰, 공기단축을 유도함으로써 노동조건의 열악함, 안전시설의 미비, 임금인상 억제 등 수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을 고용위기에 휩싸이게 하고 ‘선택’되기 위해 스스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위험한 노동환경을 감내하게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지속하다 보니 육체의 회복능력은 점차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고용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잦은 퇴직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건강검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요양 이후 작업복귀를 보장받지 못한다. 오히려 산재요양은 취업제한의 빌미가 된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중대한 손상이 아닌 이상 산재처리를 두려워한다. 고용의 위기는 생존의 위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용불안감으로 인하여, 산재은폐와 산재보험적용에서의 제한과 불평등을 받는 것을 노동자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와 최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가장 심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과도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는 물론 무엇보다도 안정되지 못한 고용상태다. 최씨처럼 일거리가 없어 비자발적인 실업상태에 있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가장 심해지고, 심하면 대인기피증마저 생기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잦은 실업과 재취업의 반복고리 속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야 하고, 몸은 병들어 가고 있다.

고상백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손미아 강원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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