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제자리’

[레이버투데이 2006-08-18 19:10]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2주년을 맞아 국제엠네스티가 17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이주노동자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사진> 국제엠네스티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해인 2004년부터 한국사회의 대표적 인권 현안 중 하나인 이주노동자 문제를 조사해 왔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2004년 9월과 10월, 올해 2월에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엠네스티 국제사무국의 라지브 나라얀(Rajiv Narayan) 동아시아 조사 담당관은 “국제엠네스티의 조사가 시작되던 시점과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지 2년이 되어가는 현재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이주노동자 보호방안을 법제화했지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 직장 변경의 어려움, 위험한 작업환경 등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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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장 이동의 자유 = 국제엠네스티는 보고서에서 “가장 인권침해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것이 노동자에 대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엠네스티는 “2005년 한국 국회조사에 따르면 5명 중 4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허가 없이) 직장 이동이 불가능 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불만을 토로했으나, ‘고용주들의 반감을 사게 될 것’이라는 공포와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험이 이들로 하여금 건강문제와 학대를 보고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국제엠네스티는 “직장 이동에 대한 너무나 적은 권리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법적인 고용주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다른곳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어 일 하게 만든다”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불필요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발생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임금 = 국제엠네스티의 보고서는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차별’과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엠네스티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그들의 국가에 있는 고용대행기관들에 의해 엄청난 빚을 지게 되지만, (임금 문제로 인해) 그들이 기대했거나 약속받았던 것보다 더 위험하거나 적은 임금의 일자리를 찾게 된다”며 “임금 차별과 임금 체불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장을 바꾸는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 문서 압류 = 고용주들에 의한 언어 및 신체적 학대와 더불어, 여권이나 근로계약서 등 공적문서를 압류하는 문제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엠네스티는 “학대와 문서압류 등에 대한 보고가 끊이지 않았다”며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장 이동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이주노동자 스스로 자신들의 법적지위를 증명할 수 없게 해, 한국에서 일 할 권리가 남아 있는 노동자조차 구금되거나 추방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 여성 이주노동자 = 보고서는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에 달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각종 차별 및 성적 학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국제엠네스티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남성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임금 차별을 받고 있으며, 2004년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12%의 여성이 직장 내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제 엠네스티는 “여성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해고’와 ‘이주노동자 지위를 잃을 것’이 두려워 성적 학대를 신고하지 않고 있으며, 성폭력을 당한 여성 이주노동자 중 54%가 고용주로부터 ‘신고할 경우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포·구금·추방 = 고용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2003년 8월 국회를 통과한 후, 같은 해 11월부터 본격화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포·구금·추방’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국제엠네스티는 “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2005년 10월까지 3만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추방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추방되기 전까지 구금돼 있던 시설들도 매우 열악한 환경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1월 구금되어 있던 이주노동자 중 20%가 구타당한 경험이 있으며, 40%는 언어폭력으로 고통 받았다고 호소했다”고 밝혔다.

◇ 연수생제도 = 이번 보고서는 고용허가제 도입에 앞서 90년대 초반부터 시행돼 온 산업연수생제도와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우리나라기업이 해외에 직접투자 해 기술 또는 산업설비수출을 한 현지법인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을 해당 기업이 2년 이내의 기간 동안 한국에서 연수를 시킨 후 다시 현지법인에 근무시키는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두가지 연수생제도에 대해 국제엠네스티는 “두 제도 모두 외국인 연수생들에 대한 ‘노동자’로서의 법적지위를 부정하고 있으며, 외국인 연수생들에 대한 고용주들의 차별 및 학대 문제가 수없이 보고돼 왔다”며 “한국 정부가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할 의지를 보인 점은 다행이지만,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점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의 경우, 현지법인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외국인을 허위 서류를 동원해 불법적으로 입국시키거나, 해외 투자법인 자체가 없는 회사가 편법을 동원해 외국인을 고용하는 등의 문제가 지적돼 왔다.

◇ 결사의 자유 = 각종 국제법 및 국제 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지난해 5월 합법적 노조설립을 시도한 바 있으나, 노동부가 노조설립필증을 교부하지 않아 현재까지 ‘법외노조’ 형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국네엠네스티는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일터에서 발생하는 차별 등 권리침해로부터 노동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ESCR),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등에서 인정하고 있는 ‘모든 이의 결사적 자유’에 대해 한국정부가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투쟁 지지·지원”
노동시민사회단체 “단속추방 중단·전면 합법화” 촉구
고용허가제 2주년을 맞은 17일, 한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노동권 쟁취·전면합법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고, 선언 내용에 공감을 표하며 서명한 각계 인사 1,014명의 명단을 공개했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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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연석회의)는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적극 지지·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석회의는 “이주노동자들의 작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한 고용허가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들고, 법무부는 이들 불법체류자를 강제 추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추방을 중단하고, 모든 이주노동자를 합법화 하라”고 촉구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손상열씨는 “애초 고용허가제가 설계될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고려되지 않았다”며 “‘준노예제’와 다름 없는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인권적’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며, 특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자의적 판단’에 근거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단속하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초법적 권리’는 제한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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