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하산’엔 능력도 비젼도 없다!
– 근로복지공단 신임 이사장 임명에 즈음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방극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지난 4월 7일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반노동자적 의식과 행태로 말미암아 시종일관 문제를 일으켜왔고, 자질이 의심되던 이였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발생한 근로복지공단 간부와 병원 사무장, 지역건설업체 대표, 위장취업 브로커 등이 개입된 대규모 산재사고 위장 보험사기 사건은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산재 심사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등 고의로 산재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보여 과연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기관인가를 의심케 하는 예들이 허다하였다. 한편 감사원의 감사에 의해서는 영업손실 누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산 편성 지침을 무시, 임금을 편법 지급하는 등 방만 경영을 일삼아온 것으로 드러나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함량 미달인 이사장이었다. 그러므로 잔여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형식적으로 해임되기보다는 훨씬 이전에 해임되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해임된 것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반노동자적인 행태를 보여왔던 방극윤 이사장이 해임되고 신임 이사장의 임명이 거론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상적인 정부, 합리적인 임명권자라면, 신임 이사장은 전임이사장의 전철을 밟지 않을 인물로 임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과연 정부가 그러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4월 말 신임 이사장의 임명을 두고 벌써부터 정치권의 실세에게 줄을 대고 있는 정치꾼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또한 전임 이사장을 해임한 것은 그에 대한 평가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여권 내 기생하는 정치꾼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혹이라도 임명권자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임명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하는 바이다.

능력도 없고 철학도 없는 정치꾼들이 정부 산하 기관장으로 낙점되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할 생각이 없다. 업무 능력과 업무에 대한 비젼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정부 산하 기관을 경영함으로써 나타난 폐해가, 기관의 경영 부실과 기관의 공적 기능 상실로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도 없고 철학도 없는 이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부실 경영과 비합리적 운영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저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의 이사장을 임명하는 데 있어, 단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는 것만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히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직 이기주의와 사용자 편향적 사업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실업자가 증가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면서 산재 및 직업병의 빈도와 중증도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건강하고도 안정적인 삶에 대하여 상당 부분 책임을 지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철학과 비젼을 가지고 있으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운영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아직도 정권 내 핵심 세력들이 정부 산하 기관장의 임명을 그들의 입맛에 맞는 대로 자신의 측근들에게 나누어먹기 식으로 갈라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미망에서 깨어날 것을 엄중히 권고하는 바이다.
정부는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인선 기준을 공개하고, 노동자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야 하며, 인선 기준에 합당한 인물을 선정하는데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할 것이다. 이땅의 노동자와 산재노동자, 노동자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 단체들은 신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선임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을 얄팍한 흥정의 대상으로 사용하지 말라.

2001. 4. 23

전 국 노 동 자 건 강 단 체 협 의 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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