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여성 노동자의 건강하고 안정된 노동을 보장하라
– 여 3당의 모성보호법안 시행 시기 유예 결정에 반대한다 –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등 여3당은 지난 24일 모성보호법안을 통과시키되 시행 시기를 2년 정도 유예하는 경과규정을 두기로 결정하였다. 여성노동자의 출산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확대하고, 부모를 막론한 육아휴직시 30%의 급여 지급, 월 1회 유급 태아검진 휴가, 현재 행정지침인 유산·사산 휴가의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국제노동기구(ILO) 최소기준에 준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법제화되어야 할 성질의 요구이었다. 그러나 재계는 이 법안에 대하여 이로 인한 기업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법안의 수정 내지는 보류를 주장하였고 작년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고 국회본회의 통과만 남겨두었던 이 법안은 이제 그 시행여부를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정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던 모성보호법이 좌초될 위험에 처한 것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이번 법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적 부담 원칙은 사회가 그 사회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우리는 판단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8500억 원의 기업 부담이 늘어나 기업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논리로 법안의 수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하여 기업의 부담을 부풀려 계산하였다는 의혹이 짙다. 우리는 재계가 당연히 분담하여야 하는 모성보호 비용을 부풀려 계산함으로써 국민을 미혹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재계는 자신들이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과다하게 계산함으로 말미암아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시도를 중지하여야 한다. 또한 재계가 마땅히 감당하여야 하는 이러한 사회적 부담으로 인하여 기업의 경제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과다한 선전도 중지하여야 한다. 모성비용의 사회적 부담으로 말미암아, 육아 등의 이유로 안정적인 노동에 종사할 것을 포기하는 대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획득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보아 경제적 발전에 이익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이 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경제적 효용’의 논리에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성보호법은 출산과 육아를 비롯한 가사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여성 노동권의 원천적 박탈을 가능한 막아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모성보호 비용이 개인에게 떠맡겨지거나 개별 기업에 지워짐으로 말미암아, 여성의 평등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비용은 당연히 사회적 부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당하다. 또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을 한 사회가 미래를 위한 가치있는 투자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불필요한 지출이라는 측면에서 조명되는 작금의 사태는 기업이 왜 존재하며 경제적 발전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품게 만드는 사태이다.
우리는 노동자, 서민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들에 대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재계의 이해만을 대변하려는 경향이 정부, 여당에 존재함에 대하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재계의 목소리에 눌려 국민의 건강권,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 정부, 여당이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계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현 정부는 ‘서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업주의 정부’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박에 없을 것이다. 정부, 여당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경제적 효율성 논리에 우선하여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임을 다시금 명심하기를 바란다.
2001. 4. 26.
노동·건강·연대(준) /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