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근로복지공단은 사회보험기관의 책임을 다하라
– 학습지노동자 산재신청 반려에 붙여

이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통령조차 내수침체가
비정규직노동자의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빈부격차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체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숨어있다는 걸
대통령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노동자들 가운데에도 아예 노동자의 이름을 거부당하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특수고용노동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정규직고용을 회피하고 노동자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활동의 희생자들이다.

지난 6월 대표적 특수고용노동자라 할 수 있는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학습지업체의 부당영업행위가 사회문제화 된 바 있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사망한 한 학습지노동자의 사례가 기폭제가 되었다. 회원수를
늘려야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를 악용하여 교사에게 영업실적을 강요하고, 현행법
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조건을 이용하여 오히려 억압적인 노무관리를 행하는
모순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지교사들은 고용구조나 업무내용상 노동자가 아닐 이유가 없지만, 이들을
고용하여 수천억의 이윤을 내는 기업측의 이해관계와 이른바 ‘굴뚝산업’ 시대의
노동자만을 노동자라 생각하는 법원의 시대착오적인 판결과 담합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시키지 않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복지업무를 관장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앞장서서 이들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4월 사망한 학습지노동자의 산재 신청에 대해서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 는 이유로 산재승인을 거부하였다. 이어 지난
8월에도 학습지노동자의 산재신청을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유로 신청서를
반려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학습지교사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처사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항의하고 있다.

설사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노동법상의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실질적 근로형태를 본다면 산재보험의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임을 공단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노동자를, 그것도 대표적 비정규노동자라 할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로서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노동계와 법조인,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온 만큼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의견을 고려하여야 한다.

적어도 근로복지공단은 모든 업무에서 지휘, 감독을 받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도 사회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두 학습지교사의 산재신청 반려에서
보이듯이 근로복지공단은 형식적인 법논리에 갇혀 보호가 필요한
비정규노동자들을 내쫓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존재이유는 보수적인 법원의 판단을 인용하여 사회보험신청을
반려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인지 가려서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험적용을 해나가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노동법의 보호가 필요한 이들의 노동자성을 이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보험료 걷어서 노동자 보호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지출 절감에만 신경
쓴다면 근로복지공단과 사보험기관이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근로복지공단은 학습지노동자들에 대한 산재신청서 반려 행위가 진정
근로복지공단이 해야 할 일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하기를 바란다.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거부한다면 수백만 비정규노동자들과 특수고용노동자들, 이
사회의 빈부격차와 비정규노동자 차별을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될 것이다.

2004. 9. 9

건강한노동세상/노동건강연대/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산재노동자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