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노동안전보건 행정 지방 이양 결정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지난 3월 11일 몇몇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확정하고 이에 대한 이행을 행정안전부에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향후 행정 이양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확정된 지방이양 사무는 8개 부처청 27개 기능 65개 단위사무에 달한다. 여기에는 노동부의 지도사 등록 기능, 안전 인증 등에 관한 기능, 안전보건 기능, 사업주 등의 감독 기능, 유해물질 제조 허가 기능, 유해인자 관리 기능 등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6개 기능 23개 단위 사무도 포함되었다. 지방이양이 결정된 중앙행정업무의 35%가 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된 업무인 것이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지방분권’에 반대하지 않는다. 현재 과도하게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과 행정이 적절히 지방으로 이양되어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한다. 그러나 지방분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행정 내용에 따라서는 효과적, 효율적 법 집행을 위해 중앙 집중 적일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 노동안전보건 관련 행정이 그러한 행정의 대표적 예다.

노동안전보건 행정은 크게 보아 근로감독의 영역이다. 근로감독은 법으로 정해진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지켜지는지 감시, 감독하고, 그것이 지켜질 수 있도록 지도, 처분하는 기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근로감독은 정책, 지도감독, 처분이 고도로 통합되어 분리되기 어렵다. 효과적, 효율적 법 집행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능이 통합되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로감독 업무에 일정 정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업무의 특성상 상당한 정도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업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며, 노사정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독립성을 요구받는 업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선진국이 노동안전보건 감독을 포함한 근로감독 기능을 중앙행정부처가 관할하고 있다. 물론 몇몇 예외가 있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지방분권의 역사가 강한 일부 나라에 국한된다.

이러한 원칙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위원회의 결정은 무지의 소치라 볼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대한 의도적 무시의 결과이다.

위원회 결정대로 노동안전보건 부문의 근로감독 기능이 상당 부분 지자체로 이양될 경우, 지자체간 통일적 행정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현재 조건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자체간에 허술한 근로감독을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사업체 유치를 위해 환경 파괴 결정을 일삼는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규제 완화를 외치며 근로감독을 소홀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해물질 제조 금지 지정과 허가 업무 모두를 지자체에 이양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더욱 위험하다. 지자체별로 제조 금지 유해물질 목록에 차이가 발생할 여지를 준다는 것은 유해물질 규제의 총체적 실패를 예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관련 사업체의 영업 정지를 요청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기능도 지자체에 이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이것 역시 근로감독의 효과 자체를 무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근로감독은 하되 사업주에 대한 처분권을 가지지 못했을 때 제대로 된 행정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그나마 지방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노동안전보건 관련 사항으로 지자체에 사업체의 영업 정지를 요청하던 것도 이 안이 현실화될 경우 기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현재도 지자체는 지방 노동청의 영업 정지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않아, 많은 건설기업과 유해물질 제조기업 들이 법을 어기고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처분권마저 지자체로 넘어간다면 지자체는 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되어 아무 업무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지자체가 노동안전보건 관련 업무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큰 문제이다. 지자체가 과연 단시일 내에 인력과 재정을 확충하여 이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 아니 과연 그러한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자체의 노동안전보건 업무는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위원회 결정은 실현 가능성도 없는 안인 것이다.

이번 결정의 내용은 명백하다.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하여 중앙정부는 규준을 정하는 기능만을 하도록 하고 그것을 감시, 감독하고 집행하는 기능은 지방정부가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법 따로 현실 따로 인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현실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노동자들이다. 위원회가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이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것이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무지의 결과다. 특히 노동 행정 및 근로감독 업무에 대한 무지가 이러한 결정을 낳았다. 노동 행정은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결정해야 한다는 기본 절차 과정도 무시한 위원회의 결정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고 제도화 되었을 경우 부작용만 낳을 노동 행정 개편안을,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결정한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이번 안은 원천 무효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정안전부는 위원회의 권고를 폐기하여야 한다. 더불어 노동부는 노동 행정의 전문 부처로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해야 한다. 무지한 위원회의 결정에 그대로 승복한다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호칭은 노동부 관료를 위한 호칭이 될 것이다.

2010. 3. 30

노동건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