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중독자들은 지금…
고통받은 한국타이어 노동자들 “역학조사 다시 해야”
선대식 (sundaisik)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집단 돌연사가 ‘화학물질과 큰 관련이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지난 20일 발표된 후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특히 유기용제 등 화학물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0일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여름에 40℃ 이상의 고온 환경과 야간조 근무 뒤 다시 오전조 근무를 하게 한 것 등이 한국타이어 집단 돌연사의 유발 요인”이라고 발표했다.
연구원의 발표는 집단 돌연사의 직무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원은 화학물질 노출환경에 대해 일부 지적했지만, 유기용제 같은 화학물질에 의한 전면적인 건강 피해 조사는 하지 않았다.
“소·돼지도 손·발 떨리면 역학조사 하는데…”
이에 대해 유기용제에 중독돼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한국타이어 전직 노동자들이 26일 자신들이 ‘유기용제 중독 피해의 증거’라며 전면적인 역학조사 착수를 호소했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및 유독물질 중독피해자 대책위원회’가 이날 오전 10시 반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다.
마이크를 잡은 김홍경(57)씨의 손은 무척 떨렸다. 그는 자신의 사연을 취재진에게 전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어눌한 말투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는 “유기용제 중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979년 입사해, 2000년까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2000년 7월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그는 회사에 산재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통근 치료를 받던 중 화장실에서 쓰러져 입원했다. 다시 한 번 산재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의사가 1년 6개월 이상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생계 때문에 40일 만에 퇴원했다”며 “그 서러움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결국 흐느끼고 말았다. 김씨는 “술 취한 것과 같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2002년 소송을 제기해 2004년 대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받았다”며 “한국타이어는 산재 문제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잔인하게 탄압을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0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유종원(60)씨는 현재 성기능 불구다. 이뿐 아니다. 말초 신경염·뇌경색·고혈압·정신장애·우울증 등의 질병도 달고 산다. 그를 진료한 1999년 10월께 인천 중앙병원은 그 원인을 유기용제 중독이라고 밝혔다.
“한국타이어에서는 헛소리 한다고 하면서 산재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정자가 죽어나가고 있는데. 또 손·다리가 떨리는데, 회사에서는 노인성 질환이라고 한다. 소·돼지는 다리가 떨리면 역학조사를 하는데, 우리는 안 해준다. 우리가 소·돼지보다 못하느냐.”
유씨는 “타이어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며 “서해안에 유출된 기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날 노동자들은 유기용제 중독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임헌근(50)씨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공개했다. 동영상에 비친 임씨는 혼자서 걷지 못했고,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어눌했다. 또한 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타이어 집단 돌연사에 대한 역학조사 다시 시작돼야”
이어 박응용 대책위원장은 “한국타이어 사태를 앞으로 사망자의 문제에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문제로 전환해 본격적으로 피해자들을 발굴해 낼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지난 20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사망자들이 유기용제에 중독돼 집단 사망했는데, 일하다 죽었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며 “이는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집단 사망문제를 왜곡, 은폐하려는 한국타이어 기업주의 범죄행위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책위원장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이 1983년에 가동됐는데, 유기용제 중독의 잠복 기간이 10~15년임을 생각해보면, 이제 유기용제 중독 피해자가 앞으로 집단적으로 발생할 시기”라며 “현재까지 11명의 노동자가 유기용제 중독 피해자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 국회는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02.26 15:21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