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산재처리는 ‘딴 세상 얘기’
건설노조광주전남지부, “2007년 30건 은폐”
시민의소리 이국언 기자
건설노동자인 김시한(46)씨는 지난해 6월 광주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협착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크레인으로 아파트 공사의 갱 폼을 인양하는 작업 도중이었다. 다행히 절단사고를 면했지만 새끼손가락 골절파열 정도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3일 간의 요양치료를 요하는 부상의 경우, 관계부서에 산재 발생 신고를 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당시 김씨에게 ‘공상’ 치료를 요구했다. 김씨 역시 회복 후 어차피 다시 일을 해야 할 처지여서 3개월 치료비와 보상비로 1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회사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3개월 정도면 치유가 되리라 생각했던 부상부위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고, 재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2번의 뼈 이식 수술을 포함 3차례의 수술과 입원비 등 수백만원의 치료비가 들어가야 할 처지에 이르자 김씨는 뒤늦게 회사에 산업재해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혼자 알아서 처리하라며 차갑게 돌아서고 말았다.
회사는 이에 더해 어렵사리 산재를 신청한 김씨를 상대로 보상비로 지급한 1천만원을 반납하라며 현재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9개월째 병원에서 요양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언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한 상태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건설지부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산업재해 문제로 자체 상담한 44건의 사례 중 무려 30건이 노동관서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자체 ‘공상’처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단순히 노조가 상담 사례를 집계한 수치로, 많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를 쉬쉬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산재 은폐 건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인식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하지 않고 회사 자체 내 ‘공상처리’를 할 경우 고스란히 그 뒷감당은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후유장애나 재해부상이 재발해도 보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뒤늦게 산재신청을 하려해도 개인이 관련 사실을 증빙해 내는 데는 여간 버거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건설사들이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입찰 참여시 이뤄지는 사전 심사제도 때문이다. 산재발생 실적이 감점의 기준이 되다보니 되도록 이를 감추려는 것. 건설현장의 오랜 관행인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도 주요한 원인이다. 건설현장의 7~8단계에 이르는 도급구조는 산재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은폐하는 장치로도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병선 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부장은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원청에 잘 보이기 위해서 알아서 충성할 수 밖에 없다”며 “사망사고나 중상 등 중대재해가 아니면,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나머지는 대부분 돈으로 떼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작업 중 부상을 입은 김모(53)씨. 요양치료 후 회사에 다시 일하려 했지만 거부되고 말았다. 산재처리를 했다는 이유였다. 사업장들이 이처럼 산재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다보니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산재처리를 할 경우 같은 현장에서 다시 일하는 것은 포기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거나 산재처리 블랙리스트가 돌고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당연히 노동자들 스스로 산재처리에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전병선 부장은 “사망사고의 1순위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산재발생 보고를 의무화 하고 있는 것은 가장 크게 재발을 방지하자는 차원인데, 이런 법 제정의 취지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광주지방노동청에 명예감독관 추가 위촉, 산재 은폐 사업장 엄정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산업안전공단에 의하면 지난해 1월~9월 사이 건설현장에서 1만3,690명이 재해를 입고, 이중 461명이 사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