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가장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 방치했다”
산재보험 적용배제로 ‘제도적 진공상태’ 놓인 특수고용노동자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노동부가 지난달 25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보험모집인·레미콘기사 등 4개 직군에만 산재보험 가입 특례를 부여하겠다는 내용의 이 법안은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전체 90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 가운데 일부(38만여명)에만 부분적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의 당위성과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전체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성희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제도적 진공상태에 놓여 있다”며 “제도적 보호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사법부가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소극적으로 판단함으로써 우월한 사용자의 지위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한국의 특수성에 맞는 대안적 노동자성 판단지표를 개발해 특수고용직이 과연 위장 자영인인지, 경제적 보호대상 노동자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안적 노동자성’ 판단지표로 김소장은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 유무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지 △노동이 기업조직 내로 통합되는가 △재정적 위험을 부담하는가 △보수가 노동자 수입의 유일한 원천인가 등 5가지를 제시했다.
‘노동자’ 판단 특수고용직군 10개에 달해
이를 통해 분석한 결과, 경기보조원·학습지교사·보험모집인·레미콘기사·화물기사·덤프기사·간병노동자·학원차량기사·퀵서비스기사·A/S기사·구성작가(드라마작가는 경제적 종속적 노동자)·에니메이터 등은 ‘노동자’로 구분되며, 대리운전 기사의 경우 경제적 종속관계에서 점차 노동자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 소장은 “대안적 판단기준을 적용할 때 노동자로 판단되는 직군은 총 10개에 달하고 있다”며 “자영인으로 위장된 노동자를 유사직군이라는 형태로 노동3권 적용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위장 자영인으로 분류되면서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상혁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재해율은 다른 산업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웃도는 수준”이라며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의 기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97~2004년 화물운수업 노동자 1천명 가운데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16.5~31.5명으로 같은 기간 전산업 평균 6.7~8.5명보다 서너 배 높았다. 운수업 특수고용노동자의 높은 교통사고율과 재해율은 장시간 운행과 부족한 휴식시간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비롯된 사고가 대부분이지만 제도적 규제가 없어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물리적·인격적 폭력에 노출
이와 함께 학습지교사의 경우 학부모나 지국관리자에 의한 인격적·물리적 폭력, 강간과 성추행·성희롱 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 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학습지교사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책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에 의한 인격적 폭력(6.6%) △지국관리자에 의한 인격적 폭력(6.7%) △지국관리자에 의한 물리적 폭력(2.2%) △지국관리자에 의한 성추행 및 성희롱(2.2%) 등 물리적·성적 폭력은 10%, 인격적 폭력의 경우 2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2001년에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역시 10명 중 9명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업무상재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10명 중 7명이 업무도중 재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고, 산재사고의 70%는 날아오는 공에 맞은 사고였다. 임상혁 소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업무 중 사고를 당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40년만에 개정된 산재보험법의 내용은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