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추방운동의 현재와 노동건강연대의 역할

임준(노동건강연대 정책기획국)

1.  서론

산재추방운동연합의 해산 이후 노동건강연대가 출범한지 한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산재추방운동연합은 해산하였지만 산재추방운동의 전국적 네트워크로서의 전국노동자건강단체협의회 건설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언급하기에 앞서서 산재추방운동연합의 해산과 새로운 조직건설 과정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산재추방운동에 대한 공식적이고 합의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괄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이 매우 피상적 수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가보다는 지금까지의 산재추방운동의 흐름을 되짚어 보고 이러한 역사 속에서 얻어야 할 교훈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산재추방운동의 실천적 과제를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  산재추방운동의 개괄적인 흐름

산재추방운동의 역사는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태동기인 1기는 문송면군 수은중독사건1)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2)을 계기로 노동과건강연구회로 대표되는 산재추방운동단체을 결성하고 자본과 정권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였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활동 주체라는 측면에서 진보적인 보건의료인과 법조인 등이 중심이었다는 특징과 함께 활동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대책활동, 상담활동, 초보적인 교육활동이 주가 되었던 특징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 노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활동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산재추방운동의 주요한 활동공간이 단체에 있었던 시기였다.


2기는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건설로 상징되는 노동조합의 비약적 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서는 노동조합의 역량이 강화되고 노동조합 산업안전보건활동이 일정한 궤도에 올라 산재추방운동의 무게 중심이 단체에서 노동조합으로 이동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동안 산재추방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산재추방운동단체의 위상과 역할에 일정한 변화가 온 시기라 할 수 있는데, 단체의 위상과 활동이 노동조합 활동의 정책적 교육적 지원의 역할로 전환된 특징을 갖고 있다.


3기는 이러한 흐름이 산재추방운동의 전국적인 단일 조직 건설로 모아져서 결국 산재추방운동연합이 결성으로 이어진 시기다. 그런데 이 시기에서는 산재추방운동에 긍정적인 조건보다는 IMF위기를 계기로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따라서 산재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역량의 결집이 필요하게 되었고, 산재추방운동단체, 노동조합, 그리고 산재피해자단체가 모여 산재추방운동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재추방운동연합은 이상관투쟁3)을 계기로 각 구성원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해소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기부터 3기까지 연속과 질적 비약을 경험하면서 발전해온 산재추방운동이 심각한 단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된 조건이 노동건강연대가 출범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3.  노동건강연대 건설의 의의와 새로운 산재추방운동의 전개

노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활동과 산재단체의 산재추방운동은 궁극적 목표의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동력과 활동방향에서 상이한 특성을 갖는다. 노동조합 산업안전보건활동은 기본적으로 조직노동자를 주요 동력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활동이다. 미조직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상급단체의 노력이 있어 왔지만 조합운동의 기본적 틀을 넘어서는 데에 일정한 제약조건이 따른다.


반면 산재단체의 산재추방운동은 조직노동자뿐 아니라 미조직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를 기본 동력으로 한다는 점과 노동조합 활동가 뿐 아니라 산재추방을 자신의 이해로 생각하는 진보적인 활동가가 주요한 추진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조합 산업안전보건활동의 지원 조직으로서의 산재추방운동단체가 아닌 독자적 전망과 활동력을 담보한 노동건강연대와 같은 운동단체의 건설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의를 갖는 노동건강연대는 지금과 다른 한차원 발전된 새로운 산재추방운동을 준비하고 조직해 나가고자 한다. 새로운 산재추방운동에서는 무엇보다 대책활동 중심의 활동에서 대안을 개발하고 정책을 생산하는 활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현재 산재추방운동은 정책의 부재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 효율과 경쟁의 논리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뿌리 채 흔들고 있는 이데올로기공세에 맞서서 적극적 공세를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산재추방운동의 방향을 대안적 전략과 적극적 전략으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산재추방운동은 연대활동이 무엇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대방식은 기존 산재추방운동진영 내에서의 연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산재추방운동에서는 전과 같은 협소한 연대의 틀을 깨고 광범위한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전통적인 노동조합과 산재추방운동단체 뿐 아니라 보건의료운동, 사회복지관련단체, 여성단체, 환경운동단체, 시민단체 등과 연대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내용적으로 산재추방운동은 조직된 노동자의 산재문제 또는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왔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비정규직, 미조직상태에 있는 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무게중심을 점차로 옮겨가야 한다. 비정규직일수록, 미조직노동자일수록, 그리고 영세사업장의 노동자일수록 사고성재해와 직업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게중심의 이동이 현실적인 조건과 객관적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면 현실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문제는 실제 역량을 집중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이 아니라 이러한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명확히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노동의 유연화와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총자본의 공세가 전면화되고 있고,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 문제가 노동운동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추방운동의 경우도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미조직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만들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활동 경험이 일천할 뿐 아니라, 미조직노동자가 건강문제 해결의 실질적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에 대한 지원도 산재단체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세에 근거하면서도 영세,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의식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4.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노동자 건강의 악화

노동에 대한 총자본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5공때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일용직, 임시직 등 기간제 노동자만으로도 전체 노동자의 53%를 점하고 있으며, 위탁계약직(위장자영업자), 사내하청 등을 포함하면 비정규 노동자는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을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은 더욱 더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총자본은 노동시장 유연화, 경영합리화를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는 한편, 각종 부당노동행위, 노조탄압 등을 통해 노조 무력화를 획책하고 있다. 그 결과 고용문제와 노동조건의 악화 문제가 핵심적인 사회적 쟁점으로 형성되고 있다.


더욱이 이미 여야를 떠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지배분파가 다수를 점한 가운데 향후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유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뿐 아니라 권위주의적 지배분파가 우위를 점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고 있는 사회보장 체계를 전면적으로 후퇴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용구조의 악화와 실업률 상승,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악화, 빈부 격차의 확대 등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생산적 복지라는 정책을 추진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었으나, 실업관련 예산이 축소되고 예전에 비해서 생활보호대상자의 수혜 수준이 축소되는 등 정부의 정책이 실질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공공의료기관의 민영화, 의료보험료 인상, 공?사 연금의 개악과 더불어 사회보험의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당연하게도 노동자의 건강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대우조선에서 발생하고 있는 반복적인 사망재해가 단적인 예이다. 중대재해가 증가하고 있고,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조건의 악화로 요통 등 직업성 질환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있는데도 책임을 져야 할 사업주가 구속된 예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벌금 2-3백만원으로 풀려나고 있다. 산재를 당한 후에도 제대로 요양을 받지 못하고 강제로 치료종결이 되기 일쑤고 그 결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는 비극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직장에 재취업은 고사하고 취업한 산재노동자의 경우도 구조조정의 일순위로 짤려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5.  당면 산재추방운동의 핵심적인 이슈와 과제

이러한 상황에서 총자본의 공세를 저지하고 산재추방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투쟁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선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의 분노가 촉발되고 있고, 금속산업연맹 등 조직노동자의 투쟁과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는 사업주 처벌 강화를 핵심 이슈로 제기해나갈 것이다.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은폐, 조작 등 죄질이 나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는 산재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위권적 성격을 갖으며 총자본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가칭) 산재처리에 관한 특례법’에 대한 입법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입법운동 과정에서 전경련, 경총 등 자본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산재의 심각성과 특례법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모든 노동사회단체의 연명으로 입법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해 나갈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복지에 대하여 정부 부담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단호히 반대하고, 사회안전망 확충 및 여러 사회보장 제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의 구체적인 형태가 바로 산재보험제도개혁투쟁이다. 작년 이상관씨 자살에서부터 일련의 산재노동자의 자살 사건을 통해 우리 나라 산업복지의 문제와 산업안전보건체계의 문제점을 극단적인 형태로 확인한 바 있다. 또한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노동자의 시각이나 사회보장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효율성의 논리로 치료종결, 직업병 불인정 등의 조치를 내리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산재노동자의 분노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개혁을 매개로 한 산재보험제도개혁투쟁은 산재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분노가 모아지는 지점이며, 더 나아가 취약한 산업복지와 산업안전보건체계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위한 첫 매개지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투쟁과 함께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직접적이고도 주된 피해자가 되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적극적 문제 제기 및 그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노동배제적인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에 대하여 연대투쟁을 전개하고,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에 적극 결합해 나갈 것이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민중의 건강한 삶이 쟁취되는 그 날까지 노동자?민중과 함께 할 것이다.




1)  88년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 한달 후 급성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15세 문송면군의 죽음은 노동계와 재야단체에 산재문제의 심각성과 산재추방운동의 급박한 필요성을 던져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노동과건강연구회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단체, 종교단체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대책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이후 노동과건강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 산재추방운동의 계기가 되었고, 정부로 하여금 ‘산업안전보건 장단기대책’을 발표하도록 했다.


2) 한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직업병 환자(현재 800명 이상)을 발생시킨 원진레이온 사건은 일본에서 집단 직업병 문제를 일으킨 기계를 수입한 1966년부터 시작되었다.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8년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시작되어 91년 김봉환씨 사망 대책활동, 93년 원진레이온 폐업 반대투쟁을 거쳐, 97년 원진직업병 전문병원 설립투쟁을 통해 최초의 노동자 병원인 원진녹색병원을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은 10년 산재추방운동의 역사이며 산재추방운동진영과 제민주단체의 대대적인 연대활동이 돋보이는 투쟁이었다.


3) IMF 이후 산재보험금 지출을 억제하기위한 근로복지공단의 시도로 무수한 산재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치료도 못받던 중 1999년 대우차에 근무하다 허리와 무릎에 병을 얻은 이상관씨가 자살했다.  이상관씨는 무릎의 질병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함을 비관하여 심리적 불안을 보이던 중 이를 비관하여 자살한 것으로 민주노총과 산재추방운동연합은 산재보험제도의 개혁과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7개월간 대책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투쟁은 IMF 이후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산재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근로복지공단과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의 필요성을 광범위하게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