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율, 업무상재해 일부만 반영…새로운 지표 개발해야
노동부 주최 ‘산재통계 제도개선 토론회’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실업률과 산업재해율은 정부가 발표하는 ‘가장 믿을 수 없는 통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는 “2006년 발생한 직업성 사고 285만2천336건 가운데 산재보험이 적용된 사고건수는 7만9천675건으로 2.8%”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율은 산재보험 자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전체 업무상재해 가운데 고작 2.8%만이 산재통계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도 산재통계 제도개선에 동의하고 있다. 노동부는 2005년 2월 산재통계개선위원회를 구성, 같은해 10월 표본조사를 통한 산재발생 규모 파악을 골자로 하는 ‘산재통계 제도개선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2년여 간 시험 표본조사를 실시한 노동부는 오는 2012년부터 산업재해 통계를 사업장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지난해 10월 밝혔다.
이같은 변화를 앞두고 노동부는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올림픽컨벤션센터에서 ‘산재통계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노사단체, 산업안전관련 기관에서는 한목소리로 현행 산재통계 방식이 산재은폐를 부추길 뿐 아니라 산재발생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어 예방대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재통계의 ‘태생적 한계’
지금의 산재통계방식은 전체 산업재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국장은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에서 요양신청한 산재만 통계에 반영해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해율은 애초부터 산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사업장은 자영업자뿐 아니라 공무원·교사도 포함된다. 이들은 공무상재해가 발생할 경우 별도의 연금을 통해 보상받고 있어 현행 산업재해율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택시나 버스 같은 운수업도 운행 중 운전자가 재해를 당할 경우 산재보험이 아닌 공제조합의 부조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국장은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공식적으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은폐함으로써 재해율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결국 아무도 믿지 않는 오류투성이 통계를 정부가 발표하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다보니 외국의 산재율과 우리나라의 산재율은 거꾸로 된 모양을 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경상재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로 치료기간이 긴 재해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난다. 2006년 기준으로 보면 휴업기간이 15일 미만의 사고·질병은 5.8%(5천248명)인 반면 29일 이상은 84.2%(7만5천755명)로 다수를 차지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산재통계의 근본적인 오류로 인해 산재발생 원인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경용 산업안전공단 조사통계팀장은 “현행 산재통계는 산재발생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산재예방정책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형태나 연령·성에 따라 발생하는 산재의 양상이 다른데 산재보상을 기준으로 하는 재해율로는 발생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임남구 경총 책임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산재통계는 요양 4일 이상 모든 재해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어 재해의 경중에 따른 통계가 없다”며 “그래서 경상재해 10건이 발생한 사업장과 중상재해 10건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도 동일하다”고 말했다. 임 전문위원은 “사업주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에 한계가 있는 휴게시간 재해나 야유회·동호회 재해, 출장재해 등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안전보건정책 지표 필요”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은 “기존의 재해율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안전보건정책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차원의 안전보건 수준에 대한 평가와 정책적 개입전략을 수립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없다는 것”이라며 재해종류별·인구집단별 지표개발을 제안했다.
다발성 재해나 재해로 인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가 큰 재해 또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발생되는 재해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 국가의 적극적 보호가 필요한 인구집단(저소득층이나 생계유지형 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 등을 통해 효율적인 산재예방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임 전문위원은 “개별사업장의 통계자료가 사업장 규제로 사용되는 것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해 산재통계 제도개선을 둘러싼 노사 간 진통이 예상된다.
한편 이길수 근로복지공단 요양팀장은 “건강보험 자료를 활용하면 누락되는 산재 파악이 가능하다”며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