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예방하려면 현장노동자 참여 보장해야
노동자 건강과 재정건전화에 기여 … 재취업 지원 필요

매일노동뉴스 김봉석 기자 08-03-31

정부가 본격적으로 산재예방 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 91년. 올해도 제2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2005~2009년)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산재사고가 급감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사업주 처벌을 강화해 영국 ․ 호주와 같이 강도 높은 산재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은 다음달 기업살인법을 시행한다. 안전에 필수적인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든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방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산업재해율을 낮춰 노동자 건강을 지키면서도, 치료비와 휴업급여 지출증가를 막아 산재보험 재정안정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노동자가 직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중요하다. 스스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활 ․ 재취업(복직)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노동자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해 제도시행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91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세 차례에 걸쳐 산재예방과 산업안전 선진화 정책을 내놓았다. 2005년에는 ‘제2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해 2009년까지 시행하고 있다. 1차 5개년 계획(2000~2004년)에서 중점을 뒀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활성화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 재해예방정책에 노사의 참여를 도모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지난달부터 노사정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산업안전보건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산재예방 18년, 실효성 의문

이렇듯 정부는 산재를 예방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 ․ 정착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렇지만 실효성에서는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부조차도 2차 계획을 추진하면서 “95년부터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도입했지만 당초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며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업안전위) 설치도 미흡한 실정이다. 산업안전공단이 2005년 실시한 ‘산업안전보건 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5인 이상 제조업체 7만6천686곳 중 산업안전위가 설치돼 있는 사업장은 고작 6.5%에 그쳤다. 노동부는 지난해 3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산업안전위 설치기준을 2009년에는 100인 이상(현행 1천인) 사업장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노사 안전보건 공동결정 필요

사실 적용 사업장을 확대한다고 실효성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산업안전위는 △산업재해예방계획수립 △작업환경 점검개선 △노동자 건강관리 등에 대해 심의 ․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위를 구성하더라도 강력한 노조가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운영이 안 되거나, 설사 합의를 하더라도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윤조덕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정책이 노사 자율관리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산업안전보건활동에 노사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해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보장해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예산업안전감독관(명예감독관)의 경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회사측으로부터 독립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독립적 활동시간이나 사법권에 준하는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45조)에 규정된 명예감독관의 업무는 대부분 참여 ․ 개선요청 ․ 홍보 등이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심지어 사업주가 법령을 위반해도, 명예감독관들은 회사에 개선을 요청하거나 감독기관에 신고하는데 그친다.

특히 산업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보호방안 마련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정규직이라도 중소 ․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법으로 보장된 산업안전보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영숙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본부장은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 있더라도 실제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산재예방기금에서 사업장 작업안전평가나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원청회사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활 ․ 재취업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도 시급하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산재사고로 장해판정을 받은 노동자(3만7천119명)의 재취업률은 2005년 기준 42.3%(1만5천680명)로 절반을 넘지 않는다. 재취업률이 낮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의한 금전적 보상이 유일한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다. 재정부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예방이나 산재노동자의 독립적 생활 영위보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취업 보장과 사업주 처벌

재활제도는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이 연계돼야 효과적이다. 심리적 불안을 겪는 산재노동자를 치료하면서 직업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활치료와 재활상담, 직업재활훈련원을 통한 교육 등 치료에서 취업까지 원스톱 서비스 구축이 절실하다.

산재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업주의 책임을 분명하게 묻는 것도 예방정책의 일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른바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산재에 따른 노동자 사망에 대해 사업주의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해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주가 예방활동을 소홀히 해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범죄로 보겠다는 뜻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죄질이 나쁘거나 반복적 사망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해서는 형사처벌해 사고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산재사망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