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작업장 스트레스에 의한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해서는 활발히 논의가 되고 있으나 실제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이라는 용어에 거북해 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실제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장애가 발생했음에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신장애는 질병의 경중에 비해 장애에 의한 작업손실이 큰 질환으로 미국에서는 앞으로 20~30년 후에는 허혈성 심질환 다음으로 큰 작업손실을 유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해서 작업환경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정신질환은 스트레스에 의한 적응장애,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 공황장애를 포함한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직장내 폭력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약물중독 및 남용도 심각한 정신질환의 문제이다.
작업장의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 뿐 아니라 재해를 입은 근로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도 매우 중요하다. 통상 중대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신체적인 손상만을 치료해 주게 되는데 이들의 일부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산재환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산재사고 이후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발생하는데 별다른 대책이 없어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고 만성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이 연구에 의하면 사고 당시 의식을 상실한 경우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의 업무관련성 입증 어려워
일부 정신질환이 업무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것이 모두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정신질환과 일반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정신질환과 질병의 증상이나 경과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고 정신질환의 원인이 어느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보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업무상 정신질환을 판단하고 있다. 첫째, 근로자에게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한 명백한 정신과적 질병이 존재하고 둘째, 그 근로자가 작업과정에서 급성 손상이나 비일상적 스트레스를 경험해야 하며 셋째, 그러한 사건 이후 정신과적 증상이 6개월 이내에 나타나고 넷째, 이러한 환경과 관련된 손상이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발생이나 경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해당한다.2)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실제 적용에는 어려움이 많다. 정신질환은 하나의 질병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는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 사이에서도 진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첫째 조건을 보면 증상을 위주로 하는 일부 근골격계질환(예를 들어 염좌나 요통 등)과 같이 객관적 검사 결과보다는 정신과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하기 때문에, 또는 개인의원과 대학병원간의 진단 차이도 있기 때문에 명백한 진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정신질환은 유병률이 매우 높은 질환이고, 질병 자체만으로는 업무관련성의 정신질환을 일반적인 원인에 의한 정신질환과 구별하지 못한다. 2001년도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의하면3)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31.4%이나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비율은 8.7%라고 하였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둘째 조건을 보면 작업 중에 발생하는 급성 손상은 비교적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비일상적인 스트레스는 보는 각도에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사람은 업무상 스트레스에 못지 않게 다양한 종류의 비직업적인 스트레스를 항상 받으며 살고 있다. 따라서 업무상 정신질환은 급성 충격에 의한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수용하기가 수월하지만 만성적 원인에 의한 것은 업무관련성을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업무상 정신질환의 문제는 산재로 신청하여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관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요양을 하지 않아도 정신적 갈등이 되었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많은 정신질환은 별다른 치료없이 회복될 수 있고 근로자도 현업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개별적으로 발생한 정신질환을 집단적인 산재요양 신청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업무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산재 인정을 주목적으로 하는 업무상 정신질환의 산재요양 신청은 본인이나 작업환경 관리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의하면4) 2004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요양 승인된 근로자는 2000년도에 27명, 2001년도에 38명, 2002년도에 48명, 2003년에 85명이었다. 전체 198명중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54명 급성스트레스장애가 31명으로 43%를 차지하였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나 급성스트레스장애는 원인이 되는 사건이 명확하므로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또한 원인이 뚜렷하므로 원인이 제거된 다음 비교적 잘 회복된다. 그런데 나머지 57%에 해당하는 질환은 불안장애(14), 적응장애(39), 우울증(37), 조울증(7), 공황장애(16)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집단요양신청을 통해 인정되었다. 전체를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요양보다는 업무환경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례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된 정신질환의 문제는 많지 않다. 1992년부터 2004년 현재까지 12건이 의뢰되었는데 그 중 5건의 업무관련성이 인정되었다. 3건의 공황장애, 1건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1건의 양극성장애가 인정되었고 나머지는 모호한 질병이거나 정신분열증 등은 인정되지 않았다.

[사례1] 작업환경 불량으로 공황장애로 진단 받은 경우
42세의 J씨(남)는 1990년도에 K사에 입사하여 창고직 및 경리업무를 담당하던 중 2000년 4월경부터 가슴 쪽에 한기 및 통증, 어지럼증 등을 느끼기 시작했고, 같은 해 5월경 사무실에서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이후 증상이 지속되었고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공황장애로 진단을 받았다.
J씨는 K사에서 창고직을 수행하였는데 창고직은 하루 평균 2차례 정도 물품 하역, 상차 작업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업무, 재고관리업무가 주된 업무였다. K사에 부도가 나면서 4인이 하던 일을 J씨 혼자 담당하였고 창고는 지상에서 지하로 옮기게 되었다. 지하창고는 50평 규모로 창문은 없었고, 출입문만 하나 있는 장소였다. 물품이 들고나기 때문에 먼지가 많았고, 햇빛이 들지 않았으며, 겨울철에는 석유난로를 켜게 되면 냄새가 심하게 나서 두통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000년 4월경부터 가슴 쪽에 한기 및 통증과 어지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출근만 하면 어지럽고 심한 구토 증상을 느끼게 되었다. 2000년 5월 사무실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인근 약국에서는 심근경색증 같다며 병원을 가보라고 하였는데 이때 마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오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증상이 있게 되었다. 계속 가슴 통증과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껴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심장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정신과에서 공황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공황장애로 진단 받은 후 한 달간은 회사 근무를 하였으나 업무 수행이 어려워 새로운 직원에게 인수업무를 하고 요양을 하였다. 1년 이상 요양을 한 후 최근에는 증상의 발병이 드물어졌다. 사무실을 지상 공간으로 이전한 후부터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데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공황장애란 두근거림, 숨막힘, 흉통, 무서움 등을 동반하는 강력한 공포감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말한다. 공황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5~5 % 정도로 알려져 있고, 3 `5.6 %가 공황발작을 경험한다고 한다. 여성에게서 2~3배 높게 나타나고 이혼이나 격리된 경험이 있는 경우에 높은 유병률을 갖는다. 공황장애의 호발 연령은 주로 20~30대이며 평균 연령은 25세 가량이다. 그러나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 가능하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인격장애와의 관련성, 환경스트레스 관련, 어렸을 때 받은 심한 정신적 충격 등이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소아기 때의 심한 충격적인 사건, 부모의 무관심, 부모의 사망, 특히 어머니의 사망이 공황장애 발생의 위험인자라는 보고들이 있다.
환경 스트레스 관련에 대한 내용을 보면 공황발작 환자의 50~80%의 환자들이 최초의 공황발작 직전에 부정적 생활사건을 경험하였음을 보고하고 있다. 공황장애 환자의 91%가 첫 번째 공황발작은 스트레스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의 내용은 경제적인 손실, 가정 불화, 가까운 이의 죽음, 직장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남자 39명중 7명)등이었다.
공황장애는 원래 소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만나면 이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다는, 즉 공황장애 환자들은 공황발작에 대한 역치가 원래 낮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쉽게 공황발작이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례2]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진단 받은 경우
49세의 K씨(남)는 탄광에 입사하여 갱내 광부(착암작업)로 일하다가 방계회사의 점보드릴 기사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점보드릴 기사 업무는 1~2년 단위로 전국을 돌면서 터널공사 현장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다.
K씨는 2001년 11월 저녁 7시경 작업 도중 동료 근로자와 말다툼을 했고, 정전 사고가 발생하였다. 강씨는 이에 심한 불안감을 느꼈고 그 이후 두통, 불안, 수면장애 등의 증상이 발생해 2001년 11월 26일 대학병원에서 범불안 장애로 진단 받았고 요양을 받았다.
당시 작업은 터널공사로 석회석 광산의 작업이었다. 2001년 10월부터 석회석 광산에서 점보드릴로 천공을 하고, 천공된 곳에 폭발물을 넣고 발파를 하고, 발파 후 정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1일 12시간씩 주야로 격주 교대근무를 하였다.
2001년 11월10일 저녁 7시경 동료근로자와 심한 말다툼이 있었고, 이후 천공기계가 작동이 안되고, 출입구가 어둡게 되는 등의 정전사고가 발생했고, 이때 순간적으로 ‘이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기다시피 하여 겨우 밖으로 나왔지만 그 날 이후 불안과 초조, 수면장애 등이 나타나고 회사에 가기가 두려워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강씨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현장에서 사고를 경험했다. 1997년 지하작업 도중 사고로 수직구 460m에서 매달린 적이 있었고, 감전사고도 경험했다고 한다. 흡연과 음주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특진을 의뢰하여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진단을 받았다. 임상심리검사 결과 전체지능 71로서 최근에 발생한 상당한 지능저하 및 인지능력 결손 소견을 보였다.

불안장애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소아기 외상의 경험, 경계성, 망상성, 의존성, 반사회적 인격성향, 부적합한 지지기반, 정신질환에 대한 유전적, 체질적, 취약성, 최근의 긴장을 야기하는 생활변화, 스스로 하기보다는 외적요소에 조율된다는 지각을 흔히 갖는 사람들, 최근의 알코올 과음 등의 소인을 갖는 사람들에서 잘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부적합한 지지기반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는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다른 불안 장애를 갖는 사람들에 비해 과거 사회적 지지의 정도가 낮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지지의 결여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중요한 위험인자가 된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은 전쟁과 관련하여 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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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경숙 등. 염용태. 일부 산업재해 환자들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신경정신의학 2002: 41(3): 461-471
2) Stephen Adler, Rivka Schochet. Workers’ compensation and psychiatric injury definition. International J Law and Psychiatry 2000; 22(5-6):603-16
3) 채정호. 업무상정신질환 관리, 업무적합성, 직업복귀. 대한산업의학회 32회 춘계학술대회 초록집. 2004
4) 이강숙. 업무상 정신질환의 현황과 관련요인. 대한산업의학회 제32회 춘계학술대회 초록집.

강성규|한국산업안전공단 직업병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