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빠른 퀵서비스, 목숨을 담보로 달린다
“산재보험이라도 적용됐으면… 노란번호판 달고 달리는 게 꿈”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지난 4일 오전 9시, 서울 서소문동 경남은행 앞 나무벤치. 종로·을지로·신문로 일대를 담당하는 퀵서비스맨들은 이곳으로 출근한다. 노상이지만 비를 피할 수 있고, 지붕과 빌딩 경비원의 눈치도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무벤치 주변을 ‘기사 대기소’라고 부른다. 여의도 일대는 전경련회관 뒤편 나무벤치가 기사대기소다. 빌딩 앞에는 10여대의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고, 나무벤치에는 인조인간 로보캅처럼 보호구로 무장한 퀵서비스맨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수시로 가슴에 달린 무전기와 핸드폰을 열어 본다.

기름값 10배 올랐는데, 배달가격은 10년 전 그대로

오전 9시40분. 오토바이 수리점에 다녀온 이재수(53)씨가 뒤늦게 도착해 무전기를 누른다. “79번 서소문 스탠바이.” 79번은 이씨의 번호다. 출근사실을 알린 것이다. 서소문에서 대기 중이라고 무전을 치면 회사에서는 무전이 도착한 순번대로 일거리를 나눠준다. 이날은 오토바이가 말썽을 부린 탓에 일거리도 꼴찌로 받게 생겼다.
이씨는 “5년 전 100만원을 주고 산 오토바이가 벌써 수명을 다했다”고 툴툴거렸다. “어제도 타이어 2개 가느라 6만원 들었는데 오늘도 오일 갈고 필터랑 브레이크를 손보느라 6만원이나 깨졌어요. 수리비가 작년보다 15%나 올랐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1년이면 보통 3만~5만킬로미터를 주행한다. 매년 엔진을 교체하고 석 달 간격으로 타이어도 교체해야 한다.
“수리비뿐이겠어. 기름값도 오르고 보험료도 올랐는데 퀵서비스 가격은 어떻게 된 게 15년 전보다 더 내려갔갔단 말이야. 이래서야 먹고 살 수가 있나.” 옆에 있던 양용민(45)씨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15년째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는 양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처음 퀵서비스가 들어온 90년대 초반만 해도 종로에서 강남까지 1건당 1만5천원이 넘었다. 98년 외환위기 때 퀵서비스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지금은 8천원대까지 떨어졌다. 업계에서 악명이 높았던 남산퀵서비스사는 ‘서울 전지역 6천원’을 내걸고 출혈경쟁을 선도하다 결국 얼마 전에 도산했다.

도둑놈 혹은 투명인간

“내수동, 역삼동 79번.” 오전 10시16분, 이씨에게 첫 번째 콜(주문)이 떨어졌다. 내수동에 있는 물건을 역삼동으로 배달하라는 뜻이다. 이씨가 ‘47(알았다)’이라고 응답하자 즉시 핸드폰 문자서비스로 자세한 주소가 송신됐다. 주문은 총 2건이다. 회사는 같은 시간대에 접수된 주문을 취합해 비슷한 방향으로 묶어 기사들에게 나눠준다. 8천원~1만원 수준의 주문 1건으로 종로와 강남을 왕복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부릉부릉. 이씨의 몸이 125cc 오토바이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이 걸린다. 주문장소는 동아일보 옆 시티신문사와 인근 동상빌딩 4층에 위치한 사무실이다.
이씨는 5분만에 가까운 동상빌딩에 도착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이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퀵서비스맨들이 빌딩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연락처와 소속 등을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빌딩에 입주한 한 사무실에서 작년에 노트북을 잊어버렸데요. 그 이후 퀵서비스 기사들에게만 연락처를 적고 올라가라고 하더군요. 완전 도둑놈 취급 아닙니까. 적으려면 외부인 전부 다 적어야지 왜 퀵서비스맨들만 써야 되냐고요.”
이씨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동상빌딩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고층빌딩에서 퀵서비스맨들은 별도의 통과절차를 거쳐야 출입할 수 있다. 정부청사는 더 심하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수취인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내데스크에 직원이 3명이나 있지만 택배수취는 해당업무가 아니라며 외면한다.
그래서 수취인이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20분이고 30분이고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돈인 퀵서비스맨들이 분통이 터뜨리는 순간이다. 63빌딩처럼 별도의 퀵서비스 데스크를 만들면 간단할 텐데. 4층 사무실에 도착해 물건을 받으려는 순간 주문을 발주한 직원이 대뜸 화부터 낸다.
“이게 무슨 퀵서비스야. 부른 지 1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오면 어떡해. 다음 달부터 거래 안할 테니 알아서 해.”
콜을 받고 5분만에 도착한 이씨지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연신 굽신거리면서 되돌아서는 이씨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운송료로 3만원만 주면 30분만에도 배달해주죠. 고작 8천원 받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바로 받아서 바로 갖다 주는 줄 아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주문 1건만 달랑 배달하면 기름값도 안 빠져요.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단도 아니고.”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면서 이씨가 내뱉은 푸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착한 시티신문사. “퀵서비스 부르셨나요.” 이씨가 사무실 입구에서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하자 한 직원이 고개도 들지 않고 턱으로 옆 방향을 가리킨다. 서류봉투 2개가 놓여 있다. 이씨가 그것을 챙겨 나올 때까지도 그 직원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던 도중 1건의 콜을 더 받으러 들른 남대문 근처 운송서비스업체에서도 이씨는 투명인간처럼 보였다. ‘고객들에게 항상 미소로 대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 앞에 앉아 있던 직원은 이씨에게 눈길 한 번 던지지 않고 물건을 건넸다.

길 안 막히면 시속 100킬로미터

오전 10시46분. 접수한 물건을 가지고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됐다. 이씨가 가야 할 곳은 역삼동과 양재동, 논현동이다.
도로를 질주하는 이씨의 오토바이는 묘기를 부리듯 차 사이를 빠져나갔다. 125cc 오토바이의 속도계 바늘이 40킬로미터와 80킬로미터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으악~.” 이씨 오토바이 뒤에 탄 기자의 입에서 끝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토바이의 속도감은 자동차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속도가 빠를 때는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하다. 10차선 도로에서 택시와 버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무자비하게 유턴할 때는 혹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다리가 움찔린다. 경적소리로 가득한 도로가 이렇게 비정하고 사나운 것인지, 배기가스가 이 정도로 독한 것인지,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씨는 길이 안 막히면 보통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했다. 퀵서비스 노동자는 백이면 백 교통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속도를 내는 게 업무인지라 교통신호를 일일이 지키다간 퇴출당하기 십상이다. 그도 지난해 앞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는 바람에 접촉사고를 당했다. 96년부터 퀵서비스업계에 몸담은 뒤 4번째 사고였다.
“다행히 단순 골절상이어서 한 달 쉬다가 바로 복귀했죠. 의사가 뼈가 다 안 붙었다고 말렸지만 쌀값이 떨어졌는데 어떡합니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일해야죠.”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산재보험 적용이다. 일하다 다친 사고인데도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탓에 가입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민간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는 퀵서비스 전용 상품도 대인·대물 보상만 적용된다. 자차·자손 보상상품은 아예 판매하지도 않는다.
이씨는 그래도 당시 사고에서 ‘피해자’여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퀵서비스 기사 중 간혹 행방불명되는 사례가 있는데, 대부분이 교통사고 가해자가 된 경우다. 1년에 50만원에 달하는 퀵서비스 전용 손해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수천만원이 넘는 피해보상금을 감당 못해 종적을 감춘다. 반대로 교통사고 피해자가 돼 받는 보상금을 받기도 한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이를 농담삼아 ‘퇴직금’이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목숨값인 셈이다.

사납금만 매달 68만원

아무튼 눈물과 콧물을 바람에 흩뿌리며 무사히 선릉역 부근 배달장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달려온 이곳에서도 이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고객은 없었다.
“일하다보면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고객들이 바쁘다고 독촉하니 마음은 급한데, 운전하면서도 핸드폰으로 콜 들어오나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날씨가 궂으면 사고날까 두렵고 경비나 주차요원들 눈치까지 봐야 합니다.”
이씨는 위장병도 달고 산다. 이리저리 신경을 많이 쓰고 주문에 맞춰 배송하다보면 식사 때를 놓치기 일쑤다. 오전 11시23분에 선릉역에서 출발한 이씨가 다음 배달장소인 강남역을 거쳐 역삼동에 갔다가, 마지막 양재동 주문을 다 처리하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입니다. 금요일이라 평소보다 주문도 많이 들어왔고, 가까운 곳들이라서 빨리 끝났네요.”
인근 기사식당에서 들어서자 옆에서 ‘79번 오늘 어때’하며 아는 척을 한다. 무전으로 통신할 때 알아듣기 쉬우라고 쓰는 번호가 퀵서비스맨들의 이름을 대신한다. ‘후르륵’ 국밥을 말아먹고 이씨는 다시 무전을 친다. 오후 2시쯤 콜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역삼동과 논현동을 돌아 물건을 받고 여의도와 목동, 등촌동으로 배달해야 한다.
이날 이씨는 오후 5시까지 총 10건의 주문을 받아 1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기름값으로 1만원을 썼고, 밥값으로 4천원이 나갔으니, 7만6천원이 이씨의 손에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씨의 월 소득은 평균 100만원이 가까스로 넘는다. 매달 회사에 38만원의 사납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회사가 고객유치 목적으로 활용하는 월정 할인료와 쿠폰비도 기사가 부담해야 한다.
월정할인료는 매달 정기적으로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10~15% 깎아주는 금액이다. 쿠폰비는 주문 10건당 1건을 무료로 해주는 서비스로, 콜 1건당 700원~1천원을 제하는 방식으로 기사가 부담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회사에 내는 돈은 거의 68만원에 달한다.
기름값이 한달에 25만원가량 나가고 무전통신비와 핸드폰 요금으로 20만원이 든다. 교통사고에 대비한 책임보험도 당연히 이씨의 몫이다. 이씨는 “억울하지만 갑과 을의 관계에 있는 회사에 대들면 이 바닥에서는 끝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퀵서비스업체들이 담합을 하고 있어 한 업체에서 찍히면 서울시에서는 더 이상 일거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두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고 운송료와 사납금 등을 결정한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재수씨의 꿈은 오토바이에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달리는 것이다. 이씨가 말하는 노란색 번호판은 영업용으로 허가난 차량에게 주어진 차 번호판을 말한다. 퀵서비스업이 현행법에 근거하지 않아 사업주로부터 피해를 당해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다.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생계침해형 부조리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불공정약관 사용실태를 조사하고 시정조치와 함께 퀵서비스 이용 표준약관을 제정·보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의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올해 초 퀵서비스 사업주와 고객 간 표준약관만 발표했다. 정작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퀵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김창현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서울시에서만 퀵서비스 시장이 7천억원이 넘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제도권 밖에 놓여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퀵서비스업을 화물운송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