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반도체’ 그늘 감춰진 백혈병 논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생산직 7명 백혈병, 노동부 실태조사
[메디컬투데이 구성헌 기자]
세계 최고의 IT강국 대한민국. 특별한 자원이 없으면서도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우리나라를 소위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효자종목 중 하나다.
그 기반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반도체다.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기술력이나 생산량에서 세계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기반시설로 분류된 반도체 공장은 기술유출과 보안등을 이유로 대부분의 생산과정등이 비공개에 부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반도체 생산직 근로자들이 백혈병에 자주 걸린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우려 근거있나?
백혈병은 골수에 존재하는 조혈 세포에 악성 변형이 생겨 정상적인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이 생성되는 데 지장을 초래해 감염, 빈혈, 출혈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최근 좋은 치료제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난치병 중 하나다.
백혈병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고 또 여기서 림프구성과 골수성등으로 세분화 되는데 아직까지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바이러스감염과 유전적인 원인, 방사선 조사, 화학약품취급 등이 원인으로 추정될 뿐이다.
반면 반도체는 실리콘을 이용해 수 많은 공정을 거쳐 탄생한다. 그래서 생산하는 과정에서 화학약품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병한 근로자들이 모두 생산직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들의 연령대가 20~40대로 유전에 의한 발병일 경우 대부분 20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점에서 후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백혈병의 경우 발병률은 10만명 당 2명내지 3명 꼴인데, 삼성전자가 밝힌 발병자는 7명에 이른다.
현재 기흥공장에 근무중인 생산직 직원수가 9000명이라는 점을 감안 할 때 그동안 입사·퇴직한 직원수를 합쳐도 분명 평균치보다는 높은 수치다.
더구나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원회측은 회사측이 밝힌 7명보다 많은 12명의 근로자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 발병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근무하다 2007년 3월에 사망한 황모양의 경우 시설이 취약한 3베이에서 일했으며 반도체 원반인 웨이퍼를 불산·황산·암모늄 등 화학물질 혼합물에 세척하는 일을 했는데 화학약품이 원인이라는 것이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삼성반도체 측은 국제기준에 적합한 환경과 설비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으며 법률적인 것은 물론 사원들의 보건안전이 국내에서 최고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 전문의들의 의견도 분분
반도체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1990년대부터 이런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개돼 왔다. 하지만 전자파처럼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검증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전문의들의 의견 역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의 산업의학과 교수와 혈액종양학과 교수는 “화학물질로 인한 백혈병 발병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이나 그 물질이 어느 정도 사용되는지 또는 그 과정에서 일관된 종류의 백혈병인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측은 제보자들의 경우 70~80%가 급성골수성백혈병이어서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또 다른 병원의 산업의학과 교수는 “암이 발병하기 위해서는 어떤 물질에 노출되기 시작해 10년정도는 있어야 되는데 삼성반도체 발병자들의 경우 기간도 짧고 유해물질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석면이나 벤젠 등도 불과 수 십년 전에는 아무런 의심없이 사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누구나 아는 발암물질이라며 반도체는 생산의 역사가 짧은 만큼 생산에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성분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다른 문제는 없나?
반도체 생산에 지식이 없는 사람도 반도체 공장이 청정지역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반도체 공장의 청정도는 반도체의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삼성반도체 관계자는 “반도체 공장은 공장 밖보다 청정도가 뛰어나고 자체 조사 결과 백혈병 유발물질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삼성반도체 근로자들은 청정지역은 먼지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오히려 생산에 쓰이는 화학용품은 일반 공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정의학과 교수는 “너무 청정지역에 있으면 오히려 면역기능이 약해져 일반적으로 말하는 잔병치레가 늘어날 수 있다”며 “반도체공장의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하고 밤샘근무가 많은데 이런 경우 과로가 누적돼 관상동맥질환 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 유일한 기대는 역학조사
노동부에서는 삼성반도체 문제가 불거지자 급하게 국내 13개 반도체업체를 대상으로 근로자 건강실태 조사에 들어가 얼마 전 이를 마쳤다.
하지만 바로 삼성반도체 역학조사를 진행 중인 산업안전관리공단으로 자료를 제출해 이에 대한 결과는 역학조사가 마무리 되는 2009년 초에나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국가를 먹여살리는 반도체생산에 근로자 몇 명 사망한 것이 무슨 대수냐는 반응도 있지만 문제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충 덮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국민들은 세계최고를 지향하는 기업의 책임있는 태도를 보고 싶어한다”면서 “정부에서 실시하는 조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철저한 검증과 자체 조사를 거쳐 의혹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디컬투데이 구성헌 기자 (carlove3@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