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민족민주세력의 인식과 실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글을 시작하며
2.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정치체제 교체문제
3.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정치체제 성격문제
4. 국가보안법과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
5. 국가보안법과 반공산주의 분단체제
6. 중산층 정권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제기한 배경
7. 글을 맺으며 – 민족민주세력의 인식과 실천

1. 글을 시작하며

국가보안법은 무려 여덟 개나 되는 족쇄를 가진 악법이다.
그 족쇄들은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죄, 목적수행죄, 자진지원 및 금품수수죄, 잠입·탈출죄, 찬양·고무죄, 회합·통신죄, 편의제공죄, 불고지죄다.
봉건적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노비의 손발을 묶었던 중세기의 악법보다 더 야만적이다.

지금 남(한국) 정치권은 여덟 개의 족쇄를 가진 국가보안법을 놓고 존폐에 관한 정쟁을 한창 벌이는 중이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보완 또는 대체입법 제정을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존치와 부분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열린우리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로써 국가보안법 존폐문제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타협·절충의 방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현실로 되고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야합하여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왜곡처리하는 경우, 지난 시기 그 법을 발동한 폭압정권에 의해서 감시, 협박, 투옥, 고문, 사형, 납치, 살해 같은 야만적인 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했던 민족민주세력의 피땀 어린 자취는 망실될 것이며,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성과 없이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한 민족민주세력의 투쟁은 어떤 악법 하나를 폐지하는 법체계 개선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낡은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세우는 정치체제 개변을 위한 투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세우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이 글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자기들의 정쟁 속에 뒤섞어버린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존폐논쟁이 가열되는 사이에 뚜렷이 부각되지 못한 민족민주세력의 주체적 관점에서 발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2.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정치체제 교체문제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정치체제 교체문제에 결부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문제의 본질은 56년 묵은 악법을 존치하느냐 폐지하느냐 하는 법률문제가 아니라, 56년 묵은 낡은 정치체제를 존치하느냐 새로운 정치체제로 교체하느냐 하는 정치문제인 것이다.
국가보안법 존폐문제가 정치체제 교체문제에 결부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보안법은 파멸위기에 빠진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되살려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에 제정되었는데, 1948년은 남(한국) 전역에서 대규모 민중항쟁이 일어난 혁명기였다. 1948년에 연쇄폭발을 일으켰던 2.7 구국투쟁, 4.3 제주항쟁, 5.10 단선반대투쟁, 10.19 여순항쟁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정책에 따라 수립되고 있었던 정치체제를 강타하여 파멸위기에 몰아넣었다.

이처럼 대규모 민중항쟁이 폭발하여 남(한국) 정치체제가 파멸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당시 여론조사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46년 8월 미군정이 8천4백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사회주의 체제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70%, 자본주의 체제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14%, 공산주의 체제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7%였다.
또한 1947년 7월 조선신문기자회가 서울시민 2천4백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두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나라이름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정하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70%, 대한민국으로 정하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24%였으며, 정권형태가 인민위원회가 되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71%, 종래 제도를 바라는 응답자가 14%였다.
이것은 8.15 해방 이후 남(한국) 근로대중의 절대다수가 미군정과 극우반역세력이 지배하는 낡고 썩은 정치체제를 반대하고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체제를 지향·추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승만 친미예속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이후 1년 동안 그 법을 발동하여 당시 남(한국)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11만8천6백21명을 구속하고 남(한국) 전역의 18개 형무소에 가두는 전대미문의 탄압을 자행하였다. 당시 남(한국)의 모든 형무소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죄목으로 수감된 사람들로 넘쳤는데, 전체 수감자 가운데 80%가 국가보안법 위반 수감자들이었다.
이승만 친미예속정권은 전대미문의 검거선풍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서 1949년 9월부터 10월까지 1백32개 정당과 사회단체를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였다는 구실로 강제해산하는 실로 광란적인 정치탄압을 자행하였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960년 4월에 일어난 4.19 민중항쟁으로 이승만 친미예속정권이 무너지면서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두 번째 파멸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정권붕괴를 동반한 치명적인 위기였다. 1960년 5월 2일에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는 파멸위기에 빠진 정치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보안법을 개악하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죄’와 ‘불고지죄’를 추가·보강하였다. 1961년 5월 16일에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가로챈 박정희 중심의 군부세력은 종래의 국가보안법만 가지고서는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반공법을 새로 제정하였다. 국가보안법 개악과 반공법 제정은 4.19 민중항쟁으로 조성된 정치체제 개변의 가능성을 폭력적으로 차단하였음을 뜻한다.

다시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79년 10월에 부마민중항쟁이 일어나고 1980년 5월에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자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세 번째 파멸위기에 빠졌다. 그 위기는 박정희 피살사건과 경제파탄을 동반한 치명적인 위기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가로챈 전두환 중심의 군부세력은 박정희 친미예속정권이 만들어놓은 반공법을 국가보안법에 통합시켜 역사상 가장 폭압적인 악법을 등장시켰다. 이로써 부산과 마산, 광주의 민중이 유혈항쟁으로 열어놓은 정치체제 개변의 가능성이 또 다시 폭력적으로 차단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1948년, 1960년, 1980년의 세 차례 민중항쟁기에 제정→보강→통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은 민중항쟁 폭발→정치체제 파멸위기→국가보안법 발동으로 이어진 반복과정이었다. 국가보안법 존치사는 1948년 이후의 민중항쟁사, 그리고 정치체제 파멸위기 발생사와 동일한 궤도 위에 존재한다. 국가보안법이 이처럼 민중항쟁에 의하여 파멸위기에 빠진 정치체제를 되살리고 유지하기 위해 발동되었다는 점에서, 그 법의 존폐문제는 남(한국)의 정치체제 교체문제에 결부되는 것이다.

둘째, 국가보안법이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법적 장치라는 점에서 볼 때, 그 법은 복잡한 법체계 가운데 존재하는 여러 가지 형법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 법은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실질적으로 유지해온 최상위법이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형법들에 대해 명백한 차별성을 가진다. 그 법이 형법체계에 포함되지 않고 형법들과 구별되어 ‘국가의 안전을 보위한다’는 매우 특별한 뜻을 가진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까닭은, 지난 시기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형법으로는 도저히 유지하지 못하는 파멸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그 정치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 바로 그 법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남(한국)의 다른 어떤 형법이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지위를 가진다는 점은, 실제로 그 법이 형법이 제정된 1953년 9월 18일로부터 5년 전에 먼저 제정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더 상위의 권능을 가진 법이다.
만약 헌법 조항과 국가보안법 조항이 상호모순되는 경우, 남(한국)의 사법부는 헌법 조항을 무시하고 국가보안법 조항을 따랐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은 헌법보다 더 상위의 권능을 가진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초헌법적 권능을 발휘하면서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것이다. 남(한국)의 정치체제가 이처럼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유지되어왔다는 점에서, 그 정치체제를 ‘국가보안법체제’라고도 부를 수 있다.

셋째, 지난 56년 동안 국가보안법이 유지해온 남(한국) 정치체제의 성격문제에 대한 인식이다. 무릇 모든 정치체제는 다스리는 힘, 곧 통치권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므로, 정치체제의 성격은 통치권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행사되는가 하는 문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법이다.
정치체제의 성격문제를 상식적인 논법으로 정리하면, 정치체제를 운영하는 통치권은, 밖으로는 다른 나라의 간섭과 지배를 받지 않고 행사되는 자주권이어야 하고, 안으로는 인민으로부터 발생하여 인민을 위하여 행사되는 인민의 권력이어야 하므로, 정치체제의 성격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1948년에 수립된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처음부터 전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한 미군정의 지휘에 따라 세워졌으므로 자주적인 정치체제가 될 수 없었다.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명목상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구체제(disabled system)가 된 것이다.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움직이는 최고권한, 곧 헌법에 명시된 통치권은 언제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의해서 은밀하게 행사되거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행사되었다.
이 사실은 1948년부터 1981년까지 미군 대위 한 사람이 남(한국) “대통령 집무실을 무시로 드나들면서” 정치와 군사를 좌지우지해왔음을 밝혀준 제임스 하우스만(James H. Houseman)의 증언록에서도 입증된다. (짐 하우스만, 정일화 공저, 『하우스만 증언, 한국대통령을 움직인 미군대위』 [서울: 한국문원, 1995] 참조)

남(한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의해서 행사된다는 사실은 최근에 일어난 몇몇 사건만 보아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문제와 개성경제특구개발 협력사업 추진문제가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자기 군대를 다른 나라 전쟁에 출병하는 것이야말로 통치권 행사의 핵심문제인데, 노무현 정부는 한국군을 이라크 침략전쟁에 파견하라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이 전달되자 싫다는 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묵묵히 굴종하였다.
또한 개성경제특구 개발사업은 6.15 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이 합의한 협력사업이므로, 그 사업의 추진은 외부간섭을 받지 않고 통치권을 행사해야 하는 내부문제인데도, 노무현 정부는 2004년 7월부터 미국에게 사업허락을 간청하였으며, 미국으로부터 허락이 잘 나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신임 통일부장관 정동영을 워싱턴에 파견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허락을 받았다.

이처럼 불구화된 정치체제를 친미예속 정치체제라고 부른다. 강조하는 것은, 남(한국) 정치체제의 성격문제를 논할 때, 우선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친미예속성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1948년 이후 56년 동안 주기적으로 폭발하였던 민중항쟁의 역사는 남(한국)의 집권세력이 행사한 통치권이 인민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았으며, 인민을 위하여 행사되기는커녕 인민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여왔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남(한국)의 통치권은 남(한국) 인민으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추종하는 친미예속세력으로부터 발생한 지배권이며, 남(한국) 인민을 위하여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하여, 그리고 미국을 추종하는 집권세력을 위하여 행사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한국)의 통치권은 인민의 권력이 아니라 언제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이 자기의 지배권을 행사한 정치체제가 뇌물수수, 공금횡령, 불법자금조성을 식은 죽 먹듯이 저지르는 부패한 정상배들의 활동무대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최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정치개혁’에 의해서 속속 드러나는 집권세력 내부의 총체적 부정부패상이 그것을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남(한국)의 정치체제는 친미예속적이며 대민지배적인 정치체제다.
국가보안법이 56년 동안이나 유지해온 정치체제는 그처럼 모순으로 가득 찬 낡고 썩은 정치체제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1948년 12월에 처음으로 제정되었을 때, 제1조는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그 법이 1980년에 12월에 개정되었을 때, 제1조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서술방식은 조금씩 달라졌으나, 국가보안법은 변함없이 ‘국가변란’이나 ‘반국가활동’을 진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내세웠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국가변란’이나 ‘반국가활동’이란 남(한국) 정치체제의 파멸, 곧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정치체제의 파멸을 뜻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국가보안법이 ‘국가’를 유지해온 것이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 찬 낡고 썩은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존속사는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여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은 반역의 암흑사인 것이다.

넷째, 국가보안법은 1948년 이후 지금까지 56년 동안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정치체제를 반대하면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투쟁해온 민족민주세력에게 발동된 폭압장치다.
남(한국)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은 낡고 썩은 정치체제를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체제로 교체하려는 민족민주세력의 정당한 사회정치활동을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에 걸어 ‘국가변란’이나 ‘반국가활동’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인권실태보고서』에 따르면, 1961년부터 2002년까지 41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람은 7천7백78명, 반공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람은 4천1백67명이었다.

한국(조선)전쟁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을 추종하여온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은 민족민주세력만이 아니라 자기의 정적인 야당도 탄압하였다. 한국(조선)전쟁 이후 미국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림을 받은 이승만 정권은 무너져가면서도 악착같이 진보당을 탄압했고, 군사정변으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초기에 혁신정당을 탄압했고 후기에는 김대중-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야당 탄압에 나섰으며, 양민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전두환 정권은 가장 야만적으로 야당을 탄압하였고, 그 뒤를 이은 노태우 정권은 야당을 탄압한 마지막 군사독재정권이 되었다.
이처럼 195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야당탄압에 국가보안법이 동원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남(한국)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이 야당을 탄압한 까닭은 한국(조선)전쟁의 참화 속에서 희생된 민족민주세력의 힘이 미약해졌고, 따라서 야당이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에 대항하는 최대의 도전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예속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체제를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의지도 없었고, 다만 남(한국)의 정치체제를 자기들이 장악하려는 정치적 야망밖에 가진 것이 없었는데도, 국가보안법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야당이 국가보안법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된 것은 민족민주세력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기간에 생겨난 일시적이고 부차적인 현상이었을 뿐이고,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탄압한 주된 대상이 민족민주세력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남(한국)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은 민족민주세력이 북(조선)과 연계된 것처럼 증거를 조작하고 이른바 ‘간첩단’을 날조하여 민족민주세력을 탄압하는데 국가보안법을 동원하였다.
지난 시기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이른바 ‘간첩죄’를 뒤집어씌워 중형을 선고한 사건들은 민족민주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 자행된 정치탄압의 전형이었다.

3.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정치체제 성격문제

국가보안법이 군사독재체제의 유산이므로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이 유지해온 낡은 정치체제의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성격은 외면하면서, 국가보안법에 들어있는 인권침해 독소조항만 부각시킨다.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대표적으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낡은 정치체제의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성격을 외면하는 까닭은, 그들 자신이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낡은 정치체제의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성격을 외면하는 것은 역사인식을 상실한 근시안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남(한국)의 정치사를 보면,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것은 군사독재세력이 아니라 이승만 친미예속정권이었고, 국가보안법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체제 이전에 이미 보강과정을 밟았으며,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탈군사독재체제에서도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발동되어왔음이 드러난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의 발표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9개월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은 58명이었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일자)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단순히 군사독재체제만 유지해오지 않았음을 뜻한다. 군사독재체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그리고 그 체제가 소멸한 뒤에도 여전히 56년 전 기간을 관통하여 국가보안법이 유지해온 것은 다름 아닌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낡은 정치체제였다.

주목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유지해온 낡은 정치체제의 성격을 인권의 기준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민족자주성과 사회계급성의 기준으로 파악하느냐 하는 시각의 차이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명백하게도, 남(한국) 정치체제의 성격을 인권의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시각이고, 민족자주성과 사회계급성의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은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의 시각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족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이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각을 갖는 까닭은, 새로 세워야 할 정치체제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시민민주주의(bourgeois democracy)를 지향·추구하고, 후자는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를 지향·추구한다.
남(한국)의 시민민주주의가 구미지역의 시민민주주의와 다르게 친미예속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 짝을 이루는 낡은 정치이념이라는 것은 명백하며, 반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친미예속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극복한 광범위한 근로대중 중심의 민족자립 경제체제와 짝을 이루는 새로운 정치이념이라는 것도 명백하다.

다른 한편,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극우반역세력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원래 시민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인데, 중산층이 아직 성장하지 못했던 지난 시기에 극우반역세력이 중산층의 고유한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마치 자기들의 정치이념인 것처럼 도용하였고, 그 기만적 관행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남(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극우반역세력의 고유한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 또는 시민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산주의(anti-communism)라고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군사독재체제에만 결부시키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근거를 시민민주주의 실현에서 찾는 반면에, 국가보안법을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정치체제의 성격에 결부시키는 민족민주세력은 그 법을 폐지해야 하는 근거를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에서 찾는다.
민주노동당 전체가 일치된 하나의 견해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적 견해와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 있는 민주노동당의 다수적 구성부분 역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근거를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에서 찾는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존폐문제와 정치체제 성격문제의 상호연관성을 남(한국) 사회구성원의 이념성향에 따라 분류한다면,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한 진보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인구비율 70% 정도의 기층민중을 위한 정치체제이며, 국가보안법을 형법보완이나 대체입법 제정으로 교체한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는 20% 정도의 중산층을 위한 정치체제이고, 국가보안법을 부분적으로 개정하고 존치한 반공산주의 정치체제는 10% 정도의 극우반역세력을 위한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4. 국가보안법과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국가보안법에 들어있는 인권침해 독소조항을 제거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야 할 근거로 내놓은 것은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근거를 정치체제를 개변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권을 옹호하고 신장하는 문제로 국한시켰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하면서 그 법을 폐지해야 할 근거를 인권문제로 국한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의 본질이 은폐된다는 점이다.
명백한 것은, 남(한국)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이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사회구성원 일반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민족민주세력의 정당한 사회정치활동을 탄압해왔다는 사실이다.
남(한국)의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이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민족민주세력의 사회정치활동을 탄압한 까닭은, 민족민주세력이 낡은 정치체제를 새로운 정치체제로 교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민주세력의 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보안법은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악법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에 들어있는 인권침해 독소조항을 제거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발상은, 인권을 침해하는 낡은 정치체제를 인권을 옹호·신장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로 개선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권을 옹호·신장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란 시민민주주의 실현으로 개선된 정치체제를 뜻한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열린우리당이 바라는 대로 남(한국) 정치권이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운다고 해도 낡은 정치체제가 새로운 정치체제로 개변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열린우리당이 바라는 대로,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세워지면, 인권을 ‘어느 정도’ 옹호·신장할지 모르지만, 정치체제의 친미예속적인 성격이 자주적인 성격으로 교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까닭은,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자주권을 행사하는 자주적 정치체제로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민주주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에 묶여있는 예속적 성격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 낡은 성격을 유지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시민민주주의는 기층민중에 대한 지배적 성격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 낡은 성격을 여전히 유지한다. 시민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인권의 옹호와 증진은 낡은 정치체제의 대민지배적 성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체제의 겉모양만 손질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한국) 정치권의 민주주의 운영방식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응답자는 64.6%였고, 만족하는 응답자는 32.1%에 그쳤다. (『중앙일보』 2004년 6월 3일자) 이러한 현상은 시민민주주의를 지향·추구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한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대중이 요구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실현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남(한국) 대중이 불만을 가지는 대상은, 언론에서 정치권의 민주주의 운영방식이라고 어설프게 표현한 정치방식이 아니라 시민민주주의가 상당히 실현되었다고 하는 현존 정치체제 그 자체이며, 불만을 가지는 근본이유는 그 체제에서 기층민중에 대한 지배적 성격이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실현하려는 시민민주주의가 기층민중의 계급적 요구와 충돌한다는 사실은 최근에 있었던 두 사건에서도 입증되었다.
그것은 2004년 9월 10일 정읍농민대회를 경찰폭력을 동원하여 야만적으로 진압한 사건, 그리고 9월 16일 건설운송노조, 전국시설관리노조,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애니메이션노조 등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20여명이 열린우리당 중앙당사 당의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농민들은 남(한국) 농업을 완전히 파괴하고 농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쌀시장개방을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최근 노동부가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이 1997년의 노동법 개악보다 더 심한 개악이라 규탄하면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민중의 계급적 요구와 충돌하는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기층민중에 대한 지배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열린우리당은 기층민중의 계급적 요구와 충돌하는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인권’이라는 화려한 장식품을 달아놓고 기층민중에 대한 지배적 성격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그러한 의도는 이른바 ‘파괴활동금지법’을 새로 제정하려는 방침에서 드러났다.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파괴활동’이란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열린우리당이 ‘파괴활동금지법’을 발동하여 지키려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바로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1945년 8.15 이후 남(한국)에서 정권은 여러 차례 ‘간판’을 바꿔 달았으나, 정치체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이 사라지고 자유주의정권이 등장하였다고 해서 친미예속성과 대민지배성을 본질로 하는 낡은 정치체제가 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은 변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남(한국) 정권을 교체해가면서 친미예속적이고 대민지배적인 낡은 정치체제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친미예속성과 대민지배성을 본질로 하는 낡은 정치체제가 민족의 자주성과 근로대중의 주체성을 본질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로 교체되기까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은 없어질 수 있어도 국가보안법적 내용은 폐지되지 않는 것이다.

5. 국가보안법과 반공산주의 분단체제

명백하게도, 국가보안법은 특정한 정치이념을 가진다.
그 정치이념을 일반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반공산주의(anti-communism)이다.
국가보안법이 배격하는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일반이 아니라 한(조선)민족 내부에 존재하는 공산주의, 곧 북(조선) 공산주의를 뜻한다. 한(조선)민족의 정치현실에서 반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지향·추구하는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된 북(조선)을 ‘악마’로 만들고(demonize), 무조건 배척·공격하는 파괴적 이념으로 성립되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산주의 분단체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광기 어린 시각으로 보면, 북(조선)은 장차 통일조국에서 함께 살아야 할 동족이 아니라 ‘남(한국)을 잡아먹으려는 붉은 악마’로 보인다.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은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반공산주의 분단체제를 ‘붉은 악마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반공산주의 분단체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의 산물이며,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를 억압·말살하려는 반통일체제다. 따라서 남(한국)에 존재하는 반공산주의이념은 반통일이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를 억압·말살하려는 반통일체제를 유지해온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가 적대관계에서 화해와 통일를 지향하는 새로운 관계로 전환되는 것과 무관하게 존재하면서 그 전환을 가로막아왔다.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조국통일운동을 짓밟은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은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놓아두고 1990년 8월 1일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그 이북지역 간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이른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모순되는 행동을 보여주었으며, 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모순되는 행동을 거듭하였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반국가단체’란, 통상적으로 말하는 ‘국가’를 반대하는 단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반역집단’을 뜻하는 것이다.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반국가단체’와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극우반역세력이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린 모순의 극치였다.
그러한 자가당착을 의식한 듯,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 31일 국가보안법의 문구 몇 개를 삭제하거나 바꾸는 식으로 이른바 ‘개정조치’를 취하는 척하면서 문제를 덮어버렸다.

극우반동세력의 대북(조선)관은 북(조선)을 없애버려야 할 ‘반국가단체’이며, 동시에 대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보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극우반역세력의 그러한 자가당착은 국가보안법이 존치되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극우반역세력의 자가당착은 얼마 전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송두율 교수를 탄압하였던 사건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송두율 교수를 탄압하기 위하여 작성한 이른바 ‘판결문’의 일절은 다음과 같다.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규범성을 갖추고 있다.”

우리 나라 분단사가 말해주는 대로, 민족민주세력은 반공산주의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불굴의 투쟁을 전개해왔던 반면,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은, 그것이 극우반역세력이건 자유주의 정치세력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민족민주세력의 조국통일운동을 탄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민족민주세력의 조국통일운동을 탄압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조국통일운동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하였다면,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반통일적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서 북(조선)을 화해와 통일의 대상으로 인정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뒤에 남(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안보불안’이 생겨나지 않도록 형법을 보완하거나 대체입법을 제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여기서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안보불안’은 친미예속적 집권세력이 지난 56년 동안 계속하여 조작해온 북(조선)의 ‘남침위협’에 대한 ‘불안’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열린우리당이 앞에서는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요란하게 제기하면서도 뒤에서는 여전히 북(조선)을 화해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열린우리당이 기존 형법을 보완하면서 형법 제87조에 추가하려는 2항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처단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형법 제102조에 추가하려는 2항은 “대한민국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는 적국으로 간주한다.”고 되어있다. 이 두 조항에 나오는 ‘반국가단체’ 또는 ‘적국’이 북(조선)을 가리키는 개념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이러한 형법보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적절하게 비판한 대로, 기존 형법의 국가보안법화에 지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 대체입법 없이 폐지되면, 폭력에 호소하지 않는 한 헌법의 민주질서 폐지운동이 합법화되고, 형법 등 관계법률규정만 가지고는 북한을 비롯한 적대국을 위한 간첩 등 이적행위에 대응하는 데 미흡하여 (줄임) 파괴활동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이 말해주는 대로, 대체입법 제정이 현존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대체입법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2004년 9월 1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에서 진행된 항소심 재판에서 입증되었다.
판사들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에게 이른바 ‘간첩죄’를 씌워 징역 3년 6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의 행동은 앞으로 보완될 형법이나 제정될 대체입법에 의해서도 대부분 처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형법보완이나 대체입법 제정이 이름만 바뀐 제2의 국가보안법을 등장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현존하는 국가보안법이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였다면, 열린우리당이 제정하려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은 북(조선)을 ‘반국가단체’와 ‘적국’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 제2의 국가보안법의 이중규정은 남북관계에서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서 북(조선)을 ‘적국’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열린우리당의 대체입법 제정은 국가보안법에 들어있는 반통일적 독소조항을 형법에 옮겨놓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였다고 요란하게 선전하면서 남(한국)과 국제사회를 속이려는 정치협잡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 없다.
또한 열린우리당은 반통일적 독소조항만이 아니라 자기들이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권침해 독소조항도 완전히 없애지 않고 대충 손질하여 형법에 옮겨놓으려고 한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보완 또는 대체입법 제정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변형적 존치에 지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변형적 존치에 찬동함으로써 두 정당이 야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6. 중산층 정권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제기한 배경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며 탈군사독재 정치체제를 수립해온 과정은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성장하면서 정권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강화해온 과정이었다.
1993년에 김영삼 정권이 ‘문민’의 간판을 들고 등장한 이후 10년 동안, 남(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진출이 돋보였고,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차츰 안정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남(한국) 정치권에서 일어난 변화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진출과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안정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오늘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최근 행동이 그러한 변화를 실감나게 한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그들이 민족민주세력의 사회정치활동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6.15 공동선언을 이행함으로써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근본목적은 시민민주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장악·관리하기 위함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 배경은 남(한국) 사회계급구성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계급구성의 변화란, 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성장률 상승에 따라 중산층이 차츰 세력을 팽창하면서 정치세력화의 길을 밟아온 변화를 말한다. 1987년의 경제성장률은 13.0%, 1988년에는 12.4%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중산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사회화가 진전되고, 서비스업 영역이 확대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정권기구가 비대해지는 네 가지 추세에 따라 출현한 새로운 사회계층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화가 진전되어 분업이 확대·발전하면, 자본가는 기업경영자로 변신하게 되고, 이전에 자기들이 장악하였던 생산현장에 대한 지휘·통제기능을 대행하는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 이 새로운 노동자들이 종래의 노동계급과는 구별되고, 기층민중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계층을 형성한다. 중산층의 계급적 귀속은, 그 상층이 기업체 임원이나 고위관리로, 그 중간층이 전통적 중소상공업자, 전문기술자, 관리직원, 공무원, 지식인으로, 그 하층이 사무원과 판매원 등으로 각각 편성된다.

전통적 중소상공업자로 구성된 이른바 중산계급은 종래의 경제체제가 낳아놓은 산물이다.
중산계급은 자본의 독점화과정에서 독점자본에게 종속되거나 독점자본과의 경쟁에서 패하여 파산됨으로써 그 존립기반이 차츰 약화되는 한편, 두뇌노동자들이 출현하여 신흥 중산층을 형성하고 중산층의 주류를 차지한다.

1985년 현재 남(한국) 노동인구 구성비율은 전통적 중소상공업자가 11%, 신흥 중산층이 11%로, 전체 중산층이 차지한 구성비율은 대략 22%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달라졌다.
국제기준을 적용한 사회조사기법인 ‘종합사회조사(GSS) 프로그램’을 남(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여 7개월 동안 남(한국) 전역의 성인남녀 1천3백15명을 직접 면담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68.7%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2004년 6월 3일자)

물론 68.7%라는 높은 구성비율은 노동인구 구성비율이 아니라 ‘중산층 의식’을 가진 사회구성원의 비율이다. 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상류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2.8%, 하류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5.9%였다고 한다. 여기서 하류 중산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민족민주세력이 기층민중이라고 부르는 사회계급에 귀속되는 구성원이다.

이처럼 남(한국)의 사회계급구성에서 실제로는 기층민중이면서도 ‘중산층 의식’을 가진 사회구성원이 많기 때문에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부풀려져 있지만, 중산층이 양적으로 성장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87년 6월항쟁은 남(한국) 사회계급구성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성장한 중산층의 정치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였던 대중적 정치투쟁이었으며, 중산층이라는 지지기반을 얻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종래의 극우반역세력과 힘을 겨루는 경쟁자로 등장한 결정적 계기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987년 6월항쟁을 ‘중산층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중산층은 국가의 억압, 지배, 간섭을 거부하는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도모한다. 1980년대 후반 남(한국)의 중산층은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적 지배를 거부하고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요구하였다. 그러한 정치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대중적 정치투쟁이 전개되면서 군사독재 정치체제는 차츰 소멸하였다.

군사독재 정치체제가 소멸되는 정치공백에 파고들기 시작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자유주의 정치세력이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처음에 힘이 미약했으나, 1990년대 초 동서냉전체제의 붕괴와 중산층의 성장이라는 내외 정세변화와 더불어 지지기반을 확대하면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으며, 결국 집권에 성공하였다.

열린우리당은 중산층의 이해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정치집단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집권은 중산층의 지지기반 위에서 가능하였다.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도급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적 세례’를 받은 세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뜻에서 노무현 정권을 중산층 정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면서 중산층 정권을 공고하게 구축해왔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이념적 성향은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반대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공산주의나 반공주의를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라고 보기 때문에 공산주의도 반대하고 반공주의도 반대한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지향·추구하는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이념적 성향을 공유하는 중산층이 성장함으로써 남(한국) 사회의 사회정치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연세대학교 고상두 교수는 최근에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를 분석하면서 “이제 반공주의라는 개념을 갖고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설명하기에는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상당히 유연해졌다.”고 평가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30일자) 그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을 개정·보완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0-30대 72.4%, 40대 70.2%, 50대 이상 49.8%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중산층의 반(反)권위주의적 성향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정과 보완을 요구하게 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1987년 6월항쟁 이후 상승세를 타고 집권에 성공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그로부터 불과 10년만에 자기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난관은 차츰 자유주의 정치체제의 근간을 위협하게 되었다. 그로써 오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위기상황이 조성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산층 정권의 위기상황을 조성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97년에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국제독점체에 대한 예속이 더욱 심화되는 것으로 하여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양극분해되고 있는 중산층은 동요와 불안에 빠져있다. 중산층의 동요와 불안은 중산층과 중산층 정권을 분리시킴으로써 중산층 정권의 지지기반 와해라는 치명적인 사태를 몰고 온다.
중산층과 중산층 정권의 분리현상은 최근 노무현 정권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둘째, 민족·계급모순이 심화되고 있다.
중산층 정권이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고하게 수립함으로써 정권의 자유화(liberalization)는 실현될 것이나, 중산층의 양극분해는 막지 못할 것이며, 기층민중의 생존권은 여전히 짓밟힐 것이며, 정권의 친미예속화는 도리어 더 심화될 것이다.
이것이 최근 남(한국) 사회에서 민족·계급모순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민족·계급모순의 심화는 그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민족민주세력과 그에 연대하는 기층민중에게 정치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안겨주는 것이다.

셋째, 기층민중이 독자적인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면서 투쟁주체로 일어서고 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중산층의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기층민중의 정치적 요구가 폭발한 대중정치투쟁은 1991년 5월항쟁이었다. 연이은 분신항거에 의해서 촉발된 1991년 5월항쟁은 조직화된 기층민중, 특히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파업투쟁으로 대중정치투쟁에 가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라는 정권타도구호를 내걸고 싸워 결국 노재봉 내각을 퇴진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중산층의 항쟁참여가 저조했다는 점에서 기층민중이 주도하는 대중정치투쟁의 전형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1987년 6월항쟁에서 전면에 나섰던 중산층은 불과 4년만에 변화를 기피하고 안정과 보수를 추구하는 기득권층으로 바뀌었고, 그 대신 기층민중이 항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기층민중과 그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사회정치세력인 민족민주세력은 1991년 5월항쟁에서 주력으로 등장하였으나, 사회주의 진영의 와해로 발생한 민족민주세력의 이념적 혼란과 이탈, 그리고 성장한 중산층이 안정과 보수를 추구하는 추세에 따라 중산층 정권이 등장하여 추진한 기층민중에 대한 기만적인 포섭전략이 중첩되면서 민족민주세력과 기층민중의 조직적 연계가 다소 느슨해지고 투쟁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다.
1991년 5월항쟁 이후 지금까지 13년이 흘렀으나, 기층민중이 주도하는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2000년 이후 민족민주세력과 기층민중의 조직적 연계가 재정비되면서 투쟁력을 축적해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넷째, 진보적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정치권에 진출하였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이념공세에 휘말린 까닭에 실제로는 기층민중이면서도 ‘중산층 의식’을 가졌던 근로대중 속에서 계급적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근로대중의 계급적 각성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구호를 든 민주노동당의 정치노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근로대중이 ‘중산층 의식’을 버리고 계급적으로 각성할수록 열린우리당 지지층은 약화되고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강화될 것이다.

남(한국) 경제가 비교적 안정추세를 보이는 경우, 중산층은 변화를 기피하고 안정과 보수를 추구하는 기득권층이 되지만, 요즈음처럼 남(한국) 경제가 파탄지경에 빠지면서 중산층 자체가 양극분해되는 경우, 중산층은 기층민중과 손잡고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중산층의 ‘탄핵반대열풍’이 거세게 몰아침으로써 중산층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결합도가 고조되었던 올해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그러한 경제파탄에 직면한 중산층의 변화가 작용하였다.

이처럼 네 가지 요인 때문에 위기상황으로 밀려간 중산층 정권은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고하게 만들어 자기들의 권력기반을 안정시켜야 할 요구를 절감하였다.
중산층 정권이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들의 권력기반을 넘보는 최대의 도전세력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반역세력의 힘을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되고, 기층민중과 중하층 중산층을 포괄하는 가장 광범위한 근로대중 전체를 지지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정치세력인 민주노동당이 발전되는 추세를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산층 정권이 극우반역세력의 힘을 압도하려면 극우반역세력이 붙들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대체하여야 하며,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을 발동하여 민족민주세력과 기층민중의 조직적 연계가 정치체제 개변을 추동하지 못하도록 차단하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 중산층 정권이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들고 나오게 된 까닭이다. 중산층 정권이 자기의 권력기반을 안정시키는 책략은 개량, 양보, 기만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7. 글을 맺으며 – 민족민주세력의 인식과 실천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여러 사회정치세력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투쟁이 벌어지는 현실은 한(조선)반도 정세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이처럼 급변하는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민족민주세력의 인식과 실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민족민주세력에게 중요한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체적 관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인식하는 일이다. 민족민주세력의 주체적 관점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족민주세력의 집권경로에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지는 의의를 정확히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는 민족민주세력의 집권경로에서 필수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족민주세력을 짓눌러온 가장 커다란 폭압장치가 제거되면서 민족민주세력의 사회정치활동공간이 결정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확대된 사회정치활동공간 속에서 민족민주세력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민주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전개함에 있어서 자기의 투쟁이 시민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수립이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수립을 위한 정치투쟁이라는 주체적 관점을 올곧게 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둘째, 민족민주세력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각계각층 사회정치역량의 연대성과 조직적 결합력을 비상히 강화하여 광범위한 대중이 나서는 폐지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광범위한 대중이라는 개념은, 노동조합과 농민회 등 진보성향의 대중단체에 들어있는 기층민중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층민중이면서도 ‘중산층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근로대중, 그리고 경제파탄으로 양극분해되고 있는 중산층에 속한 근로대중까지 모두 포괄하는 실로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낡은 정치체제를 새로운 정치체제로 교체하는 민족민주세력의 정치투쟁은 광범위한 대중의 힘을 그 투쟁의 기본역량으로 조직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는 오늘의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민족민주세력이 전개하는 모든 형태의 정치투쟁에서 그러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전개하는 광범위한 대중역량의 중심은 역시 기층민중의 조직력에 의해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서 제기된 중요한 과제, 곧 기층민중의 조직력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위한 대중역량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과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광범위한 대중역량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과제란, 민족민주세력과 진보성향의 대중단체에 들어있는 기층민중이 ‘중산층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근로대중과 경제파탄으로 양극분해되고 있는 중산층에 속한 근로대중을 정치적 연대로 이끌어 내는 일이다.

셋째,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다. 민족민주세력은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대중적 정치투쟁을 민주노동당의 원내투쟁과 연계시키고,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추진하는 자기의 원내투쟁을 대중적 정치투쟁과 연계시키는 일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족민주세력이 각자의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일원화하는 것은 투쟁동력을 비상히 강화하는 데서 결정적 의의를 가질 뿐 아니라,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정치역량을 민주노동당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진보적 대중정당의 집권전략을 수행하는 가장 강한 추동력을 축적하는 것이다.

넷째, 중산층 정권이 추진하려는 형법보완이나 대체입법 제정은 현존하는 국가보안법을 새로운 이름을 가진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대체하려는 기만술책임을 대중에게 폭로·규탄하는 일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을 개정·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 응답자는 20-30대 72.4%, 40대 70.2%, 50대 이상 49.8%를 기록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30일자) 이것은 남(한국) 대중에게 ‘중산층 의식’이 퍼져있어서 대중의 정치의식이 형법보완이나 대체입법 제정을 추진하는 중산층 정권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그 기울어진 각도만큼, 국가보안법 완전폐지가 아니라 개정·보완을 추구하는 중산층 정권의 기만술책이 먹혀 들어갈 우려가 있다.

만약 중산층 정권의 기만술책대로, 형법이 국가보안법 수준으로 ‘보완’되거나 또는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을 담은 대체입법이 제정되는 경우, 새로 등장한 악법을 폐지하려는 민족민주세력의 투쟁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었다는 중산층 정권의 선동에 말려든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민주세력이 중산층 정권의 기만술책을 대중에게 폭로하고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급하고 중대한 투쟁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보안법 존폐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오늘, 민족민주세력은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긴 투쟁과정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그 새로운 전기는 민족민주세력의 현재 역량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난관을 동반하고 있다.

1991년 5월항쟁의 경험이 말해주는 대로, 민족민주세력이 난관을 뚫고 전진하는 돌파력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한국) 사회의 구성비율에서 약 70%를 차지하는 기층민중에게서 나온다.
민족민주세력이 기층민중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층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은 기층민중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각오로 투쟁하는 민족민주세력밖에 없다. 민족민주세력의 최후 승리를 믿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2004년 9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