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뜨롬바도리의 후기:혁명을 넘어서
나는 1978년이 끝나갈 무렵에 파리에서 미셸 푸코와 만났다. 당시에 그는 (비록 오늘날[1981년]보다는 다소 덜 했지만) 많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10여 년 간 이어진 맑스주의 “언어”를 향한 열광이 식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어휘를 유통시키고 있었고,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근본적이고 자유의지론적인(libertarian) 열망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유행의 문제를 넘어서 이러한 눈에 띄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몇 가지 면에서 여전히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신-비합리주의자들(neo-irrationalist)의 주장과 문화적 선택의 부활에 대해 (1968년 직전의) 특정한 이론적 맑스주의가 보여주었던 무기력한 저항과 그것의 상대적 취약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기자인 나는 푸코와의 토론을 시도하였다. 이 토론은 그가 받은 이론적 영향과 그것들과의 교차지점뿐만 아니라, 유럽 저항 운동의 특유한 정신 및 그 뿌리(1968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관습을 위반하려는 충동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연구와 맺고 있는 호응관계를 설명해 줄 문화적․역사-정치적 수렴지점을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푸코에 따르면, 맑스주의는 이러한 흐름들에 대해서 취약한 이데올로기적 방어만 고집했을 뿐이다. 그리고 (1960년대의 과도하게 이론화된 맑스주의가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완고한 담론성”이라는 귀찮은 껍데기는, 권력의 내밀한 합리성 및 개인을 “통치하는” 권력의 능력에 반하여 권력을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의지론적 욕구의 좀더 실질적이고 심도 깊은 표출에 (푸코가 보기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추정을 통해서, 푸코는 그의 권력에 대한 담론이 급진적 저항 운동이 갖고 있는 내면적 진실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토론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나에게 진정한 동기가 되었던 것이 사실은 이러한 권력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특정한 제도들이 “이성”이나 “정상성”의 이름으로 행위, 존재, 실천, 발언의 방식을 확립하고 개인들을 비정상인 혹은 광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아갔던 방식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결국에, 나는 권력의 역사를 생산하는 작업만을 해왔던 것이지요. 그리고 권력은 [푸코에 따르면] 하나의 설명되어야 하는 문제로서, 원리 혹은 토대―특히 경제적인 토대―와 관련해서 말해질 것이 아니라 권력을 구성하는 메커니즘들의 작동과 바로 그 자체와 그것을 특징짓는 관계들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는 담론들과 관련해서 말해져야 한다. 푸코주의자들의 “고고학”(archaeology)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이러한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고고학은 고전적인 맑스주의로부터 많이 벗어나 니체에 의해 열려진 지평 속에서 전적으로 기획되는데, “권력에 대한 담론”은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해” 나아가는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고고학의 기본 가정은, “사건들”의 물질적 이론틀을 그것이 가지는 비환원적 불연속 속에서 이론적으로 서술하여, 주체성과 모든 “사상의 역사”를 넘어서려는 것이다. 그것의 구성 과정 속에서 이성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진리의 지배는 몇 가지 점에서 이러한 사실의 은폐를 의미한다. 광기의 연구에서 이루어진 “한계-체험”에 대한 성찰을 시작으로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고학적 재구성의 시도까지, 푸코의 사상은 모두 이러한 가정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반론들은 잘 알려져 있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 반론들은 푸코의 생각과 유사한 측과 다른 측, 양쪽 모두에게서 제기되고 있다. 하나의 심도 깊은 비판은, 푸코는 권력관계를 결정할 수 있는 실재적 주체(real subject)를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즉, 담론 형성체의 긴장 혹은 지식과 권력이 뒤엉켜 있는 특정한 장치의 맥락 속에서는, 누가 누구에 대항해 투쟁하는가? 이러한 자끄-알랭 밀러(Jacque-Alain Miller)의 적대적인 질문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일단의 일시적인 연합 형태는 존재하겠지만, 그것의 기본적인 요소는 “개인들 또는 심지어는 개인을 이루는 요소”(sub-individual)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우리들 즉 주체들에게서 실제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푸코는―휴머니즘적인, 현상학적인, 사르트르적인 등등의―반론을 염두에 두면서, 그의 견해 속에서 개인은 “권력의 효과”인 동시에 “권력의 절합 요소”라고 바로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떤 견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미 사전에 완전히 결정된 명백한 [권력의] 동학 외부에서, 그 무엇이 “권력관계”의 조건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푸코가 권력의 두 가지 용법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처럼 보일 때,―나는 이 두 가지 용법들이 서로 반대되는 것인지 혹은 상보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그는 이와 유사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편에서 권력이란, 언어 등의 기제를 통해서 혹은 그것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인 것의 산포이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은 총체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산 양식이다.(푸코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권력 측에서 항상 총체화되는 것을 총체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중앙집중적이고 서열적인 구조의 대의적(representative) 형태를 복원하는 걸 의미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만약 권력이 “총체화”한다면, (권력의 모든 미시물리학의 전제조건인) 개별적 “훈육 영역들”의 내재성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는가? [권력이 총체화한다면] 이 훈육적 공간의 내재성은, [그 내부에서] 권력의 특유한 기술들이 생산되지 못하는 단순한 허깨비가 돼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문자 권력이라는 생각(푸코 자신이 힘들여 기각했던 바로 그 생각)이, 그의 담론의 기반으로 재등장하는 것 아닌가? 푸코가 해방을 향한 요구들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는 일과 거리를 두면서, 순수한 감금의 메커니즘을 묘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짓는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작업은, 변증법적 비판 속에 위치한 적대를 대체할 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변증법적인 해결책을 파기하는 것―이것은 “인간의 소멸로 남겨진 공허 속에서” 수행되는 모든 사고의 전제인데―의 필연적인 결과는, “실천의 분출”(upheaval of praxis)로서의 혁명 개념에 대한 거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력의 “미시물리학”에서 권력의 “물리학”으로 향하는 운동의 부재, 즉 푸코주의자들의 고고학적인 관점을 국지적인 수준에서 지배 관계 일반의 수준으로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운동의 결핍이 드러나게 된다. 푸코는 “통치성”의 범주를 고찰하면서, 또 근대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를 관장했던 권력 기구와 체계를 재검토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비판에 답하려 하고 있다. 그는 대화 도중, 서구의 “훈육적 문명화”의 특징과 기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주제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20세기가 끝나가면서 이러한 훈육적 문명의 결정적 위기가 도래했으며, 서구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까지, 인간 사회에 대한 “통치”를 보장하는 모든 절차, 기술, 방법들이 의문에 부쳐진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계보학”(genealogy)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푸코는 타협 과정에서 “매개” 역할을 맡는 것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가능한 지적 “참여”의 과제와 그것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근대국가의 형태 변화(즉, 전문화의 증가와 집중된 통일체로서의 권력 형태의 종말)에 관해 맑스주의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과 비교해 보고, 시험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탈리아 인민들은, 모순의 이론을 맑스주의 문제틀 너머까지 확장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과 권력과 사회 계급들 간의 관계에 대해 재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이차원적인 도식이 해체되고 일련의 비대칭적인 극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은 국가의 우세한 절합과 함께 진행되는 근대의 “정치적인 것의 산포”가 가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치 속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수준이 비록 눈에 띄게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것으로 유지된다. “미시권력”의 배타적인 효과와 국지적이고 특정한 투쟁 전략으로 자신들의 관심을 돌려버린, 그래서 “정치적인 고통(political suffering)의 종말”을 선언한 것처럼 보이는 푸코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코식의 근본주의는, “정치에 대한 순수하고 단순한 거부”를 넘어서는 가능한 대응 방안을 가설화하는 데 실패했다. 아마 교훈이 있다면, 날카로운 비판을 계속하면서 “게임에는 참여하지 말라”는 통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항상 “주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푸코가 던지는 경고는, 누군가가 “혁명적 운동 내에서 국가장치 형태가 재생산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총체화 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없이 [혁명 운동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주권의 권리와 훈육적 메커니즘” 간의 결합으로부터 해방된 (푸코가 선언한 바 있는) “권리의 새로운 형태”의 창출을 어떻게 계획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전개된, 푸코의 입장이 가진 반-자코뱅적 원칙은, 마침내는 적대의 “기술”과 계획의 부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게임의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의 대가이지 않을까? 이러한 경우에 “해방”이란 주제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배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다른 공간” 혹은 “자치”(autonomy) 구역의 범위를 정하는 단순한 기준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진하여 “권력”을 “군주권”에 다시 갖다 바치는, 정치적인 것으로부터의 자기 배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들과 비판지점이 갖는 의미가, 이 책에 실린 푸코와의 대화 속에서 제시된다. 다만 비판의 수준과 내용을 내가 원하던 만큼 정교화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유일한 후회로 남으며,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바따이유, 클로소프스키, 바슐라르, 레비-스트로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속한 현대 프랑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이에 기반하고 있는 한 비상한 지식인의 일대기가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이 책에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쟁적으로 암시되는 사르트르를 포함하여) 실존주의자들의 “이론적 휴머니즘”에 대한 푸코의 대결이 지속적으로 제시되며, 프랑크푸르트학파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논박 역시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푸코가 대담 초기에 자신의 저작에서의 진리와 경험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주목하고 싶다. 그 곳에서는 언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의 연구가 가지는 도구적이고 꿈같은 성격이 강력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저작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들이, 그로 하여금 책들을 계속 써나가게 한다. “자기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그리고 이전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