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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맑스

미셸 푸코와 둣치오 뜨롬바도리의 대담

푸코의 작업과 삶,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한 보고서
『푸코의 맑스』

□ 도서명 :『푸코의 맑스』
□ 지은이 : 미셸 푸코(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 옮긴이 : 이승철
□ 판형: 변형신국판|제본: 무선|쪽수: 248 쪽
□ 정가 : 10,000원
□ 발행일 : 2004년 12월 1일
□ ISBN : 89-86114-73-9 04300 / 89-86114-72-0(세트)

『푸코의 맑스』의 짧은 소개

『푸코의 맑스』는 1978년 이루어진 미셸 푸코과 이탈리아 공산당 지식인 둣치오 뜨롬바도리 간의 대담을 담고 있다. 비-맑스주의적 좌파를 상징하는 지식인과 정통 맑스주의를 옹호하는 공산당원으로서 서로에 대해 품고 있었을 당연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두 대담자는 푸코의 지적 형성 과정과 그의 정치 참여, 맑스주의와 구조주의에 대한 평가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풀어나간다. 푸코 사상의 이해에 있어 『푸코와 맑스』가 중요한 이유는, 푸코의 지적 형성과 고민이 그 자신의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뜨롬바도리의 질문에 답하면서, 푸코는 전후 프랑스, 1968혁명 때의 프랑스, 1968혁명 이후의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가졌던 고민과 이론적․실천적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대담을 통해 푸코의 고민과 그의 사상, 그의 실천이 맺는 관계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이 이 대담을 푸코 사상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이 빠뜨려서는 안 되는 텍스트로 만들고 있다.

푸코의 작업과 삶,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한 보고서『푸코의 맑스』

흔히 사람들은 정식 저작에서의 푸코와 인터뷰에서의 푸코, 두 얼굴의 푸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저작들에서 푸코가 근대적 지식과 주체를 형성하는 권력의 작동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파헤치는 꼼꼼함과 엄격함을 보여준다면, 인터뷰에서의 푸코는 훨씬 더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학문적 상상력을 펼쳐나가면서 독자와 자신에게 다양한 새로운 질문거리를 던진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까지 우리는 푸코의 이러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그가 여러 사람들과 가진 대담들이 여기저기 짧게 소개되어 오긴 했으나, 일관성 없고 파편적인 대담에서 푸코의 인터뷰가 가지고 있는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푸코 이해는 언제나 반쪽이었으며, 그의 사상이 열어놓은 지평 역시 그 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누구나 푸코를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으나, 그것이 한때의 그저 그런 유행으로 흘러가 버린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푸코의 맑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푸코가 한 명의 대담자와 행한 최장의 인터뷰이다. 그 길이만큼,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푸코 자신의 지적 작업과 삶,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광범위하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푸코의 모습은 그 동안 접할 수 있었던 차갑고 냉철한 지식인으로서의 푸코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푸코는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지적 형성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자신이 살았던 프랑스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고민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론과 실천 양 면에서 그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한 시대의 직접적인 문제들과 직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실천가 그리고 이론가로서의 푸코가, 이 대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한편으로, 이 대담은 두 대담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초대장과도 같다. 독자들은 이 대담을 가로지르는 둘 사이의 은근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긴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좌파들 앞에 쌓여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푸코와 뜨롬바도리는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나름대로의 입장에 기반해 자신의 주장을 풀어나간다. 물론 이들이 풀고자 했던 문제들은,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들이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적인 문제들이며, 그 만큼 이들의 주장 역시 현재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푸코의 맑스』를 통해서 독자들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좌파 내부의 대표적인 두 관점과 그 관점들 간의 차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맑스』의 특징

1) 『푸코의 맑스』는 푸코의 지적 형성 과정을 풍부하게 되짚어 준다.

이 책에서 푸코는 자신이 어떻게 1950년대 프랑스 전체를 지배하던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넘어서, 니체와 바따이유, 깡길렘의 철학으로 나아갔는지 답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결코 푸코 개인의 지적 호기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맑스주의자인 뜨롬바도리의 집요한 질문을 답하면서, 그는 자신의 지적 형성을 일궈냈던 1950년대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그 속에서 자신이 가졌던 고민들, 그리고 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발견했던 새로운 지적 원천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시대를 붙잡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푸코의 모습과 함께, 그의 지적 형성 과정을 좀더 풍부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경험은, 나치즘을 허용하고 나치즘 앞에서 몸을 팔았으며 결국 드골과의 연합으로 나아간, 그 전에 우리가 살아왔던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창조해야 할 긴급성과 필요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했던 헤겔주의, 즉 우리가 대학에서 배웠던 “연속적인” 명료성의 역사 모형을 가진 헤겔주의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명확했습니다. 주체의 우위와 그것의 기본적인 가치를 확고히 유지했던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반면에 사람들은 니체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것은 불연속의 사상,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의 선언이었습니다.……”
2) 『푸코의 맑스』는 자신의 작업들에 대한 푸코 자신의 평가를 담고 있다.

“나는 내가 ‘탐험의 책’이라고 부르는 것과 ‘방법의 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번갈아 쓰게 됩니다. 탐험의 책에는 『광기의 역사』, 『임상 의학의 탄생』 등등이 속하고, 방법의 책에는 『지식의 고고학』 같은 책들이 속하지요.” 한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스스로가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참고하는 것이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에서, 푸코는 자신의 이전 저작들을 하나씩 평가해 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푸코의 각 저작들이 서로 간에 맺고 있는 관계와 그 저작을 썼을 당시 푸코가 가졌던 문제의식들이 드러나면서, 『푸코와 맑스』는 밀림 같은 그의 사상에 들어가기 위한 적절한 입구를 제공한다. “나를 진정 매혹시켰던 주제는 “한계-경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광기, 죽음, 섹슈얼리티, 범죄 같은 것들이었지요. 대신에, 나는 항상 『말과 사물』은 일종의 형식적인 연습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3) 『푸코의 맑스』는 현대 사상들에 대한 푸코의 독특한 평가를 담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젊었을 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접했다면,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매혹되어, 그들의 저서에 주석을 다는 작업 외에는 평생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헤겔주의, 실존주의, 구조주의, 비판이론, 맑스주의 등등과 때로는 대결하고, 때로는 흡수하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던 푸코는 이들 사상에 대해 각각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을까? 『푸코의 맑스』에서 제시되는 이들 사상에 대한 푸코의 평가는, 그의 작업의 특이함만큼이나 놀라운 것이다. 푸코는 구조주의의 전통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이를 현상학·맑스주의 등과 대립시키면서도, 스스로를 구조주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거부한다. 푸코는 자기가 비판이론에 완전히 매혹되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들과 자신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푸코는 1960년대 프랑스에 퍼져 있던 맑스주의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사상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평가는, 현대 사상들과 푸코의 사상 간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노력해 온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구조주의 그 자체는 확실히 1960년대의 “구조주의자들”이 발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프랑스의 발명품도 아닙니다. 그것의 진정한 기원은, 1920년대경 소련과 중부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전반적인 연구들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 『푸코의 맑스』에서는 푸코의 또 하나의 얼굴, 즉 ‘실천가로서의 푸코’를 발견할 수 있다.

“나를 바꾼 것은 1968년 5월이 아니라 제 3세계에서의 1968년 3월이다.” 젊은 시절 푸코의 공산당 생활은 어떠했을까? 푸코는 1968년 5월 혁명을 어떻게 경험했을까? 60년대 후반, 푸코가 다시금 정치적 실천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알려진 푸코의 사생활에 비해, 그의 정치적 실천은 그저 후일담의 형태로만 간간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푸코의 맑스』에서 우리는 좀더 자세한 ‘실천가로서의 푸코’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968년 튀니지에서 학생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실천했던 푸코, 1970년대 (G.I.P.)을 조직하여 활동했던 푸코, 지식인과 대중의 새로운 관계들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던 푸코. 이 책에 담겨진 푸코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는,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실천가로서의 푸코’라는 푸코의 새로운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혹은 문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견고하지만 동시에 파편화되어 있는 분파들의 벽과 끝없는 논쟁들을 횡단하여, 출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출구는, “지식인”과 “비-지식인” 간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협력과, 새로운 종류의 관계 맺음을 구축하는 데 있었지요.”
5) 『푸코의 맑스』는 푸코가 열어젖힌 새로운 정치학의 지평을 탐색한다.

“휴머니즘을 공격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의 방법은,…계급투쟁과 결합된 정치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방법은,…성에 부과되는 분할․제한․금기의 억압에 맞서고, 공동체적 실존 양식을 실천하고, 마약과 관련된 금지를 붕괴시키고, 규범적 개인의 발전을 가져오는 모든 금기들을 깨부수는, 문화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뜨롬바도리의 맑스주의에 맞서, 푸코는 자신의 이론이 현대 사회의 정치적 실천들과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푸코의 주장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정치철학은 그 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푸코의 정치학과 들뢰즈, 네그리로 이어지는 탈근대 정치사상과의 밀접한 관련을 보여줄 것이다. 특히 푸코가 제시하는 ‘경험의 정치학’은 ‘초월적인 것에 기반하지 않은 채, 어떻게 공통적인 것을 구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탈근대 정치철학의 핵심적 질문을 열어젖힌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기존의 맑스주의와 푸코의 정치학 간의 차이점을 그리고 둘 간의 장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면서도, 개인적인 변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변환과 변형으로의 길을 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러한 경험은 몇 가지 방식으로 집합적 실천과 사고방식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자, 옮긴이 소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쁘와띠에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니체, 하이데거, 바따이유, 바슐라르, 깡길렘, 알튀세르 등의 영향을 받았다. 를 비롯한 세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지식?주체?권력의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를 전개하였다. 1968년 이후로는 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투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저서로는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지식의 고고학』(1969), 『말과 사물』(1966),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 2권 『쾌락의 활용』(1984), 『자기 배려』(1984) 등이 있다. 1984년 AIDS로 사망하였다.

둣치오 뜨롬바도리(Duccio Trombadori, 1945~ )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고, 법철학과 그람시의 정치사상을 연구했다. 1978년 푸코와의 인터뷰 당시,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인 『류니타』지의 정치부 기자였으며 의회를 담당하는 통신원이었다. 현재는 로마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류니타』지 문화면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소개:이승철(Lee Seung Cheol, 1980~ )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푸코의 권력이론과 더불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권력 작동 양식의 변화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다중네트워크센터(MNC)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D. 뜨롬바도리의 후기:혁명을 넘어서

나는 1978년이 끝나갈 무렵에 파리에서 미셸 푸코와 만났다. 당시에 그는 (비록 오늘날[1981년]보다는 다소 덜 했지만) 많은 논쟁의 대상이었다. 10여 년 간 이어진 맑스주의 “언어”를 향한 열광이 식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어휘를 유통시키고 있었고,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근본적이고 자유의지론적인(libertarian) 열망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유행의 문제를 넘어서 이러한 눈에 띄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몇 가지 면에서 여전히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신-비합리주의자들(neo-irrationalist)의 주장과 문화적 선택의 부활에 대해 (1968년 직전의) 특정한 이론적 맑스주의가 보여주었던 무기력한 저항과 그것의 상대적 취약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기자인 나는 푸코와의 토론을 시도하였다. 이 토론은 그가 받은 이론적 영향과 그것들과의 교차지점뿐만 아니라, 유럽 저항 운동의 특유한 정신 및 그 뿌리(1968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관습을 위반하려는 충동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연구와 맺고 있는 호응관계를 설명해 줄 문화적․역사-정치적 수렴지점을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푸코에 따르면, 맑스주의는 이러한 흐름들에 대해서 취약한 이데올로기적 방어만 고집했을 뿐이다. 그리고 (1960년대의 과도하게 이론화된 맑스주의가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완고한 담론성”이라는 귀찮은 껍데기는, 권력의 내밀한 합리성 및 개인을 “통치하는” 권력의 능력에 반하여 권력을 타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의지론적 욕구의 좀더 실질적이고 심도 깊은 표출에 (푸코가 보기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추정을 통해서, 푸코는 그의 권력에 대한 담론이 급진적 저항 운동이 갖고 있는 내면적 진실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토론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나에게 진정한 동기가 되었던 것이 사실은 이러한 권력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특정한 제도들이 “이성”이나 “정상성”의 이름으로 행위, 존재, 실천, 발언의 방식을 확립하고 개인들을 비정상인 혹은 광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아갔던 방식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결국에, 나는 권력의 역사를 생산하는 작업만을 해왔던 것이지요. 그리고 권력은 [푸코에 따르면] 하나의 설명되어야 하는 문제로서, 원리 혹은 토대―특히 경제적인 토대―와 관련해서 말해질 것이 아니라 권력을 구성하는 메커니즘들의 작동과 바로 그 자체와 그것을 특징짓는 관계들 그리고 그것을 생산하는 담론들과 관련해서 말해져야 한다. 푸코주의자들의 “고고학”(archaeology)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이러한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고고학은 고전적인 맑스주의로부터 많이 벗어나 니체에 의해 열려진 지평 속에서 전적으로 기획되는데, “권력에 대한 담론”은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해” 나아가는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고고학의 기본 가정은, “사건들”의 물질적 이론틀을 그것이 가지는 비환원적 불연속 속에서 이론적으로 서술하여, 주체성과 모든 “사상의 역사”를 넘어서려는 것이다.
그것의 구성 과정 속에서 이성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진리의 지배는 몇 가지 점에서 이러한 사실의 은폐를 의미한다. 광기의 연구에서 이루어진 “한계-체험”에 대한 성찰을 시작으로 “말”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고학적 재구성의 시도까지, 푸코의 사상은 모두 이러한 가정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반론들은 잘 알려져 있고, 다양하다. 그리고 그 반론들은 푸코의 생각과 유사한 측과 다른 측, 양쪽 모두에게서 제기되고 있다. 하나의 심도 깊은 비판은, 푸코는 권력관계를 결정할 수 있는 실재적 주체(real subject)를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즉, 담론 형성체의 긴장 혹은 지식과 권력이 뒤엉켜 있는 특정한 장치의 맥락 속에서는, 누가 누구에 대항해 투쟁하는가? 이러한 자끄-알랭 밀러(Jacque-Alain Miller)의 적대적인 질문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일단의 일시적인 연합 형태는 존재하겠지만, 그것의 기본적인 요소는 “개인들 또는 심지어는 개인을 이루는 요소”(sub-individual)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우리들 즉 주체들에게서 실제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푸코는―휴머니즘적인, 현상학적인, 사르트르적인 등등의―반론을 염두에 두면서, 그의 견해 속에서 개인은 “권력의 효과”인 동시에 “권력의 절합 요소”라고 바로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투쟁”이라는 단어가 어떤 견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미 사전에 완전히 결정된 명백한 [권력의] 동학 외부에서, 그 무엇이 “권력관계”의 조건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푸코가 권력의 두 가지 용법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처럼 보일 때,―나는 이 두 가지 용법들이 서로 반대되는 것인지 혹은 상보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그는 이와 유사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편에서 권력이란, 언어 등의 기제를 통해서 혹은 그것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인 것의 산포이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은 총체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산 양식이다.(푸코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권력 측에서 항상 총체화되는 것을 총체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중앙집중적이고 서열적인 구조의 대의적(representative) 형태를 복원하는 걸 의미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만약 권력이 “총체화”한다면, (권력의 모든 미시물리학의 전제조건인) 개별적 “훈육 영역들”의 내재성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는가? [권력이 총체화한다면] 이 훈육적 공간의 내재성은, [그 내부에서] 권력의 특유한 기술들이 생산되지 못하는 단순한 허깨비가 돼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문자 권력이라는 생각(푸코 자신이 힘들여 기각했던 바로 그 생각)이, 그의 담론의 기반으로 재등장하는 것 아닌가?
푸코가 해방을 향한 요구들에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는 일과 거리를 두면서, 순수한 감금의 메커니즘을 묘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짓는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작업은, 변증법적 비판 속에 위치한 적대를 대체할 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변증법적인 해결책을 파기하는 것―이것은 “인간의 소멸로 남겨진 공허 속에서” 수행되는 모든 사고의 전제인데―의 필연적인 결과는, “실천의 분출”(upheaval of praxis)로서의 혁명 개념에 대한 거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력의 “미시물리학”에서 권력의 “물리학”으로 향하는 운동의 부재, 즉 푸코주의자들의 고고학적인 관점을 국지적인 수준에서 지배 관계 일반의 수준으로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운동의 결핍이 드러나게 된다. 푸코는 “통치성”의 범주를 고찰하면서, 또 근대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를 관장했던 권력 기구와 체계를 재검토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비판에 답하려 하고 있다.
그는 대화 도중, 서구의 “훈육적 문명화”의 특징과 기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주제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20세기가 끝나가면서 이러한 훈육적 문명의 결정적 위기가 도래했으며, 서구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까지, 인간 사회에 대한 “통치”를 보장하는 모든 절차, 기술, 방법들이 의문에 부쳐진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계보학”(genealogy)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푸코는 타협 과정에서 “매개” 역할을 맡는 것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가능한 지적 “참여”의 과제와 그것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근대국가의 형태 변화(즉, 전문화의 증가와 집중된 통일체로서의 권력 형태의 종말)에 관해 맑스주의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과 비교해 보고, 시험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탈리아 인민들은, 모순의 이론을 맑스주의 문제틀 너머까지 확장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과 권력과 사회 계급들 간의 관계에 대해 재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이차원적인 도식이 해체되고 일련의 비대칭적인 극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은 국가의 우세한 절합과 함께 진행되는 근대의 “정치적인 것의 산포”가 가지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치 속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수준이 비록 눈에 띄게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것으로 유지된다. “미시권력”의 배타적인 효과와 국지적이고 특정한 투쟁 전략으로 자신들의 관심을 돌려버린, 그래서 “정치적인 고통(political suffering)의 종말”을 선언한 것처럼 보이는 푸코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코식의 근본주의는, “정치에 대한 순수하고 단순한 거부”를 넘어서는 가능한 대응 방안을 가설화하는 데 실패했다. 아마 교훈이 있다면, 날카로운 비판을 계속하면서 “게임에는 참여하지 말라”는 통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항상 “주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푸코가 던지는 경고는, 누군가가 “혁명적 운동 내에서 국가장치 형태가 재생산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총체화 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없이 [혁명 운동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주권의 권리와 훈육적 메커니즘” 간의 결합으로부터 해방된 (푸코가 선언한 바 있는) “권리의 새로운 형태”의 창출을 어떻게 계획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전개된, 푸코의 입장이 가진 반-자코뱅적 원칙은, 마침내는 적대의 “기술”과 계획의 부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게임의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의 대가이지 않을까? 이러한 경우에 “해방”이란 주제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배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다른 공간” 혹은 “자치”(autonomy) 구역의 범위를 정하는 단순한 기준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진하여 “권력”을 “군주권”에 다시 갖다 바치는, 정치적인 것으로부터의 자기 배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들과 비판지점이 갖는 의미가, 이 책에 실린 푸코와의 대화 속에서 제시된다. 다만 비판의 수준과 내용을 내가 원하던 만큼 정교화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유일한 후회로 남으며,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바따이유, 클로소프스키, 바슐라르, 레비-스트로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속한 현대 프랑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이에 기반하고 있는 한 비상한 지식인의 일대기가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이 책에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쟁적으로 암시되는 사르트르를 포함하여) 실존주의자들의 “이론적 휴머니즘”에 대한 푸코의 대결이 지속적으로 제시되며, 프랑크푸르트학파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논박 역시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푸코가 대담 초기에 자신의 저작에서의 진리와 경험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주목하고 싶다. 그 곳에서는 언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의 연구가 가지는 도구적이고 꿈같은 성격이 강력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저작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들이, 그로 하여금 책들을 계속 써나가게 한다. “자기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그리고 이전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미디어 리뷰

한겨레신문 – 고명섭 기자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4/11/0091000032004111214551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