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 인생, 그래도 목숨은 소중하지 않나요?”

[프레시안 2005-07-27 14:33]

[프레시안 김경락/기자]당신이 어느날 갑자기 형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면 심정이 어떨까? 더구나 사망 원인조차 알 수 없다면?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유종만씨는 지난 5일 저녁식사도 채 마치기 전인 오후 6시40분경 느닫없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경기도 부천의, 두산중공업이 원청인 주상복합아파트 건설현장(공사명 ‘위브더스테이트’)에서 일하던 유씨의 형 용만씨(56)가 공사 현장에서 숨졌다는 연락이었다.

“형이 외상 없이 쓰러졌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가망이 없는 것 같다.”

갑작스런 형의 사망통보…”진실을 알고 싶어요”

유씨는 부랴부랴 형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부천 S병원으로 달려갔다. 용만씨의 시신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다. 하지만 유씨에게는 형의 시신 가운데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분명히 외상이 없다고 했는데 머리 정수리 부분에 큰 상처가 있었어요. 피도 흥건히 흘러나온 상태고. 나같은 사람도 외상이 보이는데, 왜 처음에 병원은 외상이 없다고 했을까요?”

“외상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어요. 나중에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쓰러지다가 부딪힌 상처로 추측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유씨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죽었으면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형은 이미 죽었으
니 보상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아요. 단지 진실만큼은 알고 싶습니다.”

사측은 왜 사망 6시간 뒤 경찰에 신고했을까?

유씨의 진상 규명작업에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연맹과 민주노동당, 노동시민단체 등이 나섰다. 관련 자료를 찾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사망사고 직후 사측의 행동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용만씨의 시신이 최초로 목격된 것은 오후 6시 경이었지만, 경찰에 신고 접수된 것은 6시간 뒤인 6일 새벽 0시30분경이었다. 더구나 같은 날 새벽 2시20분경 진행된 경찰과 유족의 현장 조사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종만씨는 “형의 시신 머리 부분에 피가 흥건히 배어 있었는데, 정작 사고 현장에는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시신 발견 시점부터 경찰 신고 때까지 현장을 깨끗하게 청소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산재은폐 의혹들

이같은 의혹은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산업연맹 최명선 산업안전부장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사라진 종만씨의 안전모 △목격자와 사측 관계자의 엇갈린 진술 △119가 아닌 사설 응급구조대를 부른 배경 등을 예로 들었다.

유족 종만씨와 건설산업연맹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과 함께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 작업을 2주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진상규명 작업 자체가 ‘힘겨운 투쟁’이 될 것 같다고 연맹의 한 관계자는 내다봤다.

종만씨는 “형이 죽은 이후 보름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며 “아무리 공사판 인부 목숨은 개값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고개를 떨궜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