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터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가?”
[화제의 책]

2008-04-26 오전 10:39:09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일터에서 오히려 병을 얻어 ‘사는 일’을 위협받게 된다면 어떨까?

1년 6개월 사이에 15명이나 사망해 ‘죽음의 공장’이라는 말까지 얻었던 한국타이어는 이런 질문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줬다. 더욱이 최근 삼성반도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12명의 삼성반도체 노동자가 똑같은 백혈병으로 사망 혹은 투병 중인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 그것은 정말 ‘갑자기’ 벌어진 일일까? 혹시 내가 모르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터에서 얻는 병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구조와 이해는 어디쯤에 있을까?

내가 일하고 있는 일터의 안전과 환경 문제는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이유로, 또 한편으로는 너무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5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안전하게,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둘러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게 하는 책이 나왔다.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김명희 외 7명 옮김, 한울 아카데미 펴냄)은 비록 10년 전 미국에서 출판된 것이지만 옮긴이들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그에 대한 논의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지나칠 만큼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보자, 나의 일터를…

▲(존 우딩·찰스 레벤스타인 지음, 김명희 외 7명 옮김, 한울 아카데미 펴냄) ⓒ프레시안

이 책은 ‘생산의 지점’에 대한 얘기다. “전통적인 용어로 노동자가 자본을 이용해 원료를 생산품으로 만들어내는 장소”를 뜻하는 생산의 지점이란 쉽게 말하면 나의 일터다. 이는 또한 “유독성 물질이 만들어지거나 쓰이는 곳이며, 유해하고 오래된 종류의 폐기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거나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환경으로 퍼져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생산의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이든 들판이든 사무실이든 창고이든 관계없이, 노동환경이 바로 ‘생산의 지점’에서 일하는 이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경고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심각한 사고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지 나고 시끄러우며 물리적으로 위험한 공장에 비해 사무실은 안전한 장소”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 다만 “눈에 덜 띄고 극적이지 않아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건강 문제가 사무직, 여러 종류의 비제조업 노동(예컨대 유지 보수 작업, 쓰레기 수거 작업 등)과 관련 있다. 이를테면 안정피로, 근골격계 문제, 생식에 대한 유해요인, 기타 노출(대기 중 화학물질이나 다른 오염원에 노출), 소음, 부적절한 조명, 인구 과밀, 스트레스 관련 질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요즘은 웬만한 병의 원인으로 빠지지 않는 스트레스도 “경제활동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에서 여타의 건강 문제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직업성 질환과 손상”이다.

“스트레스 관련 질환은 자동화된 작업장, 사기업 혹은 공공기업의 사무실, 크고 작은 소매 대리점, 그 밖의 다양한 서비스 업종에서 흔히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놓인 이러한 직종이 경험하는 지속적으로 높은 긴장상태는 면역기능을 저하시키고 궤양, 심혈관 문제, 만성 불안과 우울증을 초래한다. 직무상의 스트레스는, 높아지는 경쟁적 압력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조직에서 흔히 악화된다.

몰라서, 알아도 참는 노동자와 ‘개인 탓’만 하는 사업주

하지만 이 같은 산업재해가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일터에서 병을 얻은 노동자 스스로도 그 원인이 자신의 일터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만지는 물질이 나의 건강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끝내 숨진 황유미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는 자신의 질환을 이해하기 위해 경영진과 보건 전문가에게 점점 더 의존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노동자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 질환의 직업적 원인은 불분명하거나 단지 의심으로 끝나고 만다.”

알아도 참는 경우도 있다. 괜히 아프다고 말해 잘리는 것보다는 당장 아이들 학원비와 전세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내 일터의 여러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주춤하게 만든다.

아픈 사람이 직업상 질환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는 “너 때문”이라고 하기 일쑤다. 예를 들어 ‘월요일 아침에 증상을 느끼는’ 면폐증을 두고 “노동자의 주말 음주 습관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생활습관을 탓하지 않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인다. 15명이 사망한 한국타이어도, 삼성반도체도 모두 그렇다.

아픈 사람과 아프게 만든 환경을 조성한 사람이 이처럼 대립할 경우 남은 것은 전문가의 판단인데, 이도 사정은 녹록치 않다. 소속 자체가 보험회사나 회사 측인 경우도 있고, 현대 과학이 아직까지 입증해내지 못한 각종 질환과 원인의 상관관계는 ‘관계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분야의 진짜 ‘규제 개혁’이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내 건강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 책에 소개된 경영대학원의 교과서에 실린 다음의 충고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방법을 추론해볼 수 있다.

“작업장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경영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 안전보건 문제를 교정하거나, 혹은 노동자에게 위험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위험을 줄이는 것이 추가적인 보상보다 돈이 덜 든다면 노동조건은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상의 한계비용이 안전 개선의 한계비용보다 적다면 기업은 보상 쪽을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기업의 총비용을 최소화시킨다는 점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할당을 나타낸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병을 얻었을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보상비용을 높일수록 산재는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나아가 “경영진의 양심 발휘가 이러한 훈련과 업계 내부의 유인 체계를 상쇄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지만 역사는 노동자가 경영진의 순수한 박애정신에 의존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서술한다.

긴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영계의 태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재계는 최근 정부의 규제완화 흐름에 편승해 산업안전관련 각종 규제까지 철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규제완화 정권’ 출범에 ‘날 뛰는’ 재계)

재계의 거센 요구를 받아든 이명박 정부에게 이 책은 직업안전보건 분야에서의 진짜 ‘규제개혁’이 무엇인지를 충고한다.

“진정한 ‘규제개혁’은, 우선 필수적인데도 완화되었거나 철폐되었던 규제를 제자리로 복원하는 것이다. 또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 규제뿐 아니라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산재사고의 원인 제공자인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형법에 기초한 특별법 도입을 추진하고, 사회적 규제 장치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업가들에게만 좋은 일을 해주려는 것인지는 오래지 않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