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성심병원 사태, 의료계 치부 드러내다
기사입력 2008-05-02 09:22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어디 간호사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하니.”

“너 같은 ×은 엄마 될 자격도 없어.”

“너 노조간부라며?”

한 중소병원에서 병원 노동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폭언·폭행을 저질러 결국 자살시도까지 이르게 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개입,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단 청구성심병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조합 설립이 의료계에서 제대로 이뤄지려면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자살까지 부른 병원 내 폭언·폭력

최근 차별로 인해 결국 자살시도까지 드러난 청구성심병원의 조사보고서가 병원의 봉건주의를 보여주면서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병원은 2003년에도 병원의 통제와 감시, 스트레스로 생긴 우울증을 집단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바 있으나 그 이후에도 달라진 점이 없어 지역시민단체들은 시민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가 다시금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우울증 등으로 산재 인정을 받아 요양하고 있다가 2007년 복직했지만 다시 같은 방식의 괴롭힘과 폭언의 피해를 입은 한 조합원이 올해초 염화칼슘 정맥주사 등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 결국 2차 자살시도까지 하면서 집중 조명됐다.

이번 사태를 조사하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37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공개한 ‘청구성심병원 인권침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병을 고치는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충격적이다.

청구성심병원 내의 탄압 현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전화 도청은 물론이고 근무자들 사이에 병원측 사람을 심어 보고하도록 할 뿐 아니라 식사에 대한 불만이 나오자 잔반검사나 청소 검열을 통해 심리적인 억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조원인 L간호사의 경우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예다.

그는 2007년12월 응급실에서 근무중 E기조실장이 임신중인 그의 배에 대고 주먹을 쥐고 배 부위를 쑤시는 시늉을 하며 “뱃××를 쑤셔버려”라고 폭언을 하자, 절박 유산증 진단을 받을 정도로 충격을 받고 일주일간 병가를 내기도 했다.

또 같은 달 외부에서 불려온 당직의에게 의사처방건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너 같은 ×은 응급실 근무할 자격이 없어 이 무식한 ×아”, “이 기집×아! 빨리 무릎 꿇고 빌어! 사과해!”라는 등의 폭언을 들었으며 차트를 얼굴에 내던지고 몸으로 밀치는 등의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원측은 오히려 L간호사에게 경위서 작성을 요구하는가 하면 한달 뒤인 1월중순에는 이후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징계하겠다는 경고장을 발송했다. 결국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L간호사는 2차례에 걸친 자살시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 노조에만 가입하면 병원의 공격대상으로

이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문제의 핵심은 사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에 있었다는 게 조사를 맡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위에서 가해진 정신적인 폭력들은 대부분 노조에 가입한 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었으며 탄압을 할 때 나오는 폭언들에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점을 꼭 지적하고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병원 노동자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80.7%가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차별이 있다고 답하고 있는데다 승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답하는 이들이 72.2%로 나타나고 있었다.

또 조사결과 인원배치에서도 노조에 가입한 간호사들은 병동으로 모두 보내고 외래에는 모두 간호조무사들만 배치했으며 비노조 간호사가 있는 곳은 항상 인원이 채워졌지만 노조원이 있는 층에는 인원을 배치하지 않아 휴가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됐다.

이 외에도 업무지시에서 노조원과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지도 말 것을 전하는가 하면 강성 조합원을 탈퇴시킬 경우 2000만원 지급을 약속하거나 지인을 입원시켜 일부러 불친절사례를 유도하도록 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노조와 병원간의 대립은 병원 경영의 악화를 사이에 두고 병원과 직원들간의 대립이 발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수간호사들이 대부분 가입한 이유가 수간호사들에게 월급을 환불하라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1000만원 대출받아 회사에 납부하라는 공공연한 협박과 강제적 퇴사요구가 들어오자 2006년4월경 대부분의 수간호사들이 가입한 것이 본격적인 대립의 시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문제

이같은 청구성심병원의 사례가 불거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청구성심병원의 예가 드러 났을 뿐 타 병원, 특히 중소병원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다고만 볼 수 없다”고 우려했다.

사실 병원의 노동 구조는 결코 선진적인 노동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큰 병원에서도 노조는 존재하기 쉽지 않을 뿐아니라 중소병원급으로 가면 대부분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노동조합이 없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비슷한 문제들은 다른 중소병원에서도 충분히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에 있는 중소병원 중 노동조합이 있는 병원은 소화아동병원, 청량리 정신병원 등 2군데 뿐으로 병원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관련 협회들의 무관심도 이같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실제로 이번 청구성심병원 사태에서도 대한간호협회를 비롯해 관련 직종에 해당하는 협회들이 있음에도 어떤 성명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간호사들의 경우 노조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간호협회 한 관계자는 “간호사들은 전문직으로 단순노동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이번 사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표명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동근기자 windfly@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