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중의 활력과 지성 그리고 희망을 담아내는 [도서출판 갈무리]입니다. 「사이보그 선언문」의 저자 해러웨이의 지적 탐험 대담집『한 장의 잎사귀처럼』 출간 안내와 관련 정보를 담았습니다.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시면 02)325-1485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둘이 아닌 하나 : 해러웨이의 삶과 이론

한 장의 잎사귀처럼

페미니스트 다나 J. 해러웨이는
어떻게 자연, 인간, 기계의 경계를 넘어서는가?

『한 장의 잎사귀처럼』은 동물학자, 페니미즘 이론가, 문화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다나 J. 해러웨이와 예술비평가이자 해러웨이의 제자인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와의 대담집이다.

영장류학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 사이보그 페미니즘 이론 창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화비평 등으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해러웨이는 이론의 독특함 만큼이나 난해함으로 유명하다.

구디브는 해러웨이와의 대담을 통해 그런 이론이 나오게 된 전기적 배경을 추적하고, 그 배경과 해러웨이의 저작을 연결시키며, 해러웨이의 삶과 이론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확인한다. 무엇보다도 해러웨이는 이론가인 동시에 자신의 이론대로 삶을 살아온 행동가이기 때문이다.

본 대담집은 해러웨이의 여느 저서보다 훨씬 쉽고 생동감 있게 그녀의 이론을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마치 사이보그처럼 차갑게 느껴지던 해러웨이의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론서이다.

□ 도서명 : 『한 장의 잎사귀처럼』
□ 지은이 : 다나 J. 해러웨이(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와의 대담)
□ 옮긴이 : 민경숙
□ 판형 : 변형신국판(145*215mm) | 제본 : 무선| 쪽수 : 280쪽 | 정가 : 12,000원
□ 발행일 : 2005년 4월 11일 | ISBN : 89-86114-77-1 04300

둘이 아닌 하나:해러웨이의 삶과 이론

본 대담집은 다나 J. 해러웨이의 첫 번째 대담집으로, 199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Fleshfactor에 실린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대담자이자 해러웨이의 제자였던 구디브는 해러웨이의 남다른 주거환경부터 전기적 배경, 은밀한 사생활까지 솔직 담백하게 밝히며 해러웨이가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임을 강조한다. 해러웨이의 삶에 대한 끈질기고 가끔은 짓궂은 질문으로 그녀의 이론이 탁상공론이 아닌 삶의 짙은 경험 속에서 태어난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후 이런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해러웨이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저서인 『크리스탈, 직물, 그리고 장(場)』부터 최근의 저서인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남자ⓒ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까지 각 저서의 주요 이론과 해러웨이의 방법론을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 그런데 이 대담집은 이런 와중에 어느새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설명서의 수준을 넘어 동시대 문화에 대한 비판서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본 대담집은 총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부분은 해러웨이의 간략한 전기와 함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저서 『크리스탈, 직물, 그리고 장(場)』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은 두 번째 저서인 『영장류의 시각』이 영장류학계를 강타한 충격에 대한 해명으로, 세 번째 부분은 세 번째 저서인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주요 개념에 관한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서론에 불과하며, 본론은 해러웨이의 저술 전체를 가로지르는 방법론에 대해 따져 묻는 네 번째 부분과, 대담이 있기 직전에 출간된 저서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남자ⓒ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의 주요 개념에 관해 설명한 다섯째 부분이다. 여섯째 부분이자 종결 부분은 해러웨이가 독자에게 해주는 짤막한 조언이 대신하고 있다.

『한 장의 잎사귀처럼』의 특징

1) 일반 독자에게도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해준다.
해러웨이의 저서는 독특하고 신선한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다. 본 대담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예를 한 가지 들자면, 해러웨이는 생물학자답게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생물학 세계로서 그리고 생물학 세계 속에서 친밀하게 살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기본 명제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서 그녀의 표현대로 게슈탈트적 전환을 시도한다. 즉 “생물학은 담론이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기체인 인간은 물질적으로, 기호적으로 살고 있고,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으며, 현재의 복잡한 체계들, 예를 들어, 노동, 자본, 위계질서, 생산성 등의 체계들 속에 갇혀 있는 생물학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계 허물기의 대가인 해러웨이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기도 하다.

2) 난해한 주요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해러웨이의 이론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생물학에 대한 깊은 전문적 지식과 못지않게 해박한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함께 어우러진 학제적 연구 혹은 학문 간의 연계를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계된 학문 중 어느 것에도 지식이 부족할 경우, 연구자는 큰 학문적 오류에 빠질 수 있고, 독자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므로, 학문간의 연계는 표면상의 화려함 뒤에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오독의 위험도 그 어느 학문분야보다 크다. 해러웨이도 이와 같은 어려움으로 인해 각 방향에서 비판과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본 대담집에서는 그런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비교적 자세히 자신의 주요 이론들과 방법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해러웨이의 대표적 개념으로 ‘경계적 피조물’을 들 수 있는데,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단번에 허물 듯이 각종 이항대립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애매한 경계에 위치해 있는 경계적 피조물에 주목한다.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주인공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 사이의 경계적 피조물이며, 『영장류의 시각』의 주인공 영장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적 피조물이고, 『겸손한 목격자』의 주인공 앙코마우스TM는 자연과 노동 사이의 경계적 피조물이다. 이것들은 결국 자연과 문화 사이의 경계적 피조물들로, 해러웨이는 이런 낯선 개념들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자연/문화의 이항대립이 아닌 한 단어로서의 자연문화를 제안한다.

3) 이론과 실제를 연결시키고 있다. ‘친숙하지 못한 무의식’이라는 이론은 해러웨이의 독특한 정신분석 이론이다. 해러웨이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도전하면서 정신병의 원인을 핵가족에서만 찾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친숙하지 못한 무의식’(unfamiliar unconscious)이란, 즉 가족에게서 유래되지 않은 무의식을 말하는 해러웨이의 일종의 단어 놀이로, 해러웨이는 이런 이론을 창안하게 된 경위를 자신의 독특한 결혼생활 및 동거생활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앙코마우스TM라는 생물학과 자본주의의 담합을 나타내는 개념 역시 유방암 연구를 위해 암유전자가 이식된 생쥐를 이용하여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에서 이론의 시발점을 찾고 있으며, 추상개념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실재물과 실제 현상에 자신의 이론의 기초를 두고 있다.

4) 방법론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해러웨이의 방법론은 주로 생물학 세계 속의 어떤 특유한 현상에 주목한 뒤 거기에서 인문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이 방법론을 ‘은유 이상의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즉 생물학에서 생리적 은유들을 발견한 다음 거기에서 설화들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러웨이는 면역체계를 설명하면서 면역이란 우리 몸에 이질적인 것이 침입하면 그에 대한 항체를 만드는 과정이므로, 면역체계란 자기-인식 장치이며, 자기/비자기의 개념들을 감독하기 위한 장치라고 제안한다. 그러므로 면역체계는 자기와 타자 간의 인식(recognition) 및 오인(mis-recognition)을 안내하도록 그린 지도가 되며, 따라서 우리가 통상 AIDS라고 부르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은 타자를 자기로 오인하기 때문에 걸리는 병이라는 것이다. 해러웨이의 또 다른 독특한 방법론에는 ‘회절’이라는 개념이 있다. 회절은 좁은 틈을 통과한 빛이 분산됨을 말하는 물리학 개념인데, 해러웨이는 이것을 반사개념과 대비하여, 똑같은 상을 만들지 않고 차이를 만드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또한 회절실험을 할 때 한편에 스크린을 세우면 빛이 지나가는 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창안하여 회절을 역사적 개념으로 바꾼다. 예를 들면, 가정분만 운동을 하던 제자가 가정분만의 상징으로 모자에 기저귀 안전핀을 달고 다녔고, 해러웨이는 안전핀과 가정분만 사이의 연결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플라스틱 산업, 철강산업, 안전규정 장치 등등의 역사들과 연결시켜 보니, 즉 회절시켜 보니, 자본형성 및 산업의 역사 속에서 그 안전핀의 의미가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본 대담집은 전문적인 이론서와 달리 쉬운 예를 이용하여 딱딱한 방법론들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5) 후기자본주의의 문제점 즉 동시대의 문화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안전핀을 매개로 하여 가정분만 운동과 자본주의를 연결하듯이, 해러웨이는 동시대인들이 유전자에 대해 갖고 있는 물신주의, 앙코마우스TM로 대표되는 유전자 이식 유기체들의 비극적 존재, 흡혈귀 문화가 내포하는 인종차별주의 등등을 내세워 후기자본주의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날이 첨단화되는 기술과학과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담합을 하는 동시대에 해러웨이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자연/문화가 이항대립이 아닌 한 단어 자연문화이듯이, 자연과학 또는 기술과학 연구에도 반드시 인문사회과학적 검토, 즉 도덕성과 책임 같은 윤리적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 해러웨이의 진솔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본 대담집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전 남편이자 동료였던 제이 밀러의 동성애와 AIDS로 인한 죽음, 그리고 해러웨이가 제이 밀러가 죽을 때까지, 그뿐 아니라 그의 동성애 상대자인 로버트 필로미노, 자신의 동거남인 러스틴 허그니스 등과 함께 한 집에서 동거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해러웨이와 동거남인 러스틴 허그니스는 제이 밀러는 물론 로버트 필로미노가 사망할 때까지 돌보았을 뿐 아니라, 사망 후에는 그들의 가족까지 챙기는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다. 대담자인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는 이들이 이룬 독특한 가정을 ‘이상적 관계’ 혹은 ‘유토피아’라고 까지 극찬하고 있다. 해러웨이가 사고한 대로 살고 있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본 대담집의 막바지에서는 이미 중년에 접어든 해러웨이가 대학자로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아무리 객관적인 학문을 가르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다르게 가르쳐야 하며,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학생들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자세히 평을 달아주는 자상한 교수로도 정평이 나 있다.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 다나 J. 해러웨이(Donna J. haraway, 1944~ )
샌타 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의식사학과 교수이다.
저서들로는 러틀리지 출판사가 출판한 『영장류의 시각』,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남자ⓒ_앙코마우스를TM_만나다』 등이 있다. 그녀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이보그들을 위한 선언문: 1980년대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사회주의 평론』 80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해러웨이는 현재 세 개의 프로젝트, 즉 1) 교양교육 교과과정의 교육학과 생물학에 관한, 초국가적 세계의 컨텍스트 내에서의 연구 2) 숲 보존 투쟁에서의, 토지에 관한 토착민 지식과 과학지식과의 만남에 대한 연구 3) 양육, 행동, 유전학에 관한 담론들 속에 있는, 사람과 개를 결합시키는 믿음과 실천에 대한 탐구 등등에 관해 작업중이다.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Thyrza Nichols Goodeve)
뉴욕대학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샌타 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의식사 프로그램에서 Ph.D.를 받았다. 뉴욕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샌타 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교, 프랫대학 등에서 예술과 과학기술에 관해 가르쳤고 휘트니 미술관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서 선임 강사로 일했다.
현재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예술 큐레이터인 낸시 스펙터와 예술가 매튜 바니와 함께 바니의 5부작 『크리매스터』 프로젝트 카탈로그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영화제작자 매튜 월린과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바니의 제작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창작력이 풍부한 제작자이자 작가이다.

[옮긴이] 민경숙(Minn Kyung-Sook)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3대학교 비교문학(영문학과․불문학 비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경원대에서 강의를 했고, 현재 용인 용인대학교 부교수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조셉 콘래드』(건국대학교 출판부), 『도리스 레싱: 20세기 여성의 초상』(동문선)이 있고, 역서로는 『해체비평』(크리스토퍼 노리스, 한신문화사), 『과학과 젠더』(이블린 폭스 켈러, 동문선』,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다나 J. 해러웨이, 동문선)가 있다.

[옮긴이 서문]
“사람들이 제 글쓰기나 연설을 만나는 덕분에, 이런 감수성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게, 제가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나 J. 해러웨이

해러웨이를 읽는 사람들은, 위의 인용처럼, 해러웨이가 펼치는 이론을 습득하면서,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감수성에 눈을 뜨게 되고, 과거에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옮긴이가 4년 전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번역할 당시에도, 지루하고 까다로운 번역작업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간간이 청량제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해러웨이는 면역체계를 설명하면서, 면역이란 우리 몸에 이질적인 것이 침입하면 그에 대한 항체를 만드는 과정이므로, 면역체계는 자기-인식 장치이며, 자기/비자기의 개념들을 감독하기 위한 장치라고 제안한다. 또한 이 체계를 자기와 타자 간의 인식(recognition)과 오인(mis-recognition)을 안내하도록 그린 지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가 통상 에이즈(AIDS)라고 부르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은 바로 타자를 자기로 오인하므로 생기는 병이다. ‘자기와 타자 간의 인식과 오인’이라는 개념은 쉽게 알튀세르의 이론을 상기시킨다. 해러웨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 몸에 기생하는 수많은 유기체들이 자기인가? 타자인가? 묻는다. 숙주의 시각에서 보면 타자이지만, 숙주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기생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기라는 게 해러웨이의 논리이고,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킨스의 저서 『확장된 표현형』을 이용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여럿’이라는 개념도 무너진다.
‘하나’와 ‘여럿’ 같은 너무나 상식적인 개념은 또 다른 설명으로도 쉽게 붕괴된다. 소위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라는 단세포 유기체의 특질에서 끌어낸 것인데, 이 생물체에는 다섯 종류의 박테리아가 기생하고 있다. 숙주도, 기생하는 박테리아들도 서로 독립해서는 살지 못하는 공의존 관계에 살고 있으므로, 이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라는 유기체가 하나의 개체인가? 여섯 개의 개체인가? 하나라면 어디까지를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라고 불러야 하나? 등등의 문제들이 생긴다.
이런 논리전개는 해러웨이에게는 매우 상식적이다.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생물 세계에서 이런 예들을 찾아내어, 그 특징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그녀의 표현대로 “재기술(再記術)하는데, 이 때에는 인문과학적인 해석이 첨가된다. 면역체계를 ‘자기와 타인 간의 인식과 오인’이라고 재기술하였듯이, 그리고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를 ‘하나’와 ‘여럿’의 개념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경계적 피조물이라고 부르듯이, 그녀는 구체적인 생물체를 은유로 사용하여 인문사회과학적 담론으로 만든다. 영장류동물은 어느새 식민 담론, 페미니즘 이론, 인종차별주의와 연결되고, 사이보그는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즉 여성의 노동문제, 정보과학 등과 연결된다.
본 대담집 『한 장의 잎사귀처럼』은 총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부분은 해러웨이의 간략한 전기와 함께, 그녀의 유명한 학위논문이자 첫 저서인 『크리스탈, 직물, 그리고 장(場)』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은 두 번째 저서인 『영장류의 시각』이 영장류학계를 강타한 충격에 대해, 그리고 세 번째 부분에는 세 번째 저서인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들어 있다. 아직 여기까지는 서론의 연장인 듯이 보이며, 해러웨이 저술 전체를 가로지르는 방법론에 관해 설명한 네 번째 부분과 가장 최근 저서인,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남자ⓒ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1997)의 주요 개념에 관해 집중적으로 설명한 다섯째 부분이 이 대담집의 본론에 해당된다. 여섯째 부분이자 종결 부분은 해러웨이가 독자에게 해주는 짤막한 조언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해러웨이의 방법론과 1997년도 저서에 나오는 주요 주제를 보며 해러웨이의 독특한 사고방식 혹은 방법론에 주목하기로 한다.
우선 해러웨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물계의 현상이나 물체를 집중하여 탐구한다. 그리고는 믹소트리카 파라독사의 예에서 본 것처럼, 그 유기체의 독특한 생물적 특징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문사회과학적 담론과 연결시키는 은유로 사용한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여기에서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는 생물학 세계를 “은유 이상의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생물학에서 발견되는 생리학적․담론적 은유들뿐 아니라 설화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이 해러웨이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해러웨이는 도처에서 자신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예를 들면 유전자가 이식된 생쥐 앙코마우스TM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특허 받은 생쥐는 유방암 연구를 위한 연구유기체이지만, 단순히 특허, 상표화, 재산권 등의 후기자본주의를 상징할 뿐 아니라, 인간구원(유방암 치료)을 약속하며 인간을 대신하여 고통을 인내하다 죽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암시한다.
해러웨이의 전기를 보면 그녀가 아일랜드-가톨릭교 배경의 영향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냈고, 그래서 가톨릭교의 영향이 그녀의 작업에 깊이 배여 있음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가톨릭교의 가장 큰 영향은 그녀가 생물학 세계에서 추상관념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추상관념 또한 비유나 은유를 통해 물질화하는 그녀의 독특한 방법론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육화하여 예수로 이 땅에 왔다는 해석, 교회나 성당에 기독교의 추상관념들이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 그리고 특히 가톨릭의 경우 성체나 성찬의 개념 등으로 예수를 피와 살로 표현하는 것 등등, 추상적인 종교가 물질화되고 기호화되고 있듯이, 해러웨이도 그런 종류의 작업을 한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서슴지 않고 우리의 상식을 깨는 또 하나의 주장을 개진한다. 우리가 하는 말과 언어가 사상보다 육체에 더 가까우며, 육체 또한 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육체뿐 아니라 세포도, 유전자도 물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러웨이에게 세포는 상호작용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을 갖고 있지 않은 과정들을 부르는 이름이고, 유전자는 관계성이란 장의 매듭으로, 계승을 자리매김하고 실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구체화과정이지만, 굳이 물체인 양 유포되는 이유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러웨이는 유전자가 인지적 물신주의, 즉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에 잘못 놓인 오류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유전자 물신주의’라고 부른다.
그녀의 설명이나 주장을 들으면 어리둥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체가 은유로, 혹은 설화나 추상관념으로 진화하는가 하면, 추상관념이 물체로 바뀌는 등 그녀의 방법은 그녀가 표현한 대로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물질적-기호적 실재물이라는 말을 자주 되풀이하며, 사실과 허구,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물질성과 기호성, 자연과 사회, 자연과 문화, 유기체와 기계 등 기존의 이분법이나 이항대립의 동시성을 강조한다. 이항대립이 억압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함께 있다는 뜻이다.
해러웨이의 기발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예를 몇 가지 더 들자면, 우선 그녀의 주요 방법론으로 거론된 회절이라는 개념이 있다. 회절은 좁은 틈을 통과한 빛이 분산됨을 말하는 물리학 개념인데, 이것을 반사개념과 비교하여, 똑같은 상을 만들지 않고 차이를 만드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또한 회절실험을 할 때 한편에 스크린을 세우면 빛이 지나가는 길을 볼 수 있다는 데 창안하여 회절을 역사적 개념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해러웨이가 회절의 한 예로 든 사건을 보면, 가정분만운동을 하던 제자가 가정분만의 상징으로 모자에 기저귀 안전핀을 달고 다녔다. 처음에는 안전핀과 가정분만과의 연결관계에 대해 의심하였지만, 그 안전핀을 플라스틱산업, 철강산업, 안전 규정 장치 등등의 역사들과 연결시켜 생각하다 보니, 즉 회절시켜 사고해 보니, 자본 형성 및 산업의 역사들 속에서 그 안전핀의 의미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회절은 해러웨이 작업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그녀는 미국 대중문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흡혈귀에게서 순종 혈통보호와 인종차별주의를 연상해 낸다. 이런 그녀의 특징은 그녀에게 냉철한 자연과학자의 모습 외에 인문사회과학적인 성향, 즉 설화를 이용하여 사회나 문화를 비판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런 인문사회과학적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은 네 번째 저서의 제목에서 쓰인 “겸손한 목격자”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다. ‘목격’이란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보는 것이고; 증언하는 것이며;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곳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에 심적으로 상처받는 것이다.” 이 정의는 목격에 대한 사실적 설명(과학적 설명)에서 서서히 목격자 자신의 정체성 및 신뢰성과 관련된 심리적 불안감(인문학적 설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적인 목격자가 되기 위해 세계의 곳곳의 갈등지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목격이 반-이데올로기적 참여(사회과학적 설명)가 되는 설화를 펼친다. 대담을 담당한 해러웨이의 제자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구디브는 해러웨이에게 설화로 해석할 수 없는 여러 사실들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해러웨이는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설화 속에서 사는 문제에 관한 겁니다. 이 세계에 설화 밖이라는 곳은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영향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던 데리다의 논법이 쉽게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런 방법론으로 탄생한 그녀의 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두 개의 상반되는 개념들, 즉 이항대립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이것을 “자연문화”(natureculture)라는 하나의 단어로 집약하여 설명한다. 자신에게 자연과 문화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하나였던 것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런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에게 분리된 것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역사적 과정 속에는 여러 그룹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다. 그리하여 해러웨이는 자연/문화, 기계/유기체, 인간/동물, 물질적/기호적 등 이항대립의 경계면, 혹은 접촉면에 주목하게 되고, 그 결과 해러웨이의 개념들은 기존 상식을 깨면서 이전에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면을 부각시킨다. 예를 들면, ‘고장’과 ‘질병’은 부정적이기만 한 상황이 아니다. “고장은 인간을 이해시키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고장은 회피해야 할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도구로 사용할 때 관여하게 되는 도구들의 네트워크의 어떤 양상을 가시화하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 고장은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유대관계를 드러낸다.” “질병의 위협은 건강의 주요 구성요소들 중 하나이다.” 이 두 개의 인용은 해러웨이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저서에 인용한 글이지만, 그녀의 이론에 중요한 글들로, 부정에서 긍정을, 긍정에서 부정을 찾아내는 그녀의 사고방식과 잘 부합된다. 따라서 해러웨이는 ‘죽음’에 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낸다. “죽음의 긍정이 절대적인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을 찬미하는 의미에서의 긍정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지요.” 이것은 그녀 스스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하이데거의 논법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녀의 글 고유의 특징인 아이러니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해러웨이는 대학에서 생물학, 철학, 문학을 전공하였고, 예일대학원에서 학위논문을 쓸 때에도 순수한 생물학에 관한 것이 아닌 ‘20세기 유기체론에서 사용된 은유들’에 관한, 일종의 생물철학, 즉 인문학적 견지에서 본 생물학에 관한 주제를 채택하였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복수전공한 교육적 배경이 그녀의 특성이 되었고, 더 나아가 동시대의 가장 독특한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학위논문 덕분에 그녀는 존스홉킨스대학교의 과학사(科學史)학과의 교수가 되었고, 그 후 샌타 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의식사(意識史) 프로그램의 교수가 되어, 여러 학문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안착하였다. 해러웨이는, 자신의 연구는 의식사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의식사 프로그램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는 학자들의 연구가 환경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끝으로, 해러웨이의 생물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봄으로써 그녀의 이론세계를 요약하려 한다. 첫째는 “우리가 생물학 세계로서 그리고 생물학 세계 속에서 친밀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유기체로서 생물학 세계의 일원이고, 다른 유기체들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에 준하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그녀의 표현을 쓰자면, 첫 번째 설명에서 게슈탈트적 전환을 한 것으로, “생물학은 담론이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즉, 유기체인 인간은 물질적으로 기호학적으로 살고 있고,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현재의 복잡한 체계들, 예를 들어, 노동, 자본, 위계질서, 생산성 등등의 체계들 속에 갇혀 있는 생물학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과거의 역사뿐 아니라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등등의 여러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러웨이가 과학을 인문사회과학과 연계하여 연구하는 이유이고, ‘자연’과 ‘문화’를 한 단어의 “자연문화”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런 주장은, 복제나 유전자의 상품화 등 과학기술이나 기술과학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검토해야 하는 개연성이 나날이 급증하는 요즘 시의적절하다.
해러웨이의 이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생물학 세계를 다루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인문사회과학 담론으로 변해 있고, 인문사회과학적 담론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자연과학으로 돌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항대립의 경계면, 모순들 등에 집중하다 보니, 앞에서 본 ‘고장,’ ‘질병,’ ‘죽음’ 등의 개념에서처럼 아이러니컬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디브는 종결 부분에서 이 점을 해러웨이에게 지적한다. 그에 대해 해러웨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영속적인 정열과 아이러니입니다. 즉 정열이 아이러니만큼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 글의 첫 부분에 인용한 것처럼, 해러웨이는 이론 그 자체보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사유하고, 새로운 감수성을 느끼게 하면서, 무엇보다도 이 때 만들어지는 정열을 전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005년 2월 5일
민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