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차 상시대기 중입니다”
마필관리사 하루 평균 낙마사고 3~4건 … 마사회, 안전보다 경주에 골몰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5-09

지난 2일 새벽 5시. 어슴푸레 동녘이 붉어질 무렵 과천 서울경마공원은 벌써부터 부산하다. 마필관리사들이 마방에서 거센 울음소리를 내는 말들을 이끌고 경주장으로 나가면 응급차도 이들을 따라 대기한다.

마사회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 박영기씨는 “새벽 5시부터 응급차 2대가 대기하는데 하루 평균 낙마사고가 3~4건 발생해 응급차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응급구조실에는 5명의 구조사가 일하고 있지만 언제나 일손이 달린다. 벽에 붙은 칠판에는 ‘사고자 현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더 이상 써 넣을 자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과천경마공원에서만 218명이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마필관리사 산업재해율 전산업 평균의 62배

전체 마필관리사 485명의 절반에 달한다. 마필관리사의 지난해 산업재해율은 44.9%로 전산업 평균 재해율(0.72%)의 62배에 달한다.

마필관리사에게 갈비뼈나 대퇴부가 부러지는 일은 예사다. 2002년에는 낙마사고를 당한 마필관리사가 끝내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23일에는 10여년 이상의 마필관리 경력을 가진 박아무개(43)씨가 사고를 당해 뇌사진단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다. 박씨는 사고 당일 오후 5시께 경주마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낙마해 말 뒷다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곧바로 인근에 위치한 강남성심병원으로 후송된 박씨는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한 달이 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마장에서는 ‘뒹구는 낙엽’도 사고원인

경주마를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직업인 마필관리사들은 항상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낙마는 기본이고 말발굽에 채이고, 미끄러지기 일쑤다. 심지어 말에게 귀와 코를 물어뜯기기도 한다. 기계가 아닌 생물, 그것도 말처럼 예민한 짐승을 관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들을 훈련시키는 곳에서는 뒹구는 낙엽마저 조심해야 한다.

마필관리사들은 새벽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말을 훈련시키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 3시까지 말똥을 치우고 말을 목욕시키는 등 마필관리를 한다. 1인당 3마리를 보살핀다. 마필관리사에게 수요일은 가장 위험한 날이다.

주 5일제가 도입된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 경마를 마치고 마필관리사들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간 휴식을 취한다. 말들도 이 기간동안 좁은 마방에 갇혀 있다. 윤창수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은 “사람도 갑자기 운동을 하면 사고가 나는데, 예민한 말들은 더 하다”며 “지난 수요일(4월30일)에도 2명 낙마해 응급차에 실려 갔다”고 말했다.

최근 7년(99년~2006년) 간 요일별 마필관리사 산재사고 건수를 보면 수요일에만 평균 40건이 발생했다. 목요일(28.8건), 금요일(23.4건), 토요일(22.8건), 일요일(22.4건)에 비해 월등히 높다. 노조는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필관리사들이 쉬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도 말을 훈련시키면 적어도 수요일 사고발생 건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창수 위원장은 “마필관리사 1인당 2마리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며 “현 인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라 운영에 부담이 된다면 주 2일 휴무를 실시하고도 월요일과 화요일에 정상조교(마필훈련)가 가능한 인원만이라도 충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권을 가진 마사회는 비용문제를 이유로 노조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잘못된 경마정책도 한몫

노조는 인력충원과 함께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주마 육성과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낙마사고는 주로 경주마로 갓 들어온 6개월 이내의 ‘신마’에서 많이 발생한다. 2004년 발표된 ‘마필관리사 산재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경마장으로 입방한 6개월 이내 신마로 인한 사고가 33.7%에 달했다. 이 중 22.12%는 3개월 이내 신마였다.

신마사고율이 높은 이유는 순치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주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경주마로 길들이기 위해 보통 6개월 간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말과 사람 간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후에 경주마가 되기 위한 근력훈련에 들어간다.

경마계에서는 이를 ‘순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경마장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경주에 출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람과 친해지기는커녕 무리한 근력사용으로 말까지 골병이 든다. 뼈마디가 쑤시는 말들이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말들은 사나워진다. 마필관리사 낙마사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윤 위원장은 “외국의 경우 경마의 목적이 우수한 종마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반면 우리나라는 오로지 경마상금에만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경주에 출주시켜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의 경주당 상금비중은 마필도입가격보다 월등히 높다.

2005~2006년 평균 마필도입가를 보면, 미국은 4천500만원, 호주는 2천500만원이지만 우리나라는 2천만원으로 가장 적다. 반면 경주당 상금은 미국 1천794만4천원, 호주 1천387만4천원, 우리나라는 6천474만1천원으로 6배나 높다. 노조는 경마장에 들어오기 전에 전기순치(사람과의 친화과정)만이라도 거치고 오도록 관련규정을 개정한다면 산재사고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