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의 안전불감증, 어떻게 안되겠니~
[칼럼]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조기홍 국장

매일노동뉴스

필자는 가끔 TV를 보면서 ‘우리나라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방송은 국민의 의식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TV를 통해 방영되는 위험천만한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보면 산업안전담당자로서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안전한 일터 정착을 선도해야 할 방송이 보호구도 없는 아슬아슬한 작업환경을 여과없이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체험현장이 아닌 산업재해 체험현장

KBS ‘삶의 체험현장’은 힘든 노동현장의 체험을 통해 진정한 땀의 의미를 전달하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노동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 필자는 가족과 함께 즐겨보는 편이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결코 좋은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동안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만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따름이다.
예를 들어 한 인기가수가 출연해 상수도 보수공사 1일 체험에 나선 적이 있다. 그는 아무런 보호구나 안전조치 없이 맨홀 속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황천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맨홀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맨홀안의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야하며,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작업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여성 연예인에게는 무거운 짐을 쓰러질 정도로 짊어지게 하고, 탄광에서 일하는 출연자에게는 보호구 착용방법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형식적으로 얼굴에 걸쳐놓고 있었다. ‘삶의 체험현장’이 아니라 ‘산업재해의 체험현장’인 셈이다.
SBS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노동을 예술에 가까운 경지로 승화시켜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무대설치의 달인, 뷔페 멀티플레이의 달인, 설거지의 달인 등등….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을 볼 때면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생활의 달인’으로 묘기에 가까운 노동을 보여주는 출연자들은 정작 각종 산업재해와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생활의 달인’이 ‘직업병으로 가는 지름길’로 나타나기 전에 이들의 직업병 예방을 위한 조치도 함께 방영해줄 필요가 있다.
이외 드라마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점은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재미만 쫓는 방송, 산재예방 걸림돌로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보다 흥미로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TV를 시청하는 국민들에게는 왜곡된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전달함으로써 노동현장의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TV를 시청하는 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노동보다는 힘들고 위험한 노동, 달인가 되기 위한 무모한 노동을 진정한 노동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미래의 노동자가 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노동현장의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산업재해 예방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KBS의 ‘위기탈출 넘버원’은 방송이 안전보건에 전혀 무관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인식을 주고 있어 다행이다. 이 프로그램은 안전보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였으며 자라나는 어린이이게 안전보건 교육의 훌륭한 교과서가 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방송의 힘은 매우 크다. 방송에서 잘못 비춰진 안전보건 의식과 행위가 노동현장의 산재예방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방송사들은 모든 프로그램에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취하고 전 국민들이게 안전보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삶의 체험현장’이 ‘안전한 노동현장의 체험현장’으로 ‘생활의 달인’이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의 달인’으로 바뀌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