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장시간 노동에 칼을 대자
과거 운동의 냉철한 평가와 반성 속에 ‘과로사 추방 운동’ 시작 필요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지금은 흔하게 사용하지만 사실은 그 한마디에 많은 역사가 깃들인 말들이 있다. 이러한 말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였더라도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특정한 역사를 경과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다. ‘과로사’라는 말 역시 그러한 말 중 하나다.

과로사라는 말은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그리고 흔하게 쓰는 말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과도한 노동으로 생명을 잃는 노동자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픈 현실이 주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였음에도, 그 죽음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죽음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그러한 죽음에 문제의식을 느낀 운동가들에 의해 바뀌게 된다.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 주위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이 현실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운동이 9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과로사’라는 말이 탄생하게 됐다.

29세 신문발송 노동자 뇌졸중 사망이 시발점

과로사라는 용어는 7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의 명명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이 90년대다. 한국에서도 이 때를 즈음해 이 개념이 적극 사용되기 시작했다.

과로사는 순수한 의학적 용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로로 한 개인이 사망했다는 의학적ㆍ과학적 사실을 서술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한 사회의 노동조건에 대한 총체적 문제제기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이 용어의 개념을 발전시킨 우에하타 교수의 언급 속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과로사란 한 집안의 대들보를 잃고 내일의 생활에 대한 불안에 직면한 가족의, 산업재해보상을 요구하는 비통한 부르짖음 속에서 태어난 용어로서, 엄격한 의미에서 순수 의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사회의학적 용어다”

과로사의 사회적 문제는 지난 69년 일본에서 신문발송 일을 하던 29세 노동자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사망하자, 이것이 업무와 관련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회화됐다고 한다. 이 사건은 5년여의 재판 과정을 거쳐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후 70년대에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사망한 18명의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따라 갑작스러운 사망과 과도한 노동이 서로 연관돼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노동과정과 형태에 개입하는 계기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과로사 논의가 시작됐다. 일군의 의사ㆍ변호사ㆍ노무사 등이 이러한 개념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와 소송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제도적 측면에서 93년 노동부의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질병인정기준’에 처음으로 ‘업무상 과부하’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더불어 조직적 측면에서 이들은 이러한 성과를 보다 대중적인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과건강연구회」부설기관으로 를 개소했다. 이들은 이러한 조직적 기반을 가지고 상담과 소송을 진행했고, 제도개선 요구와 더불어 다양한 캠페인을 조직했다.

이들의 활동이 노동안전보건 운동에 기여한 바는 컸다. 의학ㆍ법학 등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우리사회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사회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주로 화학물질이나 중금속 중독 같은 유해환경 문제를 제기하며 성장했다. 그런데 과로사 개념이 도입된 이후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의 노동이 이뤄지는 과정과 형태에도 개입하게 됐다. 노동시간 단축, 노동강도 완화 등 노동운동 일반의 핵심적 요구를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와 일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더불어 산재보상 제도에서도 진전이 이뤄졌다. 일순간에 가족을 잃고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던 이전과는 달리, 과로로 인한 사망기준 등이 마련됐다.

보상 대상 질환도 명확히 규정됐고 그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물론 과로사 인정기준은 아직까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과 비교해 많은 제도개선이 이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성과를 냈던 과로사 상담센터의 활동은 안타깝게도 지속되지는 못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의욕적으로 진행됐던 과로사 상담센터의 활동은 IMF 사태 이후 주춤하기 시작했다. IMF 사태로 신자유주의적 생산방식과 작업장 통제가 일반화 돼 상황이 더욱 나빠졌기에 활동의 영역은 더욱 광범위해졌지만 객관적 상황과는 별개로 주체들의 활동은 잦아들었고, 과로사 상담센터도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별 사례 상담ㆍ소송 한계 극복 못해

먼저 산재보상 중심으로 운영됐던 활동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로사 상담센터 활동을 비롯한 초창기 과로사 추방운동은 산재인정과 관련한 활동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개별 사례들의 산재 인정논리를 개발하거나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에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이는 중요한 활동이었다. 이 활동의 결과 많은 중요한 판례가 축적되었고, 그 판례만큼 산재보상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활동은 사회운동으로 지속되기 힘들었다.

초창기에 과로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소수였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 사업을 공동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바뀌었다. 과로사 상담센터 소속의 변호사ㆍ노무사ㆍ의사 말고도 과로사 상담과 소송을 진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일정 시기가 지나자 서로 모여 작업할 필요가 점점 줄어들었다. 개별 살 상담과 소송을 굳이 조직적으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담과 소송 외에도 과로사와 관련한 산재 인정기준을 개혁하는 제도개선 과제를 조직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원심력이 강해진 상태에서 활동도 개별화됐다. 결국 산재보상을 넘어선 과제는 조직적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둘째, 첫 번째 문제와 연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운동 주체로 노동조합을 조직적으로 끌어당기는 데 실패했다. 과로사 추방운동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산재보상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과로사가 발생하는 현장의 노동과정과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활동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전문가와 노동안전보건 운동 단체 중심으로 벌어진 활동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전문가와 단체 중심의 활동으로는 생산 지점에 타격을 가하는 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로사 추방운동을 벌이는 전문가와 단체 활동가들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조합을 운동 파트너로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활동을 조합원에 대한 산재상담 서비스 강화로 이해해 과로사 관련 산재 상담 노하우 습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긍정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과로사 문제를 생산 지점에서 노동운동의 핵심적 요구와 결합시켜 운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개발돼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를 당위적인 수준에서 접근하면 환원론에 빠져 버린다. 그러한 환원론의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현장에서 과로사가 발생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높은 노동강도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이러저러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철폐, 노동강도 완화 등을 요구로 건 파업투쟁을 만드는 것이다.”

이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점은 ‘어떻게’의 문제를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단순화한 만큼 대중들이 실천할 구체적 투쟁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있다. 이같은 주장에 근거한다면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해야 할 과제는 하나밖에 없다.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함께 열심히 노동시간 단축 투쟁, 교대제 철폐 운동, 노동강도 완화 투쟁을 위한 선전선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전선동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통계자료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려면 굳이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노동운동’을 하면 된다. 또한 굳이 노동안전보건 운동 단체가 필요하지도 않다. 일반 노동운동 단체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활동하면 된다.

그러므로 이는 고민과 토론이 많이 필요한 문제다. 지나치게 운동의 독자성과 이슈 중심성을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개별 운동의 독자적 목소리를 뭉뚱그려 하나의 추상적 구호로 단순화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축적한 성과 이어가는 운동 만들어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과로사 추방운동’은 적지 않은 성과를 낸 운동이었다.

그러나 한계 역시 명확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과 끔찍한 노동강도 등 생산 지점에서 발생하는 과로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냉철하게 진행해야 한다.

운동은 기억상실과 청산의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기억 복원과 더불어 앞서간 이들이 축적한 성과에 벽돌 한 장을 더 쌓는 과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