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경제가 살면 사람도 사는가
입력: 2008년 05월 25일 17:54:27
경제가 살면 당연히 일자리가 늘고 사람도 살지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최근 경제단체의 ‘경제 살리기를 위한 규제완화 요구’를 보면 문득 경제가 살면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봉창을 뜯어 본다.
경제단체 무리한 규제완화 요구
경제단체의 규제완화 요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산업재해(이하 산재) 규제 완화이다. 산재유해요인 조사, 작업환경측정 및 사업주 벌칙조항, 위험기계기구 검사 등등 산업재해 예방 및 보호 모두가 규제이며 경제살리기에 해악적이니 완화하거나 없애자고 한다. 한해 산재로 인한 손실이 16조원이며 하루 7명꼴로 산재로 죽어가는데 이것도 규제이니 풀어야 한다면 사람이 더 죽어야 경제가 사는 것인지 당혹스럽다.
남녀고용평등 규정, 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 및 육아휴직 규제, 심지어 성희롱 벌칙규정마저 규제이고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안되니 풀자는 주장도 비슷하다. 현행 제도 아래서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대에 머물고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여성이 퇴직하는 경력단절 현상이 수십년째 변함이 없다. 일본을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 현상 때문에 한국의 알파걸은 알파우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는다. 고용이 평등해야 생산성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는 거짓인가, 성희롱을 더 하면 생산성이 느는가. 생산성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성희롱 수준도 높은가.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이 해고의 자유, 비정규직 활용범위 확대 및 사용기간 연장, 차별금지 규정 완화이다. 2003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68.8%가 정규직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의 유연성을 확보한다. 여기에 비정규직 활용 비율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일자리는 매우 유연하다. 그런데도 부당해고는 과태료를 무는 것으로 끝내고 비정규직도 마음대로 쓰자면 당연히 의심스러워진다. 사람의 밥줄이 거리에 침뱉어 과태료를 물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과태료를 무는 것과 같은가. 84%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청년과 부모가 16년간 교육비에 쏟아부어 찾을 수 있는 일자리가 더 유연하고 더 나쁜 일자리여야 하는가.
성희롱 벌칙마저 해악이라니…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및 의무고용 적용 완화에 퇴직급여제도 규정 완화까지 이어진다. 결국 장시간 저임금 노동만이 한국의 경쟁력이다. 또 파업을 제한하고 노동조합을 죽여야 경제가 살고 광우병이 우려되는 소도 적당히 먹어줘야 경제가 산다.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재벌 대기업에 몰아주고 외국인 주주에게 이익배당을 많이 해줘야 경제가 살고 외주화를 많이 해야 경제가 산다. 의료보험까지 민영화하면 경제가 더 산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살려!”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한번 더 참아 보려 해본다. 우리가 누구인가. 외환위기 때 내 동료를 자르고 나도 잘려야만 경제회복이 된다 해서 그렇게 한 국민이다. 경제를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는데 한번 더 못하랴마는 내가 죽으면 내 자식, 내 이웃, 내 친구는 사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간 사람들은 아니라고 도리질하는데 그래도 한번 더, 끈질기게 믿어 보아야 하는가. 자다 말고 일어나 봉창을 흔들어 보는 사연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