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6천만원 향해 노동자는 오늘도 일한다

한인임 원진교육센터 연구원

우리나라는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전 세계 220개쯤 되는 나라 중에서 국토면적으로는 100위쯤 된다는데 국가의 경제력 규모(GDP)는 세계 11위다. 이 11위에 올라서기까지 주요 동력은 역시 반도체로 세계시장 점유율 2위, 조선은 세계 1위, 철강은 포스코가 세계 2위를 자랑한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현대차가 7위다.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2위다. 온라인 게임 시장도 압도적 1위를 장악하고 있단다. 대단하지 않은가. 더욱 대단한 것도 있다. 자살률? 산재사망? 사교육 지출? 양극화 특히 노동시간도 1위로 나타난다(OECD국가 중에서). 이 두 범주는 상호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악순환 고리를 연상케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장시간 노동의 늪

후자는 확실히 드러나는 현실로 재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전자는 거품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문제다. 반도체는 콩알만 한 나라에서 세계시장을 60~70%나 D램이라는 한 품목으로 점유하다보니 제품가격변화에 국운이 맡겨져 있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 반도체 문제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자동차와 휴대폰은 또 어떤가. 핵심기술이 없어서 남는 게 별로 없는 껍데기 장사이다. 조선도 아직은 대부분이 저부가가치 선박이 주종을 이룬다. 이런 문제들이 결국은 무역수지 적자에 기여한 바 크다. 이는 결국 원화가치 하락과 외환위기를 내생적으로 지니게 된 이유로 작용한다. 이런 거품 장사를 하면서 외형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자본은 노동자들을 산재사망으로 내몰고 노조탄압을 일삼으며 아예 무노조정책으로 일관한다. 우리는 이 거품 경제의 한 톱니가 되어 희생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문을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70~80년대 우리는 절대적 빈곤상태에서 장시간 노동의 늪을 헤어날 수 없었다. 사측의 전근대적인 노동자 통제는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장시간 노동은 하기 싫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장시간 노동을 한다.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2위와는 엄청난 격차를 벌이고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노동시간이 2천305시간이고 다음 순위인 체코가 1천997시간이다 나머지는 대개 1천500시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최근 금속노조가 실시한 노동조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40시간 이내의 일을 하는 노동조합은 6.6%에 불과했고 48시간이내도 20%가 채 되지 않았다. 법이 개선되어도 허울만 좋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시간 노동이 존재하는 이유가 예전과 같은 이유에서일까. 물론 중소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절대빈곤의 문제 때문에, 혹은 사측의 통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시간노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도 같을까.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두 사업장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10명 중 1명은 365일 일해

ㄱ 기업은 자동차완성차 공장으로 10시간씩 주야로 맞교대를 한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한다. 물량을 서로 가져가려고 대의원들이 발 벗고 나선다. 휴일특근을 하나라도 더 할 수 있게 하는 게 대의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사측과의 교섭 능력이다. 전 조합원이 월평균 250시간 일하고 노보에 따르면 10% 정도가 365일 일한다고 한다. 그래서 평균 연봉(세전)은 6천만원 가까이 된다. ㄴ기업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4조3교대로 운영되어 앞의 기업보다 교대패턴은 좀 나은 상태이다. 그러나 조기출근, 연장노동이라는 방식으로 근무시간대에 연장근무를 한다. 따라서 발생하는 연장근무는 기본적으로 4시간가량 된다. 물론 쉬어야 할 비번 날에도 나와서 일을 한다. 심지어 인력이 부족해 작업반에 신입직원을 들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조합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연장근로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서다. 소정근로시간만 일하는 노동자는 5%수준이다. 임금은 여기도 연봉(세전) 6천만원가량 된다.

이 두 사업장에는 골치 아픈 공통점이 있다. 이상한 임금체계이다. ㄱ 사업장은 연장근로, 휴일근로 시간급이 2~3배씩 적용된다. s사업장은 상여가 평균임금 기준으로 적용된다. 즉 연장근로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임금격차가 매우 크게 발생하는 ‘반노동자적 임금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들을 임금노예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노동자들은 스스로 그 늪에 빠진다. 소정근로시간만 일하면 먹고 살 수 없는 구조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초과수당 거의 없는 독일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최근 독일 철도 기관사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의 실 임금수령액(세후)은 노동자 평균 대략 월 1천500유로(약 220만원)다.

독일 철도노동자들은 초과수당이 거의 없다. 많아야 월 40만원 정도다. 초과노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으면서도 여름에는 스페인이나 남미로 휴가도 다녀온다고 한다.(물론 임금이 낮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장기파업도 벌였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답은 바로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있기 때문이다.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대신 대학까지 교육비는 무료이고 병원비도 무료다. 개인질병으로 다친 노동자들도 휴업급여를 받는다. 노동자들은 집을 산다는 생각을 아예 안한다. 다 월세다. 그러나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우리처럼 집값폭등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나이 40이 넘으면 임금의 30% 가까이를 아이들 교육에 쏟는다. 그런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독일은 인당 3만5천달러의 국민소득을 구가하는 나라고, 우리는 1만8천달러밖에 안 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독일의 이러한 제도는 현재 우리보다 훨씬 소득수준이 낮았던 50년대부터다.(의료보험과 산재보험은 이미 1880년대에 도입됐다)

‘일중독’과 투쟁하자

문제는 현재의 단단한 알을 스스로 깨고 나와 더욱 견고한 우리의 집을 지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안고 있다는 현실이다.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중독’과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진을 통해 현실에 적응하는 방식을 벗고 우리의 사회복지향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전향’이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