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는 것 두려워 산재은폐에 나선다”
[인터뷰] 한기운 한국안전관리사협회장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안전관리사들로 구성된 조직은 2007년 1월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안전관리사협회가 유일하다. 대한산업안전협회가 별도로 있지만 개인이 아닌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어 차이가 있다. 안전관리사협회의 회원은 약 6천여명. 2003년 5월 출범한 안전연대를 모체로 하고 있는데 이들은 △비정규직 안전관리사의 정규직화 △자율안전점검 확대 △안전관리자 교육 및 커뮤니티 활성화를 주요 사업목표로 삼고 있다. 한기운(40) 안전관리사협회장은 안전연대 회장도 겸직하고 있다.
는 지난달 30일 한기운 회장을 만나 안전관리사의 고충을 들어보았다.
“노동부 퇴직직원이 대행기관 원장으로 오는데…”
안전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는 대략 3만여명. 그들은 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제조업(2만)이나 건설업(1만)에서 안전관리 점검이나 산재발생 원인조사 등의 업무를 주로 맡아하고 있다. 기업체 정규직으로 취직하면 안정된 직장생활을 누리지만 재해예방 대행기관에 소속돼 업무를 수주할 경우 근로조건은 대단히 열악하다.
한기운 회장은 “재해예방 대행기관은 120억 미만 공사현장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가 안전점검을 하는데 대부분이 현장을 둘러보지도 않고 그냥 사인만 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월 1회 방문 시 15만8천원으로 안전점검 대행비용이 정해져 있지만 대행기관이 난립하면서 현재는 5만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업계의 제 살 깎기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한 회장은 “정부 스스로가 안전점검을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 안전관리사 선임인데, 정부가 재해예방 대행기관의 자격조건만 갖추면 무조건 허가해주다보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안전점검 대행업무 계약을 맺은 뒤 한 번 점검나가서 1년치 서류에 전부 도장찍어버리는 겨우도 허다하다.”
한 회장은 “부실한 대행기관이 적발돼 허가가 취소된 사례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노동부의 관리·감독 시스템은 없는 편”이라며 “노동부 퇴직직원이 대행기관에 와서 원장이나 부원장인 곳이 꽤 된다”고 덧붙였다.
“회사와 노동조합 끼인 천덕꾸러기”
“법에서 안전관리자의 의무는 산재발생을 예방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산재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안전관리자들은 사업주를 대신해 사고를 은폐하는데 급급한 신세다.”
한 회장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산재은폐에 안전관리자가 앞장서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전관리자 선임 구조를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라며 “사업주가 비용을 대고 고용하는 안전관리자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안전관리자들은 건설현장에서는 사업주의 법 위반 사례를 덮어주고 산재를 은폐하는데 급급하고 공장에서는 산재사고를 공상처리하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유일하게 안전관리업무를 전담하는 안전관리자지만 실상은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노조한테는 회사를 대신해서 욕 먹고, 회사에서는 산재사고를 제대로 못 덮었다고 욕 먹고….”
안전관리자 선임, 공공성 높여야
한기운 회장은 안전관리자가 법 취지에 맞게 제역할을 하려면 현재 사업주 부담으로 돼 있는 비용지불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의 경우 안전관리자 선임의무를 시공사가 아닌 발주처에 두도록 해 산재사고의 책임도 발주처가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 제조업도 마찬가지로 안전관리자의 권한을 높이고 비용을 산재보험기금 부담으로 전환해 공공성을 높여야한다고 말했다.
“노동부 산업안전 감독관은 300명인데 사업장 수는 100만개다. 감독관 1명당 3만개 이상 사업장을 관리해야한다는 말인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있는 안전관리자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