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자가 있어도 대형사고가 빈발하는 까닭
2명 중 1명 비정규직, 사업주 거수기로 전락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6-04
사업장에서 안전점검과 산재예방, 사고 원인조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안전관리자. 사업장에서 유일하게 안전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전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산재은폐를 돕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감추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300인 이상 제조업체와 공사대금 120억원(토목공사 150억원)~800억원인 사업장은 반드시 안전관리자 1명 이상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상시근로자나 공사대금이 규모가 커지면 안전관리자도 추가 선임해야 한다. 또 50인 이상 사업장이나 공사대금 20억원 이상 경우 안전관리(재해예방) 대행기관에 위탁하고 지방노동관서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97년 기업규제완화특별조치법 시행으로 30인 이상 사업장의 의무적용 규제가 완화돼 지금의 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이 만들어졌다.
안전관리사는 73년 자격제도가 첫 도입돼 기계안전ㆍ화공안전ㆍ전기안전 등으로 나뉘다가 99년 3월 산업안전기사 및 건설안전기사로 통합ㆍ분리됐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산재발생의 70%가 안전관리자를 선임한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그만큼 산재예방에서 안전관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안전관리사협회에 따르면 안전관리자 50% 이상(건설업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대기업에 고용돼 있는 경우는 낫지만 대행기관에 소속된 경우나 건설안전관리자의 경우 사업주에 잘못 보였다가는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하다. 사업주가 부담하는 비용으로 채용된 이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보니 사업장에서 안전점검 대행업무가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사업주의 의도대로 산재은폐가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협회는 주장한다. 또 기업체에 고용돼 있는 안전관리자 역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대로 안전업무만 전담하는 경우는 드물다. 소방ㆍ환경관리는 물론 종소기업은 인사ㆍ회계ㆍ총무업무 등 7~8가지를 겸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기운 안전관리사협회장은 “지금 같은 구조에서 안전관리자의 주된 업무는 사업주를 대신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가리기 위한 일로 전락해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안전관리자 선임의무는 부여해놓고 정작 관리ㆍ감독에는 팔짱을 끼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에 안전관리자 선임의무에 대한 고지를 안전관리 대행기관의 홍보물로 대신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안전관리자를 직접 선임하기 보다는 질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대행기관 위탁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초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사업주가 안전관리자를 선임하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여론의 비판이 일자 노동부는 그때서야 관련 기준을 정비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노동부는 공사면적 5천제곱미터로 안전관리자 선임 기준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안전관리자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