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근대 군주란 무엇인가?
탈근대 군주라는 말은 형용 모순처럼 느껴진다. 합리적 이성과 계몽사상을 뼈대로 하는 근대의 확실성을 거부하는 탈근대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에, 근대 정신이 성공리에 제거한 정치 주체인 군주를 논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거나 역설이다. 저자 존 산본마쓰는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요즘이야말로 군주를 탐구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역설적 상황임을 보여준다. 또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신좌파의 등장,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꼼꼼하게 읽고 이 이론들의 인식론적 오류와 실천적 결함을 철저하게 비판함으로써, 이 논의가 수십년의 사상 변화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 논의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헤겔과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엥겔스부터 루카치, 그람시, 마르쿠제, 푸코, 메를로퐁티, 알튀세까지, 그리고 20세기 후반부의 여성주의 이론가 메리 데일리와 다나 해러웨이, 탈식민주의 연구자 호미 바바와 가야트리 스피박, 그리고 최근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하트와 네그리까지 서구 학계 전반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학자들의 이론과 저서를 꼼꼼하게 분석한다.
잘 알다시피 『군주론』은 15-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논쟁적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정치에서는 도덕도 양심도 없는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유쾌하지 못한’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진면목은 어쩔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에 맞서기 위한 ‘능력’(비르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가를 논하는 데 있다. 운명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리 대비하면 피할 수 있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군주의 능력이다. 그리고 군주의 능력은, 때로는 도덕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인민 대중에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대중들을 역사의 흐름에 맞서는 집단으로 키우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구체적으로 군주와 대중이 합심함으로써 이탈리아를 통일된 강대국으로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400년 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혁명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 책의 진정한 의미에 주목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현실 정치론을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과 종합해 20세기 초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군주론을 집단적 주체인 인민 대중의 혁명론으로 발전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근대 군주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정당인데, 선거를 위한 구체적인 조직체뿐 아니라 정치적 목표를 위한 사회 단체를 포괄하는 의미에서 정치 결사체이다. 근대 군주라는 이 결사체는 핵심 지도부, 인민 대중, 그리고 인민 대중에서 배출된 유기적 지식인의 세 요소로 이뤄진다. 각성한 전위적 인자와 이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인민 대중이라는 레닌식 전위 정당과의 가장 큰 차이가 유기적 지식인의 기능에 있다. 유기적 지식인은 지도부와 인민 대중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관료주의와 독재를 배제하는 민주적인 정당의 바탕을 이룬다.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은, 그의 대표작인 『옥중 수고』의 곳곳에 조각조각 숨어 있다. 그람시는 이를 별도의 작품으로 출판하려고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미국의 신진 좌파 철학자인 존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은 그 바탕을 마키아벨리를 계승한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에 두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시대나 그람시의 시대는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않던 때다. 운명(포르투나)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능력(비르투)을 발휘할 새로운 형식의 주체 형성이 시급했던 것이다.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슈틴은 지금을 500년을 존속했던 자유주의 체제가 해체되는 때로 규정한다. 그리고 “인간의 개입이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때는 상대적인 질서의 시기가 아니라 혼돈의 시기이다.”라면서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한 실천을 촉구한다. 산본마쓰 또한 지금을 체제 위기에 직면한 이행기로 규정하고, 지금의 역사적 조건에 적합한 구체적인 형식 곧 탈근대 군주의 건설을 주장한다. 그의 탈근대 군주는 뿔뿔이 나뉘어 있는 다양한 저항 운동과 문화 운동들을 단일한 운동으로 모으는 주체이다. 하지만 이 단일한 운동이라는 형식은 구성원들의 개별적 정체성을 모두 배제하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와 정체성을 인정한 가운데 그들의 공통점을 찾고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는 형식이다.
탈근대 군주의 형성 필요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비유가 어둠 속에서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다. 중세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교의 시인 루미는 어둠 속에서 여러 사람이 코끼리의 일부를 만진 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 각자는 한 부분씩을 만졌도다/ 그리고 전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도다. /손바닥과 어둠 속의 느낌은 /감각이 코끼리의 실체를 어떻게 탐색하는지 보여주도다. /우리 각자가 촛불을 들고 있었다면 /그리고 함께 갔다면 /우리는 그걸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촛불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동성애운동, 반인종차별운동, 동물권 보호운동 등 수많은 사회 운동들의 고유한 세계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촛불들이 모이면 이 세계의 진짜 문제가 코끼리의 전체 모습처럼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의 대상화가 노동자의 대상화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노동자의 굴욕과 불명예가 동성애자 폄하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유대인들과 유색인들은 동물을 노예처럼 다루고 때리고 학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행동의 논리적 지평이자 전형적인 실습 행위임을 보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흩어진 저항 세력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현실 문제와 정신적 도전 과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각자의 관점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근대 군주라는 구체적인 형식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세계관 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도 역시 저자는 마르크스와 그람시의 전통을 따르되,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한다. 19, 20세기 좌파 사상의 핵심에는 자본의 인간 상품화에 맞서는 인문주의(휴머니즘)가 자리잡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메타인문주의(메타휴머니즘)로 확장하려 한다. 메타인문주의는 인문주의, 계몽 등 진보적 전통을 계승하되 인간 중심주의로서의 인문주의를 넘어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그는 ‘인간’(human) 개념을 동물까지 확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곧 감각이 있고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대한 공감과 그 존재들에 주목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저자는 동물(animal)이라는 말의 기원이 영혼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니마(anima)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동물의 문제에 주목하자는 주장은 최근 서구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 전통에서 여성은 동물과 다름없이 취급당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생태여성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날 때, 존재론적 오류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회주의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진정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메타인문주의를 통해서, 탈근대 군주는 제 자신의 바탕이 단지 역사적이거나 ‘유물론적’인 게 아니라, 예컨대 자본주의 구조 내 모순들의 명백한 드러냄 같은 것에 국한하지 않고, 존재론적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탈근대 군주의 바탕은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 있는 유기체들의 텔로스(궁극의 목적)에 있다. 실존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탈근대 군주는 존재의 완성을 향한 세계내존재의 무의식적 노력, 자율성과 연대간의 그리고 자아와 타자간의 영구적인 윤리적 변증법 속에서 드러나는 노력의 현상적 형식이다. (중략) 탈근대 군주의 궁극적인 영적 또는 ‘종교적’ 목표는 이 에로스, 삶의 원칙을 타나토스 또는 죽음의 본능에 뿌리를 둔 모든 사회적 훼손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 사회 운동들이 에로스, 삶의 의지의 차별적이고 부분적인 표현이 아니면 무엇인가?) 존재 곧 절대자로서가 아니라 이 세계내존재로서의, 고통을 겪는 이 동물로서의 ‘존재’를 옹호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타도를 위해 투쟁하고 여성들이 남성의 특권과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메타인문주의는 단지 감각 있는 존재의 경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이는 생활세계를 지키기 위한 열정적인 윤리학이고 정열적인 정치론이다. “오늘날 삶을 위한 투쟁, 에로스를 위한 투쟁은 정치적인 투쟁이다.”
한마디로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마르크스의 철학을 결합한 그람시의 사상을 21세기 현실에 맞게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에는 인간 주체와 대상의 상호 관계성을 강조하는 후설과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그리고 여성주의(페미니즘)의 최신 경향에서 가장 잘 구체화한 ‘동물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공감의 윤리학’이 중요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산본마쓰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섬세한 감수성과 윤리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철학을 자본의 횡포가 극에 달한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대안 철학으로 발전시키려는 현상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