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속 사각지대 건설기계노동자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기자 08-06-11

#1. 지난 1월 경북 칠곡의 한 도로공사현장. 터널 굴착(땅파기) 작업에서 나온 골재를 사토장으로 운반하던 장아무개(38)씨가 덤프트럭을 후진하던 중 지반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자는 차량과 함께 뒤집혀 10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차량은 폐차됐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현장에는 차량을 유도하는 신호수가 없었다.

#2. 지난해 11월 경남 거제의 또 다른 지하통로 확장공사 현장. 덤프트럭노동자인 박아무개(46)씨가 트럭에서 4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추락사고를 당했다. 박씨는 자신의 트럭 적재함에 굴삭기 작업자가 흄관(배관)을 싣는 것을 받다가 배관에 부딪쳐 트럭 아래로 떨어졌다. 적재함에서 배관을 받는 노동자와 트럭 아래서 수신호를 해주는 노동자가 따로 있어야 했지만 회사측은 노동자를 따로 고용하지 않았다. 두개골이 파열된 박씨는 현재까지 2차 수술을 마친 상태. 앞으로도 장기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건설기계 비중 높아지면서 산재사고 잇따라

두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노동자의 과실과 상관없이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례의 경우 신호수만 있었더라도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경우 박씨는 다른 노동자가 했어야 할 일을 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공통점은 또 있다. 두 노동자 모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건설기계 운전자는 노동자가 아닌 이른바 ‘사장님(개인사업자)’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근 3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 공사현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덤프ㆍ레미콘ㆍ타워크레인과 같은 건설기계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건설현장의 기초공사인 지하 토목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덤프차량을 이용해 토사를 운반해야 한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지하를 깊게 파야 한다. 문제는 덤프차량이 급경사 현장을 오르면서 차량 전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노조(위원장 백석근)는 10일 “최근 건설기계 장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건설기계 안전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며 “그러나 개인 과실이 아닌 경우에도 건설기계 조종사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 사례처럼 현장에 차량을 유도하는 신호수가 없고, 지반이 침하돼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는 운전자의 숙련도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산재사고다. 그러나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사고를 당해도 건설업체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공상으로 처리하거나, 심한 경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건설현장 산재사고, 산재보험 적용해야

박종국 노조 노동안전국장은 “공사현장은 현장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어 모든 안전사고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돼 있다”며 “현장 내에서 덤프 등 건설기계노동자가 산재를 당했을 경우에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등에 관한 법률(8ㆍ9조)에 따르면 건설업처럼 사업이 여러 차례 도급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 그 원수급인(원청)을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주로 본다. 다시 말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재보험은 원청사가 책임지도록 돼 있는 것이다. 노조는 “보험료는 분양계약자가 부담하는 비용에 이미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입법예고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레미콘 조종사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덤프트럭 등 다른 건설기계는 제외됐다.

건설기계 산재보험요율 너무 높아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건설기계 노동자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는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원하면 개별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법이 개정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기계노동자가 직접 산재보험에 가입할 경우 보험료 100%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단체협약에 따라 월급이 239만원으로 정해져 있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경우를 보자. 노동부가 고시한 ‘2008 산재보험요율’에 따르면 건설기계관리사업자의 보험요율은 1천분의 119이다. 한달에 약 26만원을 보험료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높은 요율 때문에 스스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건설기계노동자는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노조는 “토사붕괴ㆍ지반침하ㆍ낙석ㆍ급경사 사고 등 운전자 과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고가 발생할 경우 건설시공사에서 이미 시행을 하고 있는 산재보험에 건설기계 안전사고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16일 건설기계분과 파업을 앞두고 있는 노조는 △운반단가 현실화 △표준임대차계약 작성 △건설기계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