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일본의 최근 7년간 밀폐공간 질식재해 비교 (한국산업안전공단) 우리나라보다 2.6배 이상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 동 재해 사망자 수가 적으며 발생건수에 비해 사망자 수가 훨씬 적은 것은 보호구와 구조장비를 사업장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의 07년 통계는 모름).
ⓒ 강태선 질식재해
누가 단무지공장 노동자들을 죽였을까
우리 사회 잘못된 통념과 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죽음
강태선 (hum21)
지난 9일, 경북 문경의 단무지공장 단무지 저장수조에서 작업 중이던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들은 굴착기를 이용해 수조에서 단무지 세척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같이 작업을 하던 3명 전원이 사망하였으므로 사체부검 등을 통해 사망원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경찰관계자) 싸움질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세 사람 다 떨어져 죽어있는 상태를 발견한 목격자 밖에 없었습니다. 발견 당시 단무지 절임탱크 안에는 숙성 중인 단무지와 액체가 1.2미터 정도 차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익사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과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 이번 여름에도 또’ 하는 만시지탄과 더불어 이젠 분노마저 일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경찰과 일부 언론의 여전한 무지이다. 싸움질? 익사? 관련 보도는 경찰과 언론의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냈고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단적으로 이 사고는 단무지 절임 과정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가스에 의한 질식 재해임이 분명하다. 식품 저장 창고 특히 절임 등과 같은 발효 과정이 있는 공정에서는 부패가 일어나면 맹독가스인 황화수소가 발생할 수 있고 저장 수조에서 굴착기 버킷을 이용해 단무지를 꺼내는 과정에서 고농도의 황화수소 가스에 질식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오이지 절임창고 등 식품저장창고에서 이 가스에 의한 질식재해가 발생한 바 있다. 지난 92년에는 바로 단무지 공장에서 똑같은 재해가 발생한 적도 있다.
박충기 등은 대한방사선의학회지(1994년 통권31호)에 92년 8월 발생한 단무지공장 질식사고 사례연구를 발표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고 1명이 부상을 당했다. 단무지 저장수조에 차례로 세 사람이 들어가 쓰러졌고 다행히 마지막에 들어간 사람은 구조되어 생존했다.
논문에서는 단무지 저장수조에서 황화수소가 다량 발생한다는 것을 모형실험을 통해 밝혔고 생존한 사람의 방사선 소견(폐부종) 또한 황화수소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다.
저자는 논문에서 단무지 저장수조에서는 단무지 첨가제로 사용되는 황산칼슘과 무 자체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methylthiol(CH3SH), alkylisothiocyanate(R-N=C=S) 및 alkyl sulfide(R-S-R’) 등의 유기황성분 등 황성분이 있는 가운데 환기가 잘되지 않는 혐기성상태가 조성되면 황환원세균이 증식하면서 황화수소를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
먼저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리라. 발효하는 식품이 들어 있는 탱크·창고 등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질식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밀폐공간보건작업프로그램’을 수립·시행해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했거나 혹은 아예 이런 법이 있는 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따라서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도록 감독하는 관청인 노동부의 문제도 있다. 더불어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건의 형량이 업무상과실치사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엄연히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있음에도 ‘과실’과 비슷한 형량을 준다는 것은 사실 왜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했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그 이유를 관계자에게 물으면 ‘사회적 통념’이 아직 그 수준이라고 얘기한다. 우리의 ‘사회적 통념’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은 실수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통념의 탓일까?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율은 영국보다 30배 이상 높다. 이런 정도라면 우리의 통념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회적 통념’은 바뀌는가? 법에서는 산재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에게 최고 7년 징역 또는 1억원 벌금 부과를 명시하고 있긴 하다. 우리 사회에서 법을 법대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사회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인식 수준을 높이고 문제해결 의지를 북돋는 몫을 가진다. 언론이 해마다 반복되는 관련 재해를 보도하면서도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경찰의 무지는 그렇다 치고 아예 미스터리를 만들어 버리는 일부 언론의 안일한 보도행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사고, 즉 사업장에서 일과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가 있으면 관행적으로 경찰에 묻기에 앞서 노동부나 한국산업안전공단 전문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정확한 보도를 위해 필요하다.
이번 단무지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은 결국 언론을 필두로 한 사회적 무관심과 무지의 산물이다. 작년 의왕에서 한꺼번에 4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모 방송사에서 기획취재를 준비하다가 포기한 사례가 있는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일본 등 외국의 사례
9일, 대전의 한 아파트 정화조에서 2명이 죽고 2명이 다친 사건도 역시 같은 종류의 사고로 볼 수 있다. 단무지 공장 사고처럼 동료를 구하려다가 연이어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
위 표는 최근 몇 년간 일본과 한국의 밀폐공간질식재해 통계이다. 우리보다 2.6배 많은 인구임을 감안하면 훨씬 빈도가 낮은 것이다. 또 눈여겨 볼 것은 사건 발생 건수에 비해 사망자 수가 적다는 점인데, 우리나라처럼 여러 명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일은 최근 일본에서는 사라졌다.
최소한 구출에 필요한 보호구와 설비를 사업장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강국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외국 검색사이트에서 ‘밀폐공간(confined space)’을 검색하면 아주 쉽게 여러 가지 훈련과정과 관련 컨설팅업체가 활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도 빨리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컷의 사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강태선 기자는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관련내용은 개인블로그(blog.ohmynews.com/hum21)에서도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2008.06.11 15:10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