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1. 무고한 4명의 목숨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은 지난 5월 10일 회사측의 감시와 통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차별에서 발생한 정신질환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에 산재요양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는 5월27일자로 “상병은 인정되고 감시, 차별 행위도 인정되나 쟁의행위기간에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전원 불승인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감시와 차별을 자행한 회사측의 주장만을 근거로 하고 있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에 재심의를 요구하며 8월 17일부터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조합 지회장과 노동보건단체 대표 2인, 그리고 학생 1인 등 모두 4명이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하여 벌써 한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비바람과 먼지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물과 약간의 소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체된다면 이들의 소중한 목숨이 위태로와질 상황입니다.

2. 하이텍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은 회사의 감시와 통제, 탄압과 차별이 원인입니다.

2002년 직장폐쇄 이후 회사는 조합원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별도의 생산라인으로 배치해 상시적으로 감시, 통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6대의 CCTV를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습니다. 비조합원만 임금을 인상해주고, 복지혜택이나 야유회에서도 조합원을 소외시키는 차별행위를 저질렀습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조합의 조합원 전원이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공통된 정신질환을 얻게 된 원인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로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환경적 요인을 통해서입니다. 회사측의 극심한 감시와 통제, 탄압과 차별이 바로 그러한 공통 요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감시와 통제에 대한 근거자료를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는 누락시켰습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의 노동자들은 감시와 통제의 근거자료로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실시, 국정감사 시 CCTV 감시 문제 지적 등의 자료를 제출했으나 심의 과정에서 누락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제출 자료가 일부 누락되었다 하더라도 승인 결정에 있어 미미한 영향을 줄 뿐이므로 행정처분 과정상 하자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감시와 차별이 원인인데 그에 대한 자료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행정소송에서 해고자 전원이 원직복직 판결을 받은 것은, 법원에서도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조합 탄압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감시와 차별이 쟁의행위기간에 발생하였으므로 산업재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불승인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회사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판단일 뿐입니다. 피해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측은 조합원들이 외출하는 것을 가지고도 파업이라고 주장하여 임금을 삭감하는 등, 쟁의행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온 바 있습니다. 또한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생산라인에 설치한 CCTV나 작업장 안에서의 폭언과 차별 등이 쟁의행위기간 중에만 발생했다는 주장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4. 근로복지공단은 하이텍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을 전원 승인해야 합니다.

이번 건과 유사한 사례로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병원측의 감시와 통제, 탄압과 차별로 인해 발생한 집단적인 정신질환을 산재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또한 회사에서 강요한 명예퇴직을 거부한 KT 노동자들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에 대해 산재로 승인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경우 “쟁의행위기간에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의사들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이 피해 노동자들과 이해를 달리하는 회사측의 편에 서서 불공정한 행정을 하고 있는 현실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스스로 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13명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4명의 생명권을 외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며, 더 나아가 수많은 재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내는 지름길입니다.

2005년 9월 16일
하이텍노동자들의 전원산재승인을 촉구하는 의사 32인 일동

권영준, 권정기, 김나연, 김정범, 김종명, 김명희, 나백주, 노태맹, 박상규, 박일성,
백남순, 서영준, 손미아, 신인식, 신현정, 유영진, 유원섭, 이문희, 이상윤, 이세일,
이재광, 임상혁, 임승관, 임준, 임형준, 정영진, 정윤, 정최경희, 주영수, 최규진,
채윤태, 황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