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대책도 방치된 화물노동자
일터의 건강나침반 /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갑자기 없어졌을 때 새삼 그 존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이들이 있다. 화물 노동자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다. 평소에는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가끔 도로에서 만나는 불편한 존재로 기억되는 정도이다. 이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당장 존재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며칠 일손을 놓자 한국 경제 전체가 마비될 위험에 놓인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들이 해 온 구실은 사람 몸의 혈액과 같은 것이었다. 혈액은 사람 몸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곳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또 노폐물은 제거하는 구실을 한다. 때문에 혈액이 부족하면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공장 등 생산 현장에, 슈퍼마켓 등 유통 현장에 갖가지 상품과 재료를 나르는 화물 노동자는 바로 한국 경제의 혈액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을 푸대접했다. 운행을 하면 할수록 수입은 더 적어졌다. 부족한 수입을 메우기 위해 오랜 시간 운전에 나서야 했다. 휴게소에서 새우잠을 자다 보면 피로가 덜 풀린 상태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무리한 운전은 사고를 부른다.
실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통계를 보면 2006년 한 해에 화물 노동자 577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하루에 1.6명꼴이다. 사고가 났다 하면 큰 사고가 되는 것도 문제다. 승용차는 사고 1000건당 6.7명이 사망한 데 견줘, 화물차는 같은 사고 건당 32.7명이 숨졌다. 승용차 사고에 견줘 4~5배나 더 위험한 것이다.
사고 위험뿐만이 아니다. 화물 노동자는 오랜 시간 노동과 부족한 휴식 때문에 과로사할 가능성도 높다. 또 밤낮없이 운전해야 할 때가 많아 수면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서 진동을 느끼며 오랜 시간 운전하다 보면 허리 통증 등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른바 ‘골병’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질환들에 대해서는 변변한 조사나 통계 자료 하나 없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인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경우도 매우 적다. 물론 산재보험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화물 노동자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통계로 우리나라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미국의 2004년 직업성 재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화물 노동자는 전 직종을 통틀어 두 번째로 직업성 재해 및 질환이 많은 직종으로 조사됐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최근의 고유가만이 아니다. 화물 노동자가 목숨과 건강을 내놓고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다. 적어도 일하는 동안 이들의 생존과 건강만큼은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이상윤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