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노동자 매년 16명 과로사”
장시간 노동과 노동강도 강화가 원인…금융노조 “노동시간 단축해야”
매일노동뉴스 김봉석 기자 08-06-25
지난해 ㄱ은행에서는 과로로 숨진 한 직원의 사연이 주목을 받았다. 양천구 오목교지점 기업금융대출 담당이었던 ㅂ차장(당시 나이 47세)은 업무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이대 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한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결국 숨졌다. 주변 동료들에 따르면 당시 ㅂ차장은 가계담당에서 기업대출로 업무를 바꾸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적경쟁에 따른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와 노동이 ㅂ씨를 사망으로 이르게 한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했다. 동료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금융노조도 ㅂ씨의 죽음을 은행노동자 과로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최근 은행권에서 과로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은행노동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간 과당경쟁은 노동강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자연스런 인력구조조정 제도라고 불리는 ‘후선발령제’ 도입에 따른 심적 스트레스도 가중됐다. 고연령ㆍ실적부진 등으로 현업근무 불합격 판정을 받을 경우 후선으로 밀려나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가 지난해 9개 시중ㆍ국책ㆍ지방은행 임직원 5만4천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부터 최근 4년 동안 한 해 평균 33.5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16.5명이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됐다.
자살이나 교통사고ㆍ질식사 등 일반사망을 제외하고 한 해에 16.5명이 심근경색이나 뇌출혈ㆍ간경화 등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되는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금융노조는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노조 산하 비정규직을 제외한 전체 임직원 9만8천721명 가운데 한 해 평균 30.1명이 과로사로 사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추정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 이 조사에 응한 5만4천42명의 노동자 중 63.8%인 3만4천479명이 노동강도로 인해 과로사나 질병에 걸릴 위험을 느끼냐는 질문에 대해 반수 이상인 63.8%인 3만4천479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68.8%에 이르는 3만7천180명이 노동강도가 큰 편이라고 말했다. 직급별로는 과장급과 대리급이 각각 72.8%와 73.6%로 가장 많았다. 노동강도가 심한 이유로는 55.8%가 업무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유사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원부족을 꼽은 사람도 23.9%나 됐다.
향후 노동강도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대다수인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동강도가 강해지면서 과로사에 대한 위험성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는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에 비해 노동강도가 강하다. 설문조사에 응한 은행노동자들의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8시20분이었고, 퇴근시간은 오후 8시13분이었다. 하루 평균 11시간57분을 일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율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인력이 계속 줄었지만 은행 간 과당경쟁이나 후선발령제 등으로 인해 노동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은행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육체적ㆍ심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ㆍ단체협약에서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노동강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력충원과 노동시간단축이 근본해결책이지만, 현실 여건강 실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하루 3시간에 달하는 추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대체휴가 실시를 은행측에 요구하고 있으며, 근무시간 외에 실시하는 실적증가를 위한 캠페인이나 연수ㆍ회의 등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