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불소화’는 왜 민주주의에 반하는가”
수돗물 불소화와 민주주의, 인권
수돗물 불소화 문제를 바라보면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이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주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똑같이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반된 주장들이 펼쳐진다.
불소의 유해성이나 보건정책으로서의 적절성(불소화의 충치 예방 효과 등)에 대해서는 과학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도 과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유해성의 문제가 나오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학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불소화의 문제를 과학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먹는 물에 특정한 물질을 투입하는 문제에 있어서 현재의 과학 수준과 현재의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종국적으로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 정책, 보건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떠나서 바라볼 수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수돗물불소화를 둘러싼 논쟁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다. 불소화에 찬성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공중 보건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결정 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따라서 과학기술 정책이나 보건 정책이라고 해서 시민들이 비(非)전문가라는 이유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수돗물 불소화에 관련된 논쟁을 보면 그러한 의문이 든다. 공중 보건 정책이기 때문에 마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물이기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이야기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의 측면에서 보아도 수돗물 불소화는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수돗물에 일률적으로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 건강 관리권’ 내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기 건강 관리권은 헌법 제10조 제1항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라고 판단하기도 했다(헌재 1990. 9. 10. 89헌마82 등).
결국 공공재인 수돗물에 사람에게 효과를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용할 권리와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참고로 필자는 수돗물을 음용하고 있고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할 때에는 수돗물을 마실 수 없었지만, 불소 투입이 중단된 지금은 수돗물을 음용하고 있다.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돗물 불소화의 문제점
불소화를 추진하는 사람들도,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불소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건강권과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는 불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불소의 혜택을 보기에는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므로, 아예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여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들의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돗물불소화 찬성론의 논리에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과 관련해서, 불소 투입량이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히 조절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불소화로 인해 과량의 불소에 노출될 수 있다”, “고령자, 당뇨병환자, 신장 기능 장애자 등 병자는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 “영양 상태가 빈약한 사람들은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 수돗물 불소화는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실현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둘째 사회적 약자의 선택권과 관련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빈곤층이나 장애인이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수돗물을 먹을 수밖에 없고, 그 점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가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찬성론의 논리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빈곤층에게도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자기 건강 관리권’과 ‘선택권’은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빈곤층이나 장애인들 중에서도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경제적, 신체적 장애 때문에 먹고 싶지 않은 ‘불소 수돗물’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찬성론의 논리 속에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선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해서 그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라는 막연한 시혜적 생각이 깔려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 접근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논리가 바로 ‘시혜적 논리’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적 접근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인권은 우리가 제한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면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결정해주어야 한다”는 논리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보장되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셋째 기본권 침해의 기본 원칙 중에서 과잉 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이는 어떤 입법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수단으로서는 가장 국민의 기본권을 적게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불소가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불소를 섭취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즉 개인의 자기 건강 관리권이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법이 가능한 것이다. 불소를 수돗물에 투입하지 않고 불소를 섭취할 수 있는 다른 대체 가능한 수단(불소정제, 양치, 불소치약 등)이 존재하는데도,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과잉 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본 수돗물 불소화의 문제점
현행 구강보건법상으로는 수돗물 불소화의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이전에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현행 구강보건법 제14조 제2항은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한국수자원공사사장은 공청회 또는 여론조사 등을 통하여 관계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돗물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장향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수돗물 불소 농도조정사업을 일단 시행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가 과반수 반대 의견으로 나오면 시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장향숙 의원의 구강보건법 개정안은 명백하게 지방분권의 원칙과 자치의 원칙, 그리고 민주주의의 보편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우선 수도법에 의하면 시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공급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다. 수돗물 공급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자율적인 결정권을 주지 않고 무조건 시행하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하였을 때에 그로 인한 예산상의 부담, 시민 안전에 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가 져야 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장향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 이러한 판단의 권한을 전혀 부여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 시행하되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지역여론 조사결과가 과반수 반대가 나오면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이 조항 속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이나 여론조사도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영역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이상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의견 수렴을 하고 여론조사를 할 것인지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하라고 법에서 규정한다는 것은 초유의 발상이다.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전에 수돗물 불소화 사업과 관련하여 매우 불공정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방적으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의 장점을 선전하는 내용의 설명을 한 후에 수돗물 불소화사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당연히 찬성한다는 답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구강보건법 개정안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하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도저히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더욱이 “여론조사에서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으면 실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수돗물에 불소를 인위적으로 투입하는 문제는 설사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예산을 들여서 사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단순 다수결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제공과 토론, 심도 있는 논의, 합의의 형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과반수 반대가 없으면 실시한다”라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물며 유해성 논란이 있는 물질을 수돗물에 넣는 문제라면 단순 과반수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과반수가 반대하지 않으면 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여론조사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다.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면 찬성, 반대 이외에도 “모르겠다”는 응답이 상당히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찬성 30%, 모르겠다 30%, 반대 40%가 나왔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구강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수돗물 불소 농도조정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반대가 찬성보다 많지만 과반수에는 못 미쳤기 때문이다.
수돗물 불소화가 정말 필요하다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앙집권적이고 반강제적인 법률에 기대려 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반대하는 측의 이야기도 충분히 전달되게 하는 토론의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중앙집권적 법률에 기대려 한다면 분권과 자치의 원칙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찬성하는 목소리, 반대하는 목소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도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지역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참여’와 ‘자치’, ‘분권’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승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