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불소화의 함정”
수돗물 불소화 또는 불소농도 조정사업이 팽팽한 찬반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가운데 찬성과 반대 진영이 세불리기 과정에서 판도 변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불소화를 사실상 의무화하려는 법 개정안은 너무 뚜렷한 여러가지 함정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수돗물 불소화 자체가 신기술의 부메랑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기적의 살충제’ DDT,납이 포함된 휘발유,석면,벤젠,PCB(폴리염화비페닐) 등과 같이 경제성과 편리함 때문에 택한 신기술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많은 인명 피해와 건강 악화를 초래한 사례들 말이다.
최근에는 예방의학계와 환경공학 등 전문가 및 환경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수돗물 시민회의’가 법 개정 반대진영에 가담했다. 이들은 그동안 불소화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주로 찬성 입장에 서거나,중립적 입장을 보여왔다. 이 단체는 지난 19일 낸 성명서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지역 여론조사 결과 과반수의 반대의견이 있는 경우에만 수돗물 불소화에서 제외하기로 한 이번 개정안은 찬반 입장을 떠나 주민의견 청취의 참뜻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모든 지자체장이 이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자치정책센터의 하승수 변호사는 이를 개인의 ‘자기건강관리권’ 또는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돗물 불소화의 충치예방 효과는 미미할지는 모르지만,있기는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이를 인정했다. 국내에서는 2002년 강원도 춘천시(불소화 미실시)와 충북 청주시(실시)를 비교한 것이 유일한데,조사 결과 충치예방 효과가 30∼35%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반대 진영은 불소화를 하지 않고 있는 유럽과,하고 있는 미국의 충치 유병률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효과를 반박하기도 한다.
수돗물 불소화의 위해성 여부에 대해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와 보건복지부는 일정한 농도(0.8∼1촼) 이하의 불소는 마셔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라는 입장이다. 건치 회원 박한종씨는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수돗물 불소화는 미국 등에서 수억명을 대상으로 한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환경을 훼손했거나 건강을 저해했던 단 하나의 현실적 결과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돗물 불소화가 청소년 골육종(암)을 일으킨다는 역학조사결과나 불소화와 비슷한 저농도의 불소가 지능지수 저하,뇌신경 장해를 가져온다는 동물실험 결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녹색평론 등에 따르면 이같은 연구결과들이 주류 의학계와 산업계에 의해 무시되거나 탄압받고 있다는 보도와 저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불소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건치의 주장과는 달리 크리스토퍼 브라이슨은 ‘불소-거대한 속임수’에서 “쥐약의 원료로 사용될 만큼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식수에 첨가한다는 것은 미국 특유의 발상이었으며,갈수록 미국만의 외로운 사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불소화를 하던 나라들도 이를 중단하거나 심지어 불법화했다. 납과 흡연,그리고 석면에 대해서도 미국의 의료 전문가들은 여러 세대 동안 기업을 도와 유해성에 관한 진실을 감춰왔던 전력이 있다.
찬성측은 경제적 취약계층 어린이들에게 시급한 효율적 충치예방의 대안을 내놓으라고 반대측에 요구한다. 수돗물 불소화의 최대 이점은 결국 경제성이다. 치과진료의 보험대상 확대나 비싼 불소 도포 및 불소약 보급에 비해 훨씬 적은 돈(1인당 연간 300원,원광대 치대 이흥수 교수)으로 충치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2002년 11월 과학과 기술의 혁신,신상품을 도입하기 앞서 하나의 규제수단으로 예방원칙을 사용한다는 법령을 채택했다. “실험계획,기술적용 또는 제품 도입을 앞두고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불확실한 경우 예비평가에서 환경,인체,동물,식물의 건강에 대한 잠재적 악영향이 EU가 선택한 높은 보호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합당한 근거가 나올 경우 사전금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황증거는 많지만,물증이 충분치 않을 경우 곧바로 예방원칙이 적용된다.
불소화의 지지자들도 빈민들에 대한 공중보건정책의 효율화라는 선의를 갖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싸다고 해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물질을 남녀노소 없이 강제로 투입하려는 것은 독단과 오만으로 느껴진다. 인명과 건강은 도박의 대상이나 경제적 득실계산의 종속변수가 아니다. 의학자와 과학자들은 인체와 자연의 신비 앞에서 좀더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임항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