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조운동 원칙복원, 총파업투쟁 승리
전국 노동문화 활동가 결의 한마당에 부쳐
염려도 되었습니다. 비판도 많았습니다. “왜 하필 지금이냐? 가뜩이나 어려운데 니들까지 그러면 되겠냐? 지금은 위기상황이다. 비정규법안 투쟁을 눈앞에 두고 있고, 비대위가 꾸려져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발끝에 차이는 덤불 하나라도 모아야 할 때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된다. 이건 적전분열이다.”
그 모든 염려와 비판을 무릅쓰고 우리 문화일꾼들이 독자적인 문화제를 꾸리는 데는 꼭 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이 깨지고 무너졌습니다. 민주성, 자주성, 계급성, 연대성, 투쟁성, 그 어느 하나도 지켜지고 있지 않은 현실은 우리를 더 이상 주저앉아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민주라는 허울을 쓰고 어용노조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공개석상에서 상대방을 폭행하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직권조인을 하고도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조합원들이 보는 앞에서 노자간 협상을 하고, 그 결과를 조합원 총투표에 붙여서, 부결이 되면 군말없이 현장으로 복귀하던 그 당당한 기풍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지역에 파업 사업장이 생기면 온 공단의 활동가들이 제일인양 발벗고나서서 그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끝가지 연대를 했던 전통은 벌써 지나간 역사가 되고 만 것입니까?
모든 것을 협상으로 해결하자고 합니다. 투쟁도 잘 해야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협상이라고 합니다. 누가 협상할 줄 몰라서 안 합니까?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받을 사람이 애원한다고 협상이 됩니까? 협상은 당당해야 합니다. 꼭 투쟁한 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게 협상입니다. 저 악귀 같은 자본가들이, 저 승냥이 같은 정권이, 우리 노동자가 뭐가 그리 예쁘다고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투쟁하지도 않는데 거저 줄 것 같습니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걸 니들만 모른다고 합니다. 과연 세상이 바뀌었습니까? 동지들은 그걸 느끼십니까? 세상이 바뀌어서 노동자가 일한만큼 대접받고, 농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모든 서민들이 집값걱정, 물가걱정, 생계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약간 확대되었다고, 자본이 마음대로 돈 벌 수 있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노동자 민중이 달라진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모든 게 늘어납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도 점점 늘어나고, 구속, 수배자들도 늘어나고, 가계의 부채도 늘어나고, 노동시간도 늘어나고, 비정규직의 숫자도 늘어나고, 어용노조도 늘어나고, 무사안일, 복지부동하는 활동가들도 늘어나고, 잘사는 놈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도 늘어나고, 헐벗고 굶주린 자도 늘어나고, 세상살이 힘들고 지쳐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모든 게 늘어납니다. 날마다 늘어납니다.
어쩌면 우리 문화일꾼들은 민주노조운동의 희생물인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해왔지만 저희들에게 돌아온 것은 끊임없는 희생뿐이었습니다. 급할 때는 동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똥친 막대기 취급이었습니다. 그 모든 걸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이 사라지는 것은 차마 두 눈뜨고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떨쳐 일어난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원칙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도 깨지면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마저 지켜지지 않으면 자본과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계속해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자본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노동자이게 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합니다.
저희들은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잠깐 문제제기 하는 것으로 저희들의 주장을 접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장하는 것이 지켜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앞에 닥친 비정규법안 관련 총파업을 조직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 투쟁에 저희 문화일꾼들이 선봉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풍이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진정으로 바랐던 그 아름다운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코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동지들의 어깨를 걸고, 웃으면서 그 길에 함께 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